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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휴머니스트, 2004 개정본

by Aner병문

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동서양편 각 한 장씩 합쳐 두 장씩 읽는 철학VS철학 은 강신주 선생이 "이제서야 다 되었다" 자신할 정도로 구판, 개정판을 합치면 그 쪽수가 무려 삼천 쪽에 버금간다. (여씨.. 아니 강씨춘추?) 목침 두 개만한 책을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으므로 평소 출퇴근 시에는 늘 총각 시절 읽다 미처 다 못 읽고 접던 미학 오디세이 를 한 권씩 늘 들고 다녔다. 펜을 꽂아두고 마치 팔굽혀펴기나 스쿼트하듯, 짬이 나면 어학원 빈 강의실이든 회사 점심시간이든 한 단락씩이라도 꼭 읽어두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읽다보니 왜 내가 지금보다 더 여유있던 이십대 때 오히려 이 책 3권을 다 끝맺지 못했는지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마 그 때의 나는 고정된 완성에 집착하던 사내였을 터이다. 하루 4시간씩 꼬박 집중하여 땀흘려 훈련치 아니하고 어중간히 하느니 술이나 마시던 총각 시절처럼, 3권의 책에 장대히 집약된 예술사를 한번에 읽어 꿰지 못할 바에야 빨리 읽을 다른 책 읽고 말지 싶었을 터이다.



까짓 오늘 하루 훈련 아니해도 내일 모레 글피 연달아 하지 뭐 하던 총각 시절은 이제 더이상 내게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짬내어 다리를 찢고 근력 훈련을 하고 기초 기술 수행을 조금이라도 하며 위안삼듯이, 나는 이제의 하나의 책도 쉼없이 잘라 읽어야 하며, 또한 매해 같은 책을 다시 읽어 그 동안 읽어온 파편을 꿰어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대저 학문과 무공을 쌓는 일이 그처럼 번거롭고 성가신 것이다.



도올 선생이 철학사의 전무후무한 천재로 극찬했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저작들이 그가 생전 사랑해 하지 않던 클래식의 작곡 형식을 취했듯, 진중권 선생 역시 에셔, 마그리트, 피라네시ㅡ 세 작가를 중심으로 마치 악곡을 만들듯이 구성했다. 이 책은 또한 고전부터 현대까지 예술의 표현 형식과 읽어내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그 진리가 세상 ㅡ 예술가 ㅡ 작품 ㅡ 수용자 로까지 어찌 전달되는지 탐구한다. 일찍이 이소룡은 백 명이 절권도를 익히면 백 개의 절권도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예술이 현실과 어찌 관계맺는가, 혹은 현실을 부정하는가 에 따라 예술의 형식과 진리는 변화한다. 그러므로 현실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인식과 가치관이 곧 작품을 통해 드러나며, 그는 곧 철학의 다른 양태이자 변용이다. 그러므로 미학과 철학이 서로 맞닿아 장대한 바다로 흘러가는 그 장구한 흐름을, 내 졸렬한 끄적임과 이 작은 여백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다. 도복과 도장으로 태권도의 형식을 취한다면, 적어도 독서감평 역시 키보드의 형식을 취하고 싶다. 그러면 내 부끄러운 부족함이 조금이라도 가려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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