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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Apr 02.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올해의 벚꽃놀이도 무사히 - 벚꽃훈련!

0. KTX 표 구하기!


어제, 그러니까 아내가 주일에 1시간 교육이 걸린 날이었다. 고작해야 꼴랑 주일 1시간 교육 때문에 매주 금요일 저녁에 오는 사람 토요일 저녁에 도로 내려가라 하기도 어렵고, 아내는 나와 소은이더러 내려오면 어떻겠냐는 명안을 내놓았다. 소은이 보고 싶어하는 아버님도 쉽게 오실 수 있으니 훨씬 좋고, 아내는 이때를 대비하여 소은이 옷가지와 장난감 등을 미리 한 차례 거처에 실어놓았으므로 여러모로 좋았다. 다만, 지난 주말 아내가 이럴리가 없는데 이상하데이~ 하는 표정으로 전화기만 자꾸 들여다보기에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아니, 펭소에는 표도 쉽게 구해지고 그러디만은, 요상하게 이번따라 표가 없다 아입니까~ 나중에서야 아차, 남쪽부터 찾아오는 이른 벚꽃 보려고 사람들이 많이들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래도 아내가 지난 주 부지런히 애써줘서 퇴근하여 금요일 저녁 밤에 아이와 함께 내려갔다가 주일 저녁에 무사히 올라오는 일정은 별탈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1. 여우 같은 녀석.


