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안산논권 安山論拳 ㅡ 결론은 족탈불급足脫不及
0. 칠신탄탄漆身呑炭,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 이 굴욕을 어찌 잊으리?!
몇 번 인용한 적도 있으니, 지백이 조양자에게 죽음을 당하자, 지백을 섬기던 가신 예양이 스스로 숯을 삼켜 목소리를 상하게 하고, 옻독을 발라 외모를 바꾸어 복수를 잊지 않았다는 칠신탄탄의 고사를 말한 적이 있다. 복수란 시간이 지나 무뎌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독이 되기도 하는데, 이별을 통보받고 앙심을 품어 옛 연인을 죽인 졸장부들이 벌써 몇인가, 뉴스에서는 작년만 해도 13,000여명의 청춘남녀들이 옛 연인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다는 집계를 보도했다. 세어진 숫자만 해도 그 정도이니 하물며 헤아림에 들지도 않은 이들은 얼마나 많을까. 복수란 원래 그렇다. 그래서 복수에 대한 성어도 많은데, 진시황을 죽이고자 오랫동안 형가를 기다려왔다는 진나라의 옛 장군 번어기도 이를 갈아 끊어질 정도로 마음을 썩혔다 하고(切齒腐心), 대륙 강남의 패권을 다투던 오나라와 월나라의 군주들이 서로 복수를 잊지 않고자 장작더미 위에서 자고, 밥 먹을때마다 곰쓸개를 핥았다는(臥薪嘗膽) 이야기도 이미 유명하다. 소싯적 역사책이나 무협지 좀 읽었다는 이들치고 이러한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적을 터이다.
솔직히 비록 고등교육 좀 받았다지만, 전문 공부도 하다 말았고, 무공 또한 회사 다니다 남는 시간에 하루하루 연습하는 시간만으로도 겨우 만족하는 40대 아저씨가 무슨 대회 준비에 이를 갈고, 옻독을 바르며, 장작더미에서 잘 정도의 각오를 다졌을 것인가. 솔직히 주말 이틀 간 진행되는 대회 중 첫날 틀 대회는, 집에서 애 봐줄 사람이 없어서 나가지도 못하고 불참했다. 아시아 오픈대회에 참여한 태권도인들이 틀을 겨룰 때, 나는 아이의 이를 닦아주고, 옻독 대신 피부약을 바라주고, 장작더미 대신 애 옆에 누워 잠을 재웠다. 그 날 하루만 그런게 아니라, 아내가 지방에 내려가 일하는 평일에, 회사와 도장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마땅히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비인 나의 것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전문적으로 도장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이나, 혹은 그를 운영하는 사범님들처럼 깊이 있는 훈련을 할 수도 없었고, 그런 재능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약점까지 계속 방치해둘 수는 없었다.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나는 동갑내기 정 사범님께 크게 졌다. 질 수밖에 없는 맞서기이긴 했다. 처음 뵈었을때 흰 띠를 매고, 학구파처럼 굵은 안경을 쓰고 몸을 풀던 정 사범님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국기원 태권도 6단이자 본인의 도장도 따로 가지고 계신 고수였다. 녹화된 영상에서 지나가던 어린 소년이 '엄마, 흰 띠 아저씨가 더 잘하는것 같아.' 라고 말했을 정도로 나는 직사하게 얻어터졌다. 오죽하면 경기 끝나고 전주도장의 ㅅ 형님이 '진짜 조심해야 혀, ITF는 무조건 흰 띠가 제일 무섭당게, 멀 하다 온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 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그 다음 대회에서도 다시 정 사범님과 붙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도 본인 실력에 맞춰 고단자 도복을 입고 오셔서 오해 섞인 망신은 면했으나, 그 때 갈빗대 두 대가 나가서 아내에게 크게 혼나고, 한동안 연습도 제대로 못한 채 엄청 고생했다.
