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감기感氣, 그리고 마음 ㅡ 현상학과 선종의 스님들

by Aner병문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나쁜 기운氣 을 느낀다感 고 해서, 혹은 스스로 기운氣이 떨어지는 減 것을 느낀다 心 고 해서 감기의 한자가 그렇단다. 옛 선인들도 바이러스까진 몰라도 안 좋은 기운이 몸으로 밀고 들어와 내 기운을 헝클어뜨리는 병증이란 사실은 알았나보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요 며칠 되게 앓았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오래 앓고 감기를 떨치시지 못해 더 신경쓰였다. 훈련은 고사하고 병원갈 시간도 없었다. 병원마다 환자가 가득해 문전성시 門前成市 였다. 나는 뜨거운 차와 약국 약과 잠으로 버티었다. 약국 약을 잔뜩 먹고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했고, 최대한 잠을 깨며 소은이를 보았다. 책도 일체 안 읽었고, 훈련도 안했다. 나는 늘어지고 물러지는 몸 사이로 흐늘흐늘 빠져나가는 마음과 의지와 뜻과 기력을 분명히 보았다. 물처럼 흘러새는 시간도 보았다. 평소라면 일분일초가 아쉬워 뭐든 읽고 쓰고, 치고 차며 버티며 연습했을 나였는데 진짜 며칠간 회사와 육아, 예배와 최소한의 기도말곤 아무 일도 안하고 못했다. 만사가 무력하여 틈만 나면 잤는데, 몸과 마음이 지친 탓인지, 약기운인지 꿈도 안 꾸고 잠은 또 침흘리도록 잤다.



칸트는 물物 자체의 세계는 애시당초 볼수 없고, 감각하는 피사체만을 수용하고 인식해서 존재한다고 느낀다 했다. 훗설은, 오로지 우리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다시 말해 우리가 있다고 인지할수 있는것들만 논하자는 현상학의 기조를 열었다. 양명께서는 말하기로, 꽃 한 송이 피었어도 내 마음이 가닿지 않으면 그 꽃은 내게는 없는것이나 다름없다 했으니, 심외부재 心外不在 즉, 내 마음이 인식치 못한 것은 없는것이나 진배없다 했다. 활쏘기와 독서에 열중하여 그 외의 것은 일체 느끼지도 못했을, 젊은 날의 문무겸비 왕양명이 그려지는듯하다. 하이데거는 스승을 공박하며, 마음이 가닿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사물과 관계맺고 있는데 이 자체가 존재이며, 늘 있는 일상은 당연히 인지하기 어렵지만, 변화나 결핍 등이 있을때 비로소 그 존재를 느끼니 마음의 지향은 이 어긋남에서부터 출발한다 했다. 메를로ㅡ뽕띠는 결국.현상의 지각이란 순수 사유일수 없고, 개인의 경험, 신체적 활동 등 다양한 주름들이 결집되어 모이는 것으로써, 결국 모든 사유란, 관념적 활동이 아니라, 치열한 육체적, 정신적 투쟁이 더해지는 것으로 내 스스로 직접 겪고 느낀 과정만이 나의 철학이 되리라 못박았다. 나는 뽕띠의 이 선언이 참말 좋아서, 도장 훈련하면서도 꽤 오랫동안 곱씹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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