소은이는 지난 수요일부터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TV 보다 말고 갑자기 애비 눈치를 슬슬 봄.) 결국 못 참은 내가 먼저, 왜, 소은아, 애비헌티 할말 있냐? 하면 배시시 웃으면서 아빠아, 이번에 기차타고 포항 할아버지랑 엄마 보러가요? 그럼, 보러가제, 암, 보러가고 말고잉. (깨방정춤) 와! 신난다! 나 내려가서 엄마한테 맛있는것도 많이 사달라고 하고, 신나게 TV도 마아아않이 볼거야! (요즘 TV 많이 줄였더니 반동이 장난이 아니다.) 때는 이때다 싶어서, 소은이 포항 할아버지랑 엄마랑 볼꺼믄 머리 짤러야 허는디? 안그래도 머리가 많이 길어서 뒤통수도 덥수룩하고, 앞머리칼이 눈을 찌르기에 머리카락 좀 자르자고 해도 다른 아기들이 다 그렇듯이, 소은이도 좀처럼 어렸을떄부터 미용실에서 눈 꼭 감고 머리 자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는데, 아니나다를까, 내가 넌지시 오메, 어찌까, 소은이가 머리 안 짜르믄 아빠 혼자 기차 타고 칙칙폭폭 포항 할아버지랑 엄마랑 만나고 와야 쓰겄다~ 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열심히 옆에서,  그려, 소은아, 어찔려? 주말 내내 무서운 할머니 할아버지허고 TV도 못보고 집 청소허고 그러고 있을려? 추임새를 넣어주시니 소은이 결연히 일어나더니 옷을 훌렁훌렁 벗고는, 그래, 결심했어! 로 일세를 풍미했던 이휘재 씨의 인생극장을 보는듯이 주먹을 꾹 주고 팔꿈치를 아래로 내리면서, 그래! 머리카락을 짜르자! 할머니가 안 아프게 도와주실거야! 라며 보무도 당당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저러다 한번 울지 싶어서, 혹시나 초콜릿이며 장난감을 들고 아버지와 나는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조용하게 머리카락을 잘 잘랐을뿐 아니라, 꽤 힘들고 좀이 쑤셨을텐데도, 할머니이, 좀더 참아야 돼요? 라고 의젓하게 물어봐주어서 밖에 서 있던 나와 아버지가 배꼽을 잡았다. 아이는 어머니 식으로 표현하면 몽실언니(요즘 아는 사람 있나^^;;), 세련되게 말하면 옛날 아멜리에 식으로 머리카락을 깜찍하게 잘 잘랐다. 그 외에도 말을 안 듣는 상황마다 아따, 소은아, 밥 안 먹을라믄 아빠 혼자 기차 탈라네~ 안돼애! 소은이 밥 먹을거야! 아따, 소은아, 잠 안 자면 아빠 혼자 코 자고 내일 기차 탈라네~ 아니야, 소은이도 잘거야! 아마 오은영 선생이 보셨다면, 아이 협박한다고 별로 좋은 말씀은 안하셨을테지만, 그래도 요긴하게 잘 써먹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많은 가족들이 함께 열차에 타서 아닌게 아니라 벚꽃 철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는데, 참으로 그 날따라 전소은은 정말 여우였다. 내 옆자리에는 소은이보다 좀 더 큰 언니오빠를 둔 4인 가족이 타고 있었는데, 나보다 좀 더 형님뻘일 아버지 또한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초등학교 저학년은 되었을법한 아들이 같이 놀자 칭얼대어도 눈만 감고 주무시자, 결국 앞자리에 딸과 함께 앉은 부인께서 짜증을 내셨다. 아니, 오빠는 대체 왜 애가 우는데도 안 봐주는거야! 부부간에 잠시 정겨운 대화(^^;;)가 오고 가더니, 결국 아버님이 모든 짐을 들고 앞자리에 타고, 어머님과 두 남매가 두 자리에 함께 끼어앉았다. 그때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전소은, 요망하게도 큰 소리로 '아빠, 나는 조용히 책볼래요!' 그러더니 유독 티를 내면서 뒷자리에 끼인 여행 책을 펼쳐 '아빠, 이거 맛있어보인다, 나중에 사주실거예요?' 라든가 '아빠, 여긴 어딜까? 나중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가요?' 하며 자꾸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야, 너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안 그래도 두 남매가 번갈아 칭얼대면서 전화기로 게임하게 해달라, 영화 보여달라, 등쌀에 지친 어머님은 앞의 남편 한번 흘겨보다가 소은이 한 번 보다가 괜시리 짜증 '야, 너희들도 조용히 해!' 소은이가 가만히나 있어주면 좋으련만, '아빠, 열차에서는 조용히 해야 해요! 쉿, 소은이는 조용히 책볼거야!' 재차 얘기하지만, 너 진짜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그래도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그렇게 잘 버티고 나머지 30분은 조용히 휴대전화 작게 틀고 유튜브 보며 잘 도착했다. 시간 맞는 차표가 좀처럼 없어서 아내가 퇴근 후에 차를 몰고 동대구까지 나와야 했는데, 그 북적북적 큰 동대구역에서 소은이는 제 어미를 잘도 알아보고(당연한건가?^^;;) 엄마아아아아, 보고 찌퍼져요!! 하며 덥썩 안겼다. 그 모습이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해서, 참말로, 암만 잘해줘붜야 소용없당게, 즈그 어미는 못 이겨부러, 즈그 어미가 최고여, 내가 탄식조로 말하자, 옆에 지나던 중년 신사께서 껄껄 웃으면서 소은이와 아내를 쓰윽 보시고는 지나가시었다.



2. 둔한 아비.


소은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아내 동네 근처 천변에서 달리기도 하고 권투 연습 좀 하려고 도복 바지만 챙겨왔는데, 제 어미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잠자리가 바뀌어 그런지 아이는 아침 여섯시 무렵부터 깨어 무서운 꿈을 꾸었다며 엉엉 울었다. 위스키 한 모금에 돼지국밥 한 그릇 뚝딱했더니, 아주 배가 찰 정도로 먹지는 않았어도 갑작스럽게 뛰러 나갈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아내와 아이가 잠시 놀면서 세탁기를 돌릴 동안, 나는 아내의 거처에서 권투 연습을 했다. 아내의 거처는 제법 널찍하고 자질구레한 세간살이가 없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틀 연습도 할 수 있을 듯 보였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원투를 쳤고, 제자리에 서 있더라도 대각선으로 몸을 빼면서, 동시에 체중의 반동으로 복부에 훅을 넣고 다시 반대로 얼굴에 훅을 때려넣은 뒤 바로 앞손으로 어퍼를 치는 접근전 연습을 했다. 제아무리 접근전에서의 주먹 연타라도 허리를 뻣뻣이 세운 채로 친다면, 뼈대가 굵은 거한들 이외에는 버텨내기 어려울 터이다. 그래서 옛날 권투사들이나 베어너클 시합의 선수들은 보법을 단련하지 않아도 맨주먹을 버텨낼 수 있도록 하나같이 우람한 선수들이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제자리에서도 반동을 짧게 걸어 무호흡으로 연타를 칠수있는 연습을 삼사십분 정도로 땀을 쭉 빼도록 연습했다. 아내는 왜 옛날 로마 귀족들이 콜롯세움에서 격투 시합 보는지 알겠다며, 낄낄대며 구경했다.