원래 맞서기를 잘하는 축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아무리 전업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명색이 부사범에 3단 체면이 있지, 언제까지 빌빌거리는 실력으로 계속 뻔뻔하게 대회에 나갈수는 없었다. 지난 대회들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첫번째, 나는 일단 정 사범님의 돌려차기를 전혀 대처하지 못했다. 다채로운 발차기만으로 능히 경기를 주도하는 국기원 태권도의 고수답게, 나는 정 사범님의 오른발 돌려차기가 늘 경기 초반에 연타로 터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막거나 피하질 못했다. 두번째, 돌려차기를 어떻게든 받아내고 가까이서 주먹으로 승부 보려 했을때, 그 분은 내 시야 아래에서 몸을 띄우며 그대로 뒷차기를 꽂아버리셨고, 그 공격이 내 갈빗대 두 개를 쪼갰다. 체급도 나이도 비슷했기에, 나는 당연히 정 사범님을 생각하고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항상 첫 교차에 터지는 오른발 돌려차기를 막거나 피하는 연습을 했고, 나를 겨누지 못하도록 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치고 차는 연습을 했다. 과연 내 나름의 분전은 통할 것인가?
1. 망연자실茫然自失 - 정 사범님, 왜 안 나오셨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반쯤은 안 가고 싶었다. 사실 대회 전에 미리 공지된 대진표 때문에 나는 내 상대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니, 첫 회전이 러시아 사범님이신데, 이긴다 쳐도 그렇지, 2회전은 까자쉬 사범님에, 또 상대쪽은 일본, 홍콩, 씽가폴이야? 어느 쪽이든 내가 이길 가능성은 너무 없어보이는데다, 재미로 하려고 하고, 행여나 저번처럼 다쳐서 오면 태권도 못하게 할거라고 아버님께서 넌지시 말씀하시는 바람에(아, 아내의 정보통이 또 장인 어른께로 들어갔구나!) 안 다쳐서 올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고, 무엇보다 그 전날 소은이와 하루종일 놀아주느라 대회 나가기 전에 이미 나는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솔직히 안 갈수가 없으니 아침 일찍 맞서기 장비가 든 가방을 챙겨서 신안산대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계체도 그렇지만, 저번 대회에서도 점심을 먹어버리는 바람에 배가 너무 불러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탓도 있으니, 커피와 초코파이를 대신 챙겼다. 경기가 언제 시작될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며 몸을 풀어야했기에 사이사이 허기가 느껴질때마다 한두개씩 먹었다. 오전 일찍부터 대회가 시작되었지만 유소년부- 성인부- 이어서 장년부의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나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계속해서 몸을 풀고, 쉬고를 반복했다. 대회 당일은 원래 훈련하는 날 못지 않게 운동량 소모가 결코 적지 않다.
2. 예측불허 豫測不許 - 전통 강호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콜라 부사범을 비롯해 여러 사제사매들과 함께 몸을 풀면서 사이사이 경기를 참관했는데, 확실히 대회가 거듭될수록, 비록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적은 ITF태권도라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수준이 확연히 보였다. 이번 대회 태풍의 눈은 누가 뭐래도 키르기즈스탄이었다. 아시아에서 틀과 맞서기를 균형있게 모두 잘하는 일본 팀을 강하게 공박했다. 솔직히 아침부터 몸풀때보니까 코지 사현님 휘하 일본 선수들도 엄청 잘하는 선수들인데도, 키르기즈스탄 선수들이 이번만큼은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 우즈벡, 카자흐, 키르기즈 등, 이른바 ~스탄으로 끝나는 동구권 나라들의 맞서기는 거칠고 우직하고 강렬하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웬걸, 이번 키르기즈스탄 선수들은 아주 빠르고 날렵했으며, 거리를 잡는 솜씨가 기가 막혔다. 항상 반발짝씩 앞이나 뒤로 움직이며 거리를 재어주다가 치고 빠지는 솜씨가 아주 기가 막혔고, 상대의 기세가 올라가면 슬쩍 옆으로 빠져주다가 카운터로 반대돌려차기나 걸어차기 를 차는 솜씨도 일품이었다. 마치 피아노 위에 올려둔 메트로놈마냥 일정하게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발과 주먹을 재고 푸는 솜씨에 적어도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아니, 근데 넋이 나간게 중요한게 아니고, 내 경기할 양반은 대체 누구일까?!
3. 족탈불급 足脫不及 - 발 벗고 나서도 닿지 아니함..
