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옛 유행가 가사처럼.

by Aner병문

그러므로 나는 원래 음풍농월하는 문사가 되기 위해 십대때 이미 오천권이 훨씬 넘는 책을 읽었고, 늘 습작을 했고, 제가 무슨 아인슈타인 박사라고 체육시간을 늘 싫어하는, 톡 치면 굴러갈듯한 퉁퉁한 소년이었으니, 당연히 국문과를 가서 시건 수필이건 소설이건 문장따라 단어따라 한없이 빠져 지내고팠으나, 그렇다고 해서 운명처럼 배우게 된 철학이나 또한 마침내 십년을 넘어 평생을 단련하게 될 태권도 등의 무공을 겉멋으로 익힌 것은 아니다.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서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다는 핑계로 나는 내 삶을 내 것이라고 느끼고 바라볼 여유를 갖지 못했고, 갖지 않았다. 나는 늘 책이나 음악, 영화에 빠져 혼자만의 공상에 빠져 있었는데, 그는 곧 무조건적인 애정을 갈구하는 결핍의 산물이었고, 그나마 아주 창조적인 리비도로 연결되지 못했다. 나는 내 몸을 버려두듯이 나 스스로와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관심했고, 늘 손맡에 펴는 책처럼 언제든 사랑해주기만을 욕망했다. 그러므로 어쩌다 이 일그러진 토대 위에서 설사 그럴듯한 문장이 나와 주목받게 된더라도, 오히려 내게는 독이 되었을 터이다. 십대 때부터 이십대 후반까지의 나는 형편없이 휘어져있었고, 지금보다 더 비겁했기에, 나는 내 삶을 우선적으로 바라보고

세워야했다. 따라서 나는 감히 말하건대, 내 철학을 만나 비로소 내 믿음도 말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아시는 분은, 철학으로 끝내 나를 돌이키시었다.




그러므로 거리의 인문학, 은 서소문 일대의 노숙자들에게 한끼 밥보다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는 성 프란시스 대학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신들에게 인문학이 무슨 소용이냐 는 세간의 비웃음에 노숙자들은 당당히 말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 끼의 밥과 술, 잠자리를 위해 싸우고 다투던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기에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철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찾고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답해왔다. 가장 신체 기능이 좋을때의 어린 몸을 썩혀두었듯, 버려둔 내 삶을 살피고 재건하여 더이상 타인과 불필요한 오해와 상처로 얽히지 않고자 했던 나다운 대답이었다. 그로부터 나아가, 설명 이란 결국 타인을 전제로 하는 행동이다. 스스로는 납득하면 그만이지만, 결이 다른 타인과 부드럽게 화합하기 위해서는 설명과 대화가 필요하다. 결국 철학은, 본질적으로 무리짓고 사는 인간들의 화합을 위한 학문이라고도 하겠다.



늘 자주 말해왔듯이, 현대 사회는 혼자여도 괜찮다고 미친듯이 세뇌하듯 최면걸듯 되풀이하는 사회다. 혼자 사려니 외롭고 무섭고, 연애하려니 돈 뜯고 속이고 때리고 헤어질때 칼침을 주며, 결혼하려니 궁상맞고 속썩고 머리아프고, 애 낳으려니 아프고 괴로울듯한 세상이 되었다. 아무와도 관계짓고 싶지 않고, 혼자 먼지처럼 살다 바스러져 없어지리라는, 전화기에 매인 구도자 같은 젊은이들이 한국 사회의 절반이 넘는다고 했다. 나머지 절반은 오십대 이상의 중노년층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끔찍한 사회에서, 단순히 두 발로 걷고, 말할 줄 알고, 사람처럼 생겼다고 더이상 사람이라 할수 없다. 사람을 흉내내는 일은, 만화 속 기생 생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더이상, 저 편하자고 제 아이를 버리고 죽이며, 헤어지자고 연인과 그 부모를 찌르고, 결혼하고나서도 삶에 책임지지 않는 이들을 사람이라.여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설사 개처럼 생겨, 쫑긋한 귀와 길쭉한 입과 북실한 털을 지녀 네 발로 걷는 이라도, 사람처럼 느끼고 행동하고, 말할줄 안다는 사실을 넘어 대화가 된다면, 그를 비로소 사람이라 할 것이다. 사람 무리 속에서 받아들여져, 함께 살아지는 이만이 사람이다. 그러므로 저 옛 유행가 가사처럼, 마음이 이뻐야 여자라고 했듯이, 사람이 사람다워야 비로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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