3. 새마을 운동


새벽 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는 노래야 알지, 나도 새마을운동 세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마을 운동 정신뿐 아니라, 그 운동조차 이어내려오고 있었다. 구미 등지는 옛 각하의 고향이자 생가 터가 있는 곳으로 2대에 걸친 부녀 대통령이 사랑받았던 곳이다. 오죽하면 뺨에 칼을 맞고 깨어나자마자 '대전은요?' 한마디로 선풍적인 인기를 되찾았던 옛 여성 대통령의 지지자께서는 '나는 때려죽여도, 나라 팔아먹어도 그 분 찍을거예요.' 할정도로 골수 표밭의 산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새마을기념공원 및 기념관이 있었는데, 거기에 무료로 예약하여 놀 수 있는 키즈까페 같은 곳도 있었다. 어른들은 교대로 3층까지의 기념관을 구경했고, 또 한명씩 보호자로 아이와 함께 놀았다. 몇가지 놀란 점이 있었는데, 일단 뭐가 되었든 돌아가신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자체를 폄하할 순 없겠다는 것, 또한 친필 연설문에서도 보이듯이, 참모진들이 함께 구상했겠지만 전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이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 생각보다 훨씬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획을 구상했다는 것 등이 눈에 띄었다. 또한 같이 노는 아이들 중에서 생각보다 혼혈 아이들 및 엄마들이 많아 그 점도 놀랐고, 또 바깥에 어른들 보라고 틀어놓은 TV에서는 레너드 디캐프리오 주연으로도 유명했던 '블러드 다이아몬드' 의 실제 배경이 되는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싼 소년병 참극에 대해 방영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 세계의 모든 아이들이 똑같이 행복할 수 없어서 슬펐다. 부모의 손발을 하나씩 잘라 협박하면서 광산에서 귀금속을 채굴하는 중노동을 시키고, 어린 아이들은 일찍부터 납치하여 억지로라도 마약을 들이부어 약의 노예가 되게 만든 뒤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시킨다. 광산을 타고앉은 군벌 포데이 상코는 대체 어떤 인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아 끔찍하고 무서웠다.


4. 늘 사위를 사랑해주시는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많이 피곤하실텐데도, 부산에서 예까지 열차를 타고 오셔서 회를 네 접시나 싸오셔서 실컷 먹게 하셨다. 늘 먹던 회야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소했지만, 아버님께서 특별히 준비해주신, 뼈째 썬 붕장어회- 아나고덮밥은, 그리 먹어본 적이 없어서 더욱 놀랍고 맛있었다. 채소를 잘게 썬 뒤에 따뜻한 밥에 뼈째 썬 붕장어회를 가득 올려서 초장을 생각보다 많이 치고 회덮밥마냥 비벼먹는 것인데, 초장맛에 다 가려지지 않을까 싶지만, 구수한 밥 사이사이마다 비벼진 붕장어 살맛이 진하게 기름져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이렇게 먹는 법도 있구나 싶어서 술이 절로 들어갔다. 아버님께 가성비 좋은 복어탕도 대접해드렸고, 아내의 소개로 미나리 생산 농가에 가서 그 유명한 유학산 청도 미나리 삼겹살도 먹었다. 살점이 두툼하고 쫄깃하게 씹히는 한돈 삼겹살도 맛있었지만, 삼겹살 기름에 숨만 살짝 죽도록 익힌 미나리는, 입에서 씹는 순간 풀대에서 채즙이 폭발하듯 터지고, 싱싱한 풀향이 가득 코를 뚫고 올라와서 삼겹살 없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또 술이 술술 들어갔다. 다만 아버님은 러시아인, 고려인들과 손발을 겨뤄야할 안산 대회를 많이 걱정하셨고, 절대 다치지 말기를 신신당부하셨다.