아무래도 경기 대기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지다보면, 연습하다, 안면 튼 외국 선수들과 이야기도 나누다, 또 차라도 한잔 마시다, 또 연습하다, 이런 시간들이 반복되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면, 대진표 속 선수가 누군지 은근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결국 오후 시간대 되어서야 내 첫 상대를 찾을 수 있었는데, 키는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차돌처럼 단단하고 야무져보이는 러시아 형님 사범님을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 큰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 휘하의 제자들을 계속 감독하느라 도복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바쁘신 분이었다. 반팔 소매 밖으로 나온 팔뚝 굵기부터 차이가 엄청났다. 그 모습을 본 콜라 부사범은 더이상 나에게 헛된 기대를 품지 않고 귓속말로, '부사범님, 다치지 마세요, 다치지만 마세요.' 를 계속 반복...(...) 야, 안그래도 무서워죽겠는데 자꾸 겁주지 말아줄래 ㅋㅋㅋㅋ온 가족이 태권도를 하며, 제자들을 이끌고 참가하셨다는, 나보다 두 살 위의 안드레이 사범님. 내가 누군지 알게 되자 여유가 생기셨는지, 경기 직전이 되어서야 도복을 갈아입으시고 몸을 푸시....ㅠㅠ 그래, 형님, 어디 두고봅시다!(웃자고 하는 얘깁니다, 실제로는 무척 인격도 좋으신 고단자 선배님이셨어요.)
결론만 말하자면, 2분 짜리 2회전 경기에서 총 5번 쓰러졌다. 어떻게든 맞지 않고 내 거리를 유지하려고 초반에만 좌우 팔다리 자세를 계속 바꿔가며 경망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잠시, 약 30초 뒤에 첫 공방이 교차했는데, 똑같이 주먹을 날렸는데 나만 쓰러지고 상대방은 멀쩡했다. 사실, 만화나 영화처럼 진짜 동시에 똑같이 서로 맞치는 상황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데, 당연히 신체나 실력의 차이가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먼저 때리는 쪽이상대를 밀어내고 타격을 주기 때문에, 먼저 맞은 쪽은 그만큼 거리가 뒤로 물러나며 올바른 타격을 주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이미 첫 방 맞았을때부터 벌써 내 생각은 '야, 이거 안되겠는데..?!' 였다. 다시 일어나서 거리를 좁혀봤지만 뭘로 맞았는지도 모르게 두어번 더 쓰러졌다. 1회전이 끝나고 어떻게 자리로 왔는지도 모르겠는데, 자리를 지키고 앉았던 콜라 부사범이 내게 물을 먹여주며, '부사범님, 아무래도 안되겠는데요...' 하기에 나도 낄낄거렸다. '내 생각도 그려. 이거 되겄냐?' '일단 발차기로는 도저히 안되겠구요, 가까이 붙어서 주먹으로 승부봐야죠.' '그려, 그러세!' 기운차게 맞받아나갔지만 사실은 그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려고 연습했던, 먼 거리에서의 낮은 돌개차기, 혹은 내려차기로 밀어찍으면서 들어가기, 가까이에서 백스핀 블로우Back spin Blow, 등의 기술이 있긴 했는데, 그 당시에는 쓸 엄두도 안 났고, 기억도 안 났다. 나는 다시 목젖에 발차기를 맞고 마우스피스를 뱉었고, 또 카운터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맞았을때, 나는 그 분이 살짝 내게 속삭여주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I'm Sorry...' 패면서도 좀 미안하셨던듯, 경기 끝날떄까지의 공격은 그럭저럭 맞을만했다.
