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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누가 누구의 입장을.

by Aner병문

아침 네 시에 일어나 한 시간 가량 뉴스를 튼 채 몸을 풀고, 땀이 오른 몸으로 서서 아침을 먹고 씻고 아침 첫 시간 어학원을 듣고 8시간 넘겨 일하고, 출근 전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과일을 오물거리며 하루 열서너장 책 읽는 흉내나 내고 다시 집에 돌아와 육아와 가사를 "돕고" (도저히 출퇴근도 없는 아내의 하루 노동량에 비하면 휴일이나 퇴근의 가사 노동은 돕는 수준이라고밖에 말 못 하겠다.) 그러고도 체력이 남으면 철학vs철학 을 읽거나 본 훈련을 하다 잔다. 아무리 회사가 버스 이십분 거리로 가까워졌다지만 어학원 한 시간 하고 나면 역시 저녁쯤엔 진이 빠져 책도 거의 못 읽고 기초 수행이나 깔짝거리다 잠들기 일쑤다. 너와 아내는 특히 총각 시절부터 오전 넉 잔, 오후 넉 잔 하루 8잔씩 커피 마시고, 새벽에는 술 마셔가며 몸을 깎아쓴다고 걱정이 많았었다. 그 덕분인지 결혼하고 한 일이년 몸의 축이 느긋해지자마자 다시 예전 부상에 새 부상이 얹히고 온 몸이 쑤시고 아프면서 몸이 확 불었다. 결혼하고 말라가서 걱정시키느니 찌는게 보기도 좋고 맘 편하다는 어른들 말씀이었지만, 빡빡히 사는 하루의 일과가 없으면 불안하여 멍하니 만화책이나 보다 잠들거나 아버지와 술잔을 곁들이며 이십대 모자랐던 효도를 늦게나마 다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늘 모자라서 남들보다 번잡스러웠고, 그래서 나처럼 부족하고 모자란 이들은 늘 "바보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처럼 친근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서 빈 틈을 거만함으로 메우려는 이들은 한없이 경멸하고 빈정거려주었다. 나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엊그제 너의 이른 생일상 술자리에서도 한 이야기다. 그날도 나는 아침 팔굽혀펴기와 스트렛칭을 겨우 하고(스쿼트는? 찌르기는? 발차기는? 아, 왜 하루는 36시간이 아닌거야ㅜ) 회사 앞 어학원으로 향하는 횡단보도를 목도리도마뱀마냥 호다닥 경망스럽게도 건너고 있었다. 폐업과 임시 휴업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을씨년스러운 오래된 공장지대의 골목에서 행색이 과연 그러한 노숙자 아저씨가 다리를 쭉 뻗고 때가 낀 손등을 긁으며 아침부터 번잡스러운 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입성은 그러할망정, 서울역 용산역 광화문, 소라광장, 낙원악기상가, 종로 3가, 대전역, 포항역, 강릉역 다양한 노숙자들을 겪어본 내가 본 이들 중 가장 눈이 맑고 편안해보이는 인상이셨다. 술에 찌들어 핏발이 서 있지도 않았고, 오늘은 무얼 먹고 어데서 자야하나 생계에 쫓겨 곤두서 있지도 않은, 시커먼 얼굴과 대비되어 유리알 구슬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눈이었다. 그 눈과 내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마치 나더러 보란듯이 사지를 쭉 뻗고 기지개를 켜더니 저한테는 더할나위없이 소중할 허섭스레기를 실은 조그마한 수레를 베고 털썩 누웠다. 아, 저런 태도가 바로 하늘을 이불삼고 땅을 자리삼아 동가식서가숙 한다는 나그네의 자세인가. 조선 시대 김립 병연과 금오신화 김시습이 저랬을까, 진흙탕에 뒹굴어 벼슬을 사양했다는 장자가 그랬을까, 그보다 오래 전 알렉산더 대왕더러 해나 쬐게 비키라던 디오게네스가 이랬을까, 강신주 선생은 노숙자는 부끄러움조차 마비된 생명들이라 했고 우리 목사님께서 안타까운 인생들이라셨지만, 장자의 말마따나 뉘가 노숙자가 되어 그 속을 헤아려볼 것인가. 나는 그 여유가 그렇게도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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