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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어떤 응어리들에 대하여

by Aner병문

지금 나는, 크게는 2교대처럼 오전에 일하거나, 혹은 오후에 일하거나 하는 직장에 다니다보니 아내가 멀리 내려가 일하는 평일에 오후 늦게 출근한다면 아침에 아이와 함께 일어나 등원 준비를 돕고, 어린이집에 보낸 뒤에 비로소 버스를 타고 도장에 갔다가 그 다음 정류장인 회사로 향한다. 어차피 도장 가면 땀 한 번 뺀 뒤에 목욕하고 면도하니 처음에는 대충 다녔다가, 동네에서 어머니 아시는 분들이라도 만나면 동네 백수처럼 보인다며 어머니께 한말씀 듣고, 또 그 어린이집의 옆반 교사기도 한 여동생, 즉 소은이 고모한테도 자기 동료들 보기 창피해죽겠다고 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면도한 뒤에야 비로소 소은이를 깨운다. 그나마 겉꾸밈에 크게 신경을 아니 쓰는 아내 덕에 그 쪽으로는 신경을 덜 써도 되어 다행이긴 한데 하여간 애 아비이자 부모님 자식으로 사는 일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던 와중,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딸아이가 아침밥을 먹으면서 '아빠, 나 자전거 타고 어린이집 가면 안돼요?' 하기에 나는 별생각없이 '머덜라고 자전거를 타고 가냐? 아빠랑 손 잡고 자방자방(사뿐사뿐, 타박타박 정도에 해당하는 전라도식 의성어, 실제 발음은 자바아아앙~ 자방, 정도 된다.) 가믄 되제.' 실제로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편이 훨씬 좋거니와, 자전거를 타고 가면 아이가 혼자 페달을 밟을 수 있어도 방향을 잘못 잡을 수 있기에 자전거 뒤쪽에 달린 큰 손잡이를 늘 잡고 밀어줘야 되어서 대화를 하며 갈수가 없어 나는 별생각없이 그렇게 말했었다. 아이는 잠깐 아랫입술을 뿌우 내밀더니 '히잉, 할아버지하고는 자전거 타고 갔는데!' 하기에, '응, 나중에 또 아빠 없을때 할아버지허고 그렇게 가잉? 아빠허고는 손 잡고 가게잉.' 했고, 나는 아버지께서 힘드셔서 소은이를 그냥 자전거 태워서 밀고 가는게 편해서 그러신 줄로만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 날 아침 아이는 나와 손 잡고 수다 떨면서 별 문제없이 어린이집으로 잘 갔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가던 길에, 어느 소년이 제 할아버지와 역시 같은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등원하는데, 그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 눈이 슬쩍 흐려지더니, 갑자기 아랫입술을 쭉 빼물고는, 내 손을 쑥 빼곤 아무 소리도 안 했다. 말만 안했을 뿐이지, 눈은 아래로 푹 내리깔고, 발끝으론 땅을 툭툭 차고, 팔은 기운없이 축 늘어뜨려 마치 동화책 속 한 장면처럼 기분나빠 삐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미 하루 지난 일이라 당시 이유를 정확히 몰랐던 나는, 아이 옆을 따라가면서 '소은아, 왜 그려 갑자기? 어데 화났어?' '아니요.' '근디 왜 그려, 우유 사줄까?' '아니요.' (호오, 우유를 마다해? 하긴 아침 먹은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그라믄, 할머니랑 꼬모 몰래 가방에 초콜릿 하나 사다주까잉?' '아니요.' (아니, 초콜릿까지?!), (때마침 약국이 보여서) '그라믄 소은이 좋아허는 티니핑 밴드 하나 사주까? 난중에 혹시나 다칠때 저거 붙이게.' '아니요.' (뼛골핑을 마다하다니 뭐가 있군!) 계속 똑같은 억양으로 입술은 빼물고, 아니요, 아니요 만 반복하며 다리를 질질 끌면서 어린이집으로 가기에, 뭐가 문제였지, 하고 그 전 일을 생각하다가 문득 자전거에 생각이 미쳤다. '소은아, 너 혹시 자전거 타고 자퍼서(싶어서) 그려? 