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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Jul 30. 2024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기억을 추억하며 ㅡ 은원, 은, 원

한차현, 김철웅, 은원, 은, 원, 나무옆의자, 한국, 2024.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했다. 지금도 대중적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른바 밀레니엄 시대를 잠깐이나마 지배하던 디카 시절의 광고 문구다. 그때 나는 바람에 날리는 이파리처럼 떠밀려 사는 십대 소년이었고, 어머니 아버지 눈을 피해 멀리 주황색 지하철 노선 동쪽 끝에서 음악을 하겠답시고 어렵사리 다니곤 했다. 그때의 나는 늘 책과, 친구 형에게 빌린, 꼭 일곱 곡의 노래만 들어가는 구형 MP3를 들고 다니던, 약하고 무른 몸의 소년이었다. 나는 막연히 젊은 사자 짐 모리슨과 파격의 랭보, 혹은 소설가이면서 가수였던 레너드 코헨을 동경했고, 그저 돈 끼호떼마냥 세상을 유랑하는 음유시인 같은 가수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 무공은 내게 먼 얘기였고, 나는 내 몸이나 일상처럼 가장 가깝고 중요한 것들을 그저 가볍게만 생각했었다.



그 유명한 영화 메멘토는 1분 이상 기억을 유지하지 못해 몸에 새긴 문신과 속성 사진, 짧게 적은 쪽지로 삶을 지탱하는 이의 삶을 다룬다. 거꾸로 되감기는 영화 속 서사에서, 주인공은 최선을 다해 주체적인 복수를 이루고자 노력하나, 알고보면 중요한 기록을 조작한 주변인물들의 수에 놀아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의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나, 조선 ㅡ 중국의 바둑 두는 신선과 한담을 나눴더니 그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마치 인터스텔라마냥 저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더라는 설화도 있다. 기억은 그처럼 중요하다.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여인 때문에 차현 형님 소설의 단골 주인공인 차연은, 자신의 기억이 과연 현실과 합치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것들은 맞는지 고민한다. 알고보니 그의 소중한 은원은, 이미 너무 많은 복제인간이었고, 그래서 차연은 자신과 기억을 공유하는 여인을 찾아 모험한다. 즉, 정체성은 역시 외모가 아니라 기억, 자의식에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은원은, 끝내 one 으로 응집해 회귀할수 있을 터이다.



김철웅 감독님을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처음 뵈었다. 그 분의 단편, 장편,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각각 하나씩 보고 다시 만나뵙기로 약속했다. 단편 영화는 연출이 좋았지만 서사의 당위성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장편 영화는 연출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서사가 소설처럼 좋았다. 다큐멘터리는 이미 있는 사실을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취재하고 배열하고 설명하는지 에 따라 그 전달되는 주제가 다를 터이다. 어느 쪽이든, 책이나 겨우 읽을줄 아는 내가 감히 아는척 할수 있지 않다. 다만, 형님의 소설에 확실히 감독님의 흔적이 느껴져 반가웠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존재에 대한 의심을 강박적으로 서사에 넣으려 하신건 아닌지 아쉬웠다. 형님의 초기작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환상으로 향해갔는데, 아마도 Z부터였는가, 하여간 언제부터인가 형님의 글은 가끔 그 건너뜀이 어렵다. 이번 배명훈 선생 연작소설을 읽으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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