5. 남쪽은 이미 봄, 벚꽃놀이.



아버님이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지만, 아직 많이 피곤해하셔서 아버님은 자주 많이 주무셨다. 외할아버지가 주무시니 아이도 잤고, 아내도 밀린 잠을 잘 떄 나는 마저 술을 깰 겸 아내 주변 동네를 휙휙 돌았고, 너무 노래를 하고 싶어서 근처 주택지 동전노래방에서 3,000원어치 노래도 한 삼십분 하고 왔다. 다만 아내는 밤늦게는 절대 혼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원한 관계이긴 했지만 아내 동네 주변에서 사람이 셋이나 죽어나갔다고 했다. 아니, 이 사람아, 여그가 뭔 멕시코여?? 아버님 아침에 국 드셔야 됭게 금방 그것만 사갖고 올라니까 걱정 말고 아버님과 애 보고 있으랑게로, 해도 아내는 절대 안되니더, 여기 야밤에 불도 거의 없고 을매나 무서운지 아능교? 내도 코앞 마트 갈라캐도 차 끌고 나간다 아입니까, 운전도 몬하고 술은 묵어가 시비도 걸리몬 우얄라꼬, 하면서 아내는 기어이 본인이 차 타서 아버님 아침밥과 내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왔다. 하기사 아내의 동네를 걷고 술을 깨면서, 골목 곳곳마다 문신 가득하고 눈에 힘이 가득 들어간 외국인들을 종종 보긴 했지만, 설마 그럴라고?? 싶긴 했다. 어쨌든 아버님도 괜히 위험 무릅쓸것 없다며 만류하셨고, 아내는 차를 잘 타고 다녀왓다.


낮에 보는 아내의 동네는 이른 벚꽃, 개나리가 가득 피어서 이미 별천지였다. 금오산 주변이야 이미 젊은 남녀들이 가득 몰려나와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특히 대형견, 소형견을 따로 나눠 놀게끔 하는 반려견 공원도 있어 소은이도 무척 즐거워했다. 경상도 개 키우는 사람들은 다 몰려나온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농담 삼아 개판, 정말이지 개들의 천국이었다. 콜리 라고 하면 보더콜리, 혹은 브로콜리...(...) 밖에 몰랐는데, 러프 콜리라는 견종이 또 있었다. 알고보니 그 유명한 명견 래시도 이 종류라고 하는데, 바로 이 커다란 개를 끌고나온 중년 신사가 한분 계셨다. 말총머리를 멋지게 묶고 청바지를 입고 나온 멋쟁이 신사의 얼굴은 기쁨과 자랑으로 넘쳤는데, 가는곳마다 소은이와 나를 비롯해서(아직 술 덜 깨서 기분 좋을무렵)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커다란 개를 보며 물어보고 귀여워하고 관심을 가져주었기 떄문이다. 나야 벚꽃 속에서 뛰어노는 소은이가 더 좋았지만, 그 중년 신사의 얼굴에서 희색이 떠나가지 않기에 나는 나중에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니, 뭔 소은이 칭찬하믄, 나 좋아하는맹키로 저 양반도 엄채(엄청) 좋아허네잉. 아이고, 당연하지, 이 사람아, 안 그렇겠니껴, 저 사람들한테는 개가 자식이라, 지 자식 이쁘다고 사람 다 몰맀는데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데있노. 음, 그런가 싶었다. 하여간 벚꽃은 눈처럼 가득 피었고, 소은이와 아내는 이뻤고, 나는 술이 적절히 취해서 좋았다. 나는 처가 동네에 가면, 아버님 걱정하시니까 항상 17도짜리 참을 마신다. 나는 지역 가면 지역 소주를 주로 마시는데, 참 소주는 공장제 소주치고는 참 순하고 뒤끝이 없어서 좋다.