아까 그 오빠가 자전거 타고 가갖고?' 그 순간 소은이는 '니에에에~' 하더니 대답하던 끝에 약간은 억지로(애들 마음이 다 그렇지 ㅋㅋ) 눈물을 짜내면서 나한테 폭 안겼다. '소은이도오, 자전거어~ 타고 싶었어요!' 아뿔싸, 어제 아침에 자전거 안 타고 걸어간 걸로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응어리졌다가 자전거 타는 소년보고 되살아난 모양이구나. 일찍이 공자의 효 사상을 이어받았다 평가받는 증자의 아내가 시장을 갈때 따라가려는 아이를 말리려고 '집에 있거라, 엄마가 다녀와서 돼지 잡아 수육 삶아줄게.' 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는데, 돌아와보니 이미 돼지를 잡고 있는 남편 증자를 보고 '학식 높으신 선비께서 애 달래려고 한 농과 진담을 구분도 못하시면 어쩝니까?' 하고 타박했으나 증자는 부모와 자식간의 신뢰가 중요하다며, 한번 해준 말은 지켜야 비로소 아이도 믿음을 갖고 클 수 있다 아내를 달랬다고 한다. 역시 유학의 주축을 이루던 선비다운 말이다. 증자는 공부자와 나이 차이가 오십세 가까이 났으니, 그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한비자에 적힌 일화다. 하여 나 역시 소은이와 손가락 걸고, '소은아, 내일 아빠가 꼭 자전거 태워줄게, 내일 꼭 타자! (신뢰의 서울말)' 약속했고, 다음날 아침에 잊지 않고 자전거 태워 어린이집 보내고, 다시 집에 자전거 갖다놓고 도장갔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니 응어리 없는 삶이 있던가. 어른들 일이니 다 알지도 못하고, 다 알지도 못한 이야기는 감히 옮기기도 어려우나, 하여간 우리는 근 이십여년만에 이번 추석에 맞아 멀리 강원도의 고모 댁을 다녀왔다. 아버지께는 누님이 되시는 분이며, 신앙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돈독하시고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살아오시어 우리 가족끼리는 항상 은연중 천사고모 라는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 근 이십년만에 서로 뵈어 어머니와 고모도 마음의 응어리를 푸시고, 아버지는 참 즐거운 추석이라고 좋아하셨었다. 응어리는 누구에게나 있으니, 알고보면 내가 허세스럽게 책을 계속 놓지 못하는 버릇도, 실력이 뛰어나지 못해도 계속해서 어떤 무공을 연습하려는 고집도, 다 내 마음 속 부끄러운 응어리가 다 삭혀지지 않아 있는 일일 터이다. 나는 늘 내 그릇보다 크고 넓고 뛰어난 사내대장부, 군자선비를 꿈꾸었었다.



바다처럼 넓고 무던한 아내라고 응어리가 없을까. 아내는 때때로 비 올 때, 쑤시는 내 몸을 눌러주면서도 한숨을 쉴 때가 있고, 불현듯 돌아가신 장모님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가장 목소리가 비슷한 친척 어른께 전화 걸어 목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고 했다. 대나무는 끝없이 곧고 푸르지만, 그 속은 비어 있고, 아름드리 나무는 겉이 거칠고 휘어질망정 둥치가 굵어 쉽사리 베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옛 사람 이르기를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곡조를 간직한다 했고, 매화는 아무리 추워도 향을 팔지 않는다 했다. 이미 있는 응어리는 삭아 삶의 거름이 되길 바랄 뿐이니, 다만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 때문에 더한 응어리나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비로서 자식에게 응어리를 주지 않기가 이토록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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