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惑의 一日語學 49일차 - 옛것을 더듬는 일
**Watsonville wonders
The floral offerings here, barring those evocative of cosmos, were like verses in a foreign tongue. Yet, as I beheld the artfully nurtured blooms flank the roadsides, it dawned on me that these were no mere wildflowers. Their vivacious colors and tender petals echo the wild blossoms of Baekdu Mountain.
**단어장
floral 꽃같이 아니었나… ? 맞히긴 했으나 긴가민가 했으므로 다시
mere 단순히, 순전히, 역시 마찬가지로 긴기민가 했으므로 다시 (2)
barring 뭔가의 ing 형태인가 했는데, 이 없는, 제외되는
evocative 환기시키는, 연상시키는
nurture 양육하다,
dawn 새벽 은 잘 알지만, 따라서 동사로 쓰일때는 시작하다, 싹트기 시작한다, 뭐 이런것도 있군요.
flank 버티다는 뜻인줄 알았지만, 옆구리(하긴 힘 많이 들어가지…) 측면에 서다, 는 뜻도 있군요
myriad 무수히, 이것도 잊어먹어서 머쓱. 다시 씀.
vivacious 활발한, 생기있는
petal 꽃잎
** 병문이 번역
꽃들이 요청받듯 피어날때, 그처럼 코스모스의 향기가 날리지 않더라도, 꼭 외국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가 가득히 예술적으로 피어 자라는 꽃들을 볼때마다, 그것은 단순히 내게 야생화로서만 다가오진 않는다. 그들의 발랄한 색깔과 부드러운 꽃잎들은 백두산의 야생화처럼 메아리친다.
** 파파고 번역
코스모스를 연상시키는 꽃을 제외한 이곳의 헌화는 마치 외국어로 된 구절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공들여 키운 꽃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이 꽃들이 단순한 야생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화사한 빛깔과 부드러운 꽃잎이 백두산의 야생화를 연상시킵니다.
ㅡ echo도 연상시킨다는 뜻이 있었구나! 내 해석은 이번에는 의역이 더 많이 들어갔다ㅜ
**김성동 천자문
맨손으로 소뿔을 쳐날리고, 차돌을 깨부수며, 아름드리 나무로 세운 옛 전신주조차 남아날수 없었다는 전설적인 공수가 배달 최영의 총재께서 창시한 극진 역시 시대의 흐름을 피할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동남아 왕국에서 군림해온 무에타이와의 만남으로 킥복싱이 생기는가 하면, 찌르기와 돌려차기에도 끊임없는 변화와 개량이 생겼고, 여전히 강할지언정 극진무적 기치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유파가 나오기도 했다. 그 중 안면타격, 급소공격, 던지기, 조르기, 박치기까지 허용하며 진정한 무체급, 무규칙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옛 대도숙, 현 공도空道 는 그 끝을 달린다고도 할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와 개량은 비단 극진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무공에서 빈번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ITF 역시 이사회에서 늘 틀의 해석이나 기술의 용도, 규칙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학문이라 다를수없다. 언뜻 고학 古學 이라 하면 이미 오래 전 고정되어 바꿀수 없거나 변화할수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나 지금도 사서오경은 물론이고, 도덕경 5천자도 끊임없는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래된 학문이라 하여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 현대에도, 미래에도 인간이 사는 이상, 인간의 사유를 논하는 이야기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몸을 갖고 있는 이상, 신체 활동에서 벗어날수 없음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천자문이며 유학이 지금에야 고리타분해보이겠지만, 한자를 통해 해석되는 세상의 기초이자, 최신 과학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마치 유튜브나. 과학갤러리처럼 당대의 논의는 활발하게 구성되었다. 답문서 答問書 에서 노리나가 는 불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들에 대해 손쉽게 쓰기란 너무도 쉽다, 물이 왜 차고, 불이 왜 뜨거운지, 느끼기란 쉽지만, 그 원인을 알기는 어려운데도, 송의 이학자들은 승려마냥 음양이니 리기理氣 니 일부러 허황된 개념 을 만들어 사람을 속인다, 며 신랄하게 공박했다. 일본 근대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 역시 이 주장을 이어받아 허황된 개념 사유에 벗어나야 비로소 올바른 궁리 窮理 에 들어설수 있다.
여왕의 깃발 아래 영국은 산업혁명을 먼저 일으키고, 강력한 함대를 바탕으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며,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자본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흘러들어오는 것은 돈과 물건뿐이 아니었기에 나카사키 데지마를 통해 유입된 난학 蘭學(holland 의 음차 화란 和蘭 에서 딴 것, 당시 막부는 새해, 명절, 연말 등에 네덜란드 대사들을 들여 최신 학문과 세계 정세에 대해 보고받곤 했다. 그 경로를 통해 유입된 철학, 의학, 병법 등의 총칭) 은 일본의 사상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결국 고여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불변해야할 진리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것은 변하고 바뀌며 세상에 남는다. 공부도
무공도 다 그렇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느 고정된 개념에 집착하지 말라셨고, 예수님은 덧없는 속세에 미혹되지 말고 진리를 붙잡으라 하셨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