6. 회자정리 거자필반- 이별.


노는 날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금요일 저녁에 한숨 자고 토요일 좀 놀고 나니 벌써 가야할 주일 저녁이었다. 아이가 제 어미와 헤어지는 일을 늘 힘들어해서,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며 소은이 눈을 맞추고, 서울말로 또박또박(아이앞에 단결하는 영남호남^^;;) 소은아, 이제 아빠랑 소은이만 같이 올라갈거야, 엄마는 회사 갔다가 또 주말에 올거야~를 반복하곤 했다. 아이는 이틀간 푸지게 놀아서인지, 역으로 가는 차 안 뒷좌석에서 싫어요, 엄마도 같이 가요, 를 몇번 반복하다 코를 골며 고개를 꺾곤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다행히도 김천구미역 도착하여 기차 소리에 잘 깨었고('싫어요! 안돼요! 집에 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사건 이후로 늘 무서운 김천구미역^^;;) 멍한 얼굴에 계속 속삭여서 소은아, 엄마는 다음에 또 만나~ 까진 잘 했는데, 막상 열차에 타니 창문을 계속 바라보며 엄마 안녕, 엄마 안녀엉... 하다가 기어이 엄마가 보고 찌퍼요~ 으허허허허헝 하면서 막 우는 것이다. 난감해서 이걸 어쩌나 하고 있는데 또 한마디 아빠아, 엄마가 보고 찌픈데 쉬야도 마려워요, 하며 다리 사이를 꼰다. 그래서 황급히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가는데, 아뿔싸, 남자화장실에 누군가 있다. 저녁 6시 서울행 열차의 복도 입석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중 젊은 부인 한 분이 '아저씨, 여자화장실은 비었어요.' 하시기에 아이고, 근디 야가 혼자서 못 강게... 저는 여자 화장실을 못 들어강게요. 하니까 그분이 픽 웃더니 소은이를 보며 '아가, 아줌마랑 같이 들어갈까?' 해서 화장실에서 소은이 일 치르도록 도와주셨다. 소은이는 엉엉 울면서도 네에, 고마쯥니다, 하고 안에 들어가더니, 아이고, 웬 박연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꽤 소변을 오래 참은 모양인데, 저 나이때가 귀여워, 크면 말 안듣지, 아이고 애가 이쁘게도 생겼네, 하시던 복도의 부인들 중 한분이 귀에 번쩍 박히는 말씀을 하셨다. '아마 애가 엄마랑 떨어지기 싫었나봐, 오줌 소리 봐, 아이고 변기 깨겠네, 오래 참았나봐.' 아닌게 아니라 소은이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빠, 나 열차 화장실에서 쉬야 할게요.' 라고 하기에 '아, 이 녀석이 열차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걸 알고 있구나.' 해서 대견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제 어미와 떨어져있기 싫어서 화장실도 안 가려고 했었구나 라는  생각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이는 한동안 전화기를 보며 잠잠했지만, 내릴 때가 되자 또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아빠, 열차 내리면 엄마 있어요? 에레베이터 타면 엄마가 기다려요? 집에 가면 엄마 와요? 계속 물어봐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나를 다 쳐다보게 만들었다. 결국엔 엘레베이터 함께 타던 어르신께서 '아니, 대체 애 엄만 어데 갔길래 이 공주를 이래 울리나. 아버지야, 뭔 일있나?' ....뭔 일 없습니다, 어르신! ㅠㅠㅠ 다음에는 '아기 엄마는 지방에 직장이 있는 주말부부입니다.' 라는 셔츠라도 입고 다녀야 될까보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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