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ㅡ가장 인간다운 탐정.
카이타니 시노부, 서현아 역,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학산문화사, 2011
추리물을 좋아한다. 가끔은 국정원의 추리 퀴즈도 찾아서 본다. 어렸을 때는 일본 서적을 무단 번안한 '명탐정 추리백과' '명탐정 주식회사' 따위의 책도 꽤 많았던 줄 아는데, 요즘엔 그런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팀 데도풀로스의 연작물이 비슷한 맥락으로 옛 향수를 채워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 떄 그 느낌은 아니다. 한두장 정도의 짧은 퀴즈임에도, 아, 그렇구나, 싶은 논리를 납득시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 이후로, 인간엔 잠긴 상자를 열고픈 욕망이 늘 있다. 퀴즈는 그 본능을 건드리는 유희다. 그러므로 추리물은, 어찌 되었건 그 정답이 상쾌하고 후련해야 하는데, 주어진 정보 내로 끌어낼 수 없는 답이라면 김이 빠져버린다. 불세출의 탐정 셜록 홈즈가 느닷없이 왓슨 박사와의 대화에서, 독자들은 전혀 알 수 없는 '이보게, 왓슨, 몇 달 전 신문을 본적이 있나?' 따위로 스스로의 체면을 깎아먹는 일이 늘 아쉬울 따름이다.
수수께끼의 미궁을 뚫고 범인을 지목하는 쾌감, 그리고 보통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결말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데 추리소설은 보통 비극이다. 누군가가 다치고 죽어나가거나 잘해봐야 고가의 물건이 없어져서 괜한 사람이 누명을 쓰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꿋꿋이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김전일이나 코난이 범인을 맞히고 나면 범인들은 '어쩔 수 없었다' 며 억울함을 항변한다. 학문적 지식과 추리를 교묘히 결합한 Q.E.D 연작은, 반면 '죽을 놈 죽고, 벌받을 놈 벌받는다.' 는 식으로 범인 지목하고 나면 그 이후의 처리는 오히려 산뜻할만치 가볍게 소년만화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카이타니 시노부는 본디 전자공학도 출신의 회사원이었으나, 만화가로 전업한 후 내놓는 작품마다 족족 영상화되며 많은 인기를 구가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원아웃, 라이어 게임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장점은 그 유명한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후쿠모토 노부유키를 비견케하는 서사에 있다. 관객들을 자극하기 위해 다소 난삽하고 자극적인 논리를 꺼내기도 하지만, 사실 그의 서사는 어찌보면 추리에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는데, 마침내 그의 추리물이 나왔다. 도저히 이래저래 구할 수가 없어서, 권당 가격 3,000원 남짓으로 그리 높지 않아서 인터넷 서적으로 7권 전권을 구입했다.
솔직히 말해서 추리물로써 아주 엄밀하다 보기는 힘들다. 적어도 손다이크 박사가 활약하는 오스틴 프리먼의 추리소설 이후로, 서사 내의 정보만으로 완벽하게 범인을 찾을 실마리를 주는 작품은 정말 찾기 어렵다. 그렇기에 Q.E.D의 토마 소도,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도, 서사 바깥에서 학문적 지식을 끌어와서 추리와 연결하는 것이다. MIT 출신의 천재로 설정된 토마 소가 다양한 순수과학, 수학적 지식으로 사건의 얼개를 푼다면, 오다기리 쿄코는 심리적 관찰을 바탕으로 지식을 더한다. 영능력자가 설정이기 때문에 범인들이 기본적으로 혹시 들키지 않을까 하는 위축이 되는 점도 재미있다. 오다기리 쿄코는 면밀한 관찰력으로 증거의 변화를 감지하고, 사람의 마음을 훑어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셜록 홈즈나 명탐정 몽크와 같은 안락의자 탐정 류에 속한다.
다만, 오다기리 쿄코의 특징은, 그녀가 사건의 마무리, 특히 범인과 피해자의 처우에 무척 신경을 쓴다는 점이다. 김전일과 코난은, 슬픈 사건이야...하면서 범인을 경찰에게 인계한 뒤, 또 지들끼리 놀아버리고, 토마 소는 어차피 범인이니까 하고 범인의 체포 이후로는 아예 신경도 안 쓰고(소년만화라 그런지 범인이 기본적으로 악독하다.), 탐정이 너무 빨라, 에서의 치쿠마가와 히카루 는, 범인이 쓰려는 트릭으로 부득불 기어이 복수까지 해버린다. (신의 것은 신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지만 오다기리 쿄코는 사건이 종결된 뒤 가해자와 피해자가 더이상 오해없이, 행복하게 될 수 있는 방안까지 구상한다. 여기에서 그녀의 '영능력자로서의 역할' 이 유감없이 빛나며, 그래서 보통 사람이 죽어나가는 일보다는, 절도, 파손, 사기 등의 범죄가 주를 이룬다. 사람 몸을 상하게 하기보다는, 사람을 속이게 하는 심리쪽 서사를 주로 해온 작가 다운 설정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다기리 쿄코를 지금껏 봐온 탐정 중 가장 인간적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기껏해야 벨기에 경찰청장 출신의 에르퀼 뽀와로도 '어디, 이 늙은이 뽀와로에게 말 좀 해보구려' 라며 뒷방 늙은이(?!) 흉내가 고작이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