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문득 생각하지만
노동은 만물에 개입하여, 만물이 나와 관계맺게 한다. 맑스는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기에, 노동하지 않고도 생산수단을 소유해 불로소득과 잉여를 취하는 부르쥬아를 비판했지만, 맑스를 읽고 공감하던 시절에서조차, 나 역시 적은 노동으로 빨리, 많이 부유해지기를 꿈꾸었다. 그러므로, 모든 노동자들은 결과적으로 노동자를 탈출하길 원하며 특히 블루칼라로서의 직업과 정체성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 천국은 오지 못한다는 점에 공감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이 노동이라는 점에 나는 쉽사리 지지할수 없었고, 오히려 벌과 규제로써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로서의 노동을 이야기한 성경적 관점이 내게 더 잘 맞았다.
이제서야 나는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점에 대해 다시금 공감한다. 여전히 부유해지고 싶고, 가능한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처자식과 한가롭게 살며 책 읽고 태권도하고 남는 시간 술 마시고 책 읽는 이들과 이야기나누며 어느 한량이나 아테네 귀족처럼 그리 살고 싶다. 나는 젊은 시절 위험해본 적이 있으므로, 다시금 젊은 날처럼 허랑방탕히 살지 않겠다는 만전의 각오도 있다. 그러나 막상 그런 삶이 주어지게 된다면 내 스스로 좁아지고 곯게 될 가능성 또한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세상과 관계맺고,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직접 파악하며, 다시 세상 속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할수 있을 터이다. 돈으로만 무엇이든 해결하는 이가, 쌀은 어데서 오는지, 설거지는 어찌 하는지, 청소는 누가 해주고 있는지 알게 뭔가. 그러므로 노동은 인간의 주제를 알게 한다. 함부로 무엇이든 소비재로 대체하지 않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