당연히 깃발 하나도 못 받고 졌다. 솔직히 내 실력으로 이기길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고, 오히려 이런 고수와 다치지 않고 5분 동안 재밌게 경기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내 실력은, 물론 안드레이 사범님이 후반부에 봐주신 덕분도 있었지만, 다치지 않고 잘 막고 흘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 썼다. 그 증거로, 내 발바닥은 다 찢어지고, 온 몸이 안 아픈데가 없다. 그만큼 무리해서 움직여 피하고 막았다는 거다. 안드레이 사범님은 그 다음 상대인 까자쉬 사범님과 그야말로 온 경기장이 울리도록 뻑!뻑! 소리가 나게 치고받으며 그야말로 극진 가라테나 쿠도를 방불케하는, 동구권 특유의 맞서기를 보여주셨는데, 안드레이 사범님은 연달이 승리하면서 금메달을 거머쥐셔서, 그나마 내게도 명분은 주셨다. 그래... 기왕 지려면, 챔피언에게 져야지... 멀리서 경기를 지켜보시던 사범님 말씀하시기를 '어쩌면 쓰러져도 그렇게 맛깔나게 쓰러지냐.. 아 재밌었어 ㅋㅋㅋㅋㅋㅋ' 태권도손기술회의 엄 사범님도 '아 좋았어, 좋았어, 투지가 좋았어!' (십년째 투지만 칭찬해주고 가심) 하고 웃으며 가시고, 사범님 덧붙이는 말씀 '총재님도 보시고, 아주 인상 깊은 게임이었다고 그러시더랔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 총재님 ㅋㅋㅋㅋ
사실 족탈불급이라고 느낄만한 내용은 또 있었다. ITF도 한때는 고단자나 노년 고수들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그 분들의 맞서기 경기를 아예 운영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ITF 고단자 및 노년 선수들의 지속적 요청으로 이제는 나이 지긋한 고단자들의 맞서기 경기도 운영되어 직접 볼 수 있다. 나 역시 아직까지 맞서기는 젊은 선수들이나, 혹은 신체 조건과 실력이 좋은 서양 선수들이 유리하리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이번 고단자들의 경기를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뵌 고단자들 중에는 나보다 작은 분도 계셨고, 힘이 약한 분도 계셨으며, 심지어 경기 전에 팔을 다치신 분도 계셨다. 물론 국기원 선수로서 오래 활동하셨던 김 사범님처럼, 나이도 젊고, 팔다리도 기셔서, 앉은 자리에서 상대 머리를 노리고 제자리에서 돌개차기를 연달아 세번씩 이어서 차시는 분도 계신다. 그러나 꾸준히 연습해오며 연륜을 쌓으신, 중장년의 고단자들께서는, 끊임없이 중심을 바꿔가며 상대가 나를 함부로 겨누지 못하게 했고, 또한 자신이 상대를 쉽게 노려서 치고 찰 수 있는 지점으로 이동하셨다. 씽가폴이나 홍콩의 고단자들을 나는 자주 보지 못했는데, 그 분들은 안면을 방어하도록 손이 아주 높지도 않았고, 나처럼 권투의 자세로 경망스럽게 무조건 좌우 손발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정신사납게 움직이지도 않으셨지만, 허리를 끊임없이 비틀고 발의 자세를 바꿔가면서, 몸 자체를 깔끔하게 쓰셨다. 비록 상대가 훨씬 젊고, 신체 기능이 좋으실지라도, 이 훌륭한 움직임 앞에서 그분들은 항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정말 그 자체로도 많이 배웠다.
4. 다시 칠신탄탄漆身呑炭,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 ?! : 어림없죠, 그럴수가 있나요.
유급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난생 처음 메달을 못 딴 대회였다. 그러나 내 실력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도 잘 끝났고, 참여자도 많아 내 실력으로 상위권에 들긴 무리였다. 다만 대회는 늘 재미있다. 몸이 안 아픈건 아니지만, 저번처럼 어디 금가거나 깨진 곳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회를 한번 치르고 나면, 도장 내에서가 아니라 이 작고 미미한 나도, 세계의 어드메쯤에 위치해있구나 하고 명확히 알게 되어 좋다. 그나마맞서기보다는 좀 나은, 틀 분야를 나가지 못한 건 아쉽지만, 맞서기 연습 비중을 더 많이 늘려서 연습하다보면 언젠가는 통쾌하게 맞서기 승리를 거둘 날도 있으리라 본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길거리에서 나 때려줍쇼 하는 식으로 몸 다 열고, 센 척하며 시끄럽게 덤비는 사람보다, 안드레이 사범님처럼, 온 몸 확실하게 닫고, 다부지게 다가오는 도장의 사람들이 훨씬 무섭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