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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갈수록 사람은 닳아지고, 선택지는 좁아진다.

by Aner병문

하루에 쓸 수 있는 체력이나 집중력은 분명히 허용치가 있다. 샘솟을듯한 체력도 이십대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젊었을땐 나도 밤새는 일 아무렇지 않았고, 밤새 내내 일한 뒤 아침에 잠시 쪽잠자고, 일어나 권투나 종합 격투기 연습하다, 또 책 좀 읽고, 일하는 일상을 반복해도 좀처럼 피곤할 줄 몰랐다. 두주불사로 술 마시고, 하루에 다섯 끼씩 먹어도 늘 활동량이 많은 탓인지 체중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 마흔이 되고보니, 무엇을 먹든 몸 속에 오래 남는 기분이고, 밤샘은 생각도 할 수 없으며, 같은 책을 수없이 읽어도 돌아서면 머리에 스치듯 사라져버리는 듯하다. 그래서 예술에 종사하는 어떤 이들은, 이십대가 지나면 체력과 창조성이 모두 메말라버린다며, 너무나 짧은 전성기를 한탄한다고도 들었다. 보통 마흔에 한번 꺾이고, 예순에 또 한 번 꺾이며,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는데, 나 역시 그런 기분이다.


어쨌든 김훈 선생 말씀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한 명의 동물로서, 하루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역시 업무고, 그 다음은 육아고, 그 다음이 태권도다. 책은 언제 어데서든 읽거나 볼 수 있지만, 태권도만큼은 갈수록 사그라드는 젊음과 더불어, 시간과 장소가 불충분하나마 확보되지 않으면 집중할 수 없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 나는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태권도 이해에 도움이 되라고 사범님이 공유해주시는 논문을 읽거나, 음악 방송이나 영화, 만화책을 보거나, 혹은 아내가 있을때 비로소 술을 즐긴다. 예전에 비해 물리적으로도 술 마실 기회가 줄었고, 실제로 주량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낀다.


좌우지간 하루는 짧고, 그 짧은 하루가 모여, 덧없는 인생이 된다. 내게는 하루에도 수없는 선택지가 있고, 그 선택지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나갈 터이다. 나는 젊을 때와 달라 모험을 하고 싶지 않고, 단지 낯선 상태로 던져지지 않는, 아무리 작더라도 단단하고 견고한 나를 만들고 싶다. 서툴고 나약하더라도, 나는 책읽고 태권도하며 고민하는 이다. 그러므로 하루에 허락된 체력과 집중력으로 나는 무언가 항상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자리에 누워 그래, 오늘은 뭘 했지, 를 되새기지 않으면 하루를 버린 듯 느껴져 견딜 수 없다. 오늘은 가끔씩 이어쓰는 습작을 마저 써야 한다. 주인공은 이제 겨우 기초 단계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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