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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영화감평)

칼 ㅡ 가장 짙고.강렬한 수컷의.영화

by Aner병문

서극, 주연 조문탁, 진호, 웅흔흔, 주가령, 칼刀, 중국, 1995.



여기, 동강난 칼을 쥔 한 명의 사내가 있다. 그는 아비를 잃고, 도검장에서 쇠를 벼리어내며 자랐으며 용이 날듯, 신묘한 무공을 지닌 마적 두목에게 복수도 해야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한 팔을 잃었고, 얄궂게도 부러진 칼과 잘린 팔로도 모자라, 그나마 희망을 걸어볼만한 무공비급조차 위아래로 찢겨 있다. 앞부분이나 뒷부분을 알수없게,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앞뒤로 찢긴 것도 아니고, 가로로 절반이 뜯겨 윗부분만 남은 책이니 더 절망적이다. 모든 무공은 보법, 즉, 발놀림과 하체 움직임이 중요한데, 옛날식 교본의 아랫부분이 뜯겼으니 실제로 영화 속에서도 약간의 글과 상체 그림만 보일뿐, 실제 요체는 없다고 봐도 좋다.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영화는 많은 평론가들 및 관객들이 극찬하는 동사서독보다 못지 않게 음울하고 우울하며 무거운데도 심지어 사납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여자 배우는 두명 밖에 나오지 않으며, 그야말로 수컷이라 할만한 거친 사내들만이 득시글거린다. 영화의 색채는 90년대 영화임을 감안해도, 화사하거나 세련되기보다 거칠고 진하다. 모든 편집은, 꼭 필요한 장면만 전달하겠다는 감독의 의도를 내보이듯, 장면과 장면 새의 연결성이 없어 설명이 부족하고, 피와 살점이 튀도록 잔인한 검투 장면에서는, 모든 사내들이 마치 경극을 하듯, 연극적인 짜임새를 보이며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데 이 상극의 조합이 어울려 예술적이다. 질박한 질감의 장면과 야성적인 서사에 비해, 대사는 또 하염없이 섬세하고 서정적이라, 영화는 참으로 기묘한 매력을 지녔다. 한때 동양의 스필버그라 불리던 서극이 대만 체육교사 출신의 배우 조문탁을 기용하여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영화, 서극의 칼이다. 이 때의 조문탁은 마치 이제는 우리 나라로 돌아올 수 없는 가수 유승준을 연상시키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소년미의 극치를 뿜어낸다.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한번은 보고 싶엇는데, 미루고 미루다 최근 들어서야 몇번씩 끊어가면서 봤다. 마치 한강 선생이나 김훈 선생의 소설을 읽듯, 지향하는 방향은 전혀 다르지만, 이 거칠고 투박한 영화가 5~10분만 봐도 사람의 숨통을 짓누르듯이 압도적이라, 일상의 맥을 가끔 놓칠뻔한 적도 있었고, 다시 보기도 쉽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시 볼 수밖에 없는 영화였으며, 보면서도 불편함을 감출수는 없었던 영화였다.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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