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면식수햏(11)- 아버지 특제 간장국수, CU ㅇ 돈코츠라멘,
1. 아버지 특제 간장국수.
또 몇 번 이야기하지만, 소은이는 정말로 국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손녀에게 밀가루 음식 먹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웬만해선 뭐든지 해달라는 건 다 해주는 아버지- 할아버지에게 소은이도 은근히 눈치보며 조르는 편이다. 할머니도 가끔 냉면을 해주시긴 하고, 그 냉면에 대한 감평도 여름 되면 쓸 예정이지만, 할머니는 냉면 한번 하시려면, 면이야 사다 쓰신다 해도, 육수는 한우 사다가 직접 하루 종일 우리시고(진짜로!), 거기에 겨우내 김장해서 뒷산에 묻어둔 독에서 김치와 육수 꺼내다 말아주시는 등 일이 매우 커지므로(^^;;), 아버지는 내가 출근이 늦어 함께 소은이 등원을 준비하는 아침에 가끔 국수를 말아주셨다. 마트에서 사온 쫄면을 삶아 찬물에 씻고, 김치를 물에 헹궈 잘게 썰은 뒤에, 삶은 달걀과 결대로 찢은 고기(소은이의 단백질을 위해서 항시 준비중), 간장과 참기름을 부어 적당히 손으로 비비면 끝! 흔히 아기국수라고도 부르는 간장 국수의 고급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 :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할아버지의 사랑이 가득한 맛이죠.
마트 냉면과 육수도 세상말로 '평타' 이상은 치는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마트에서 사다 말아먹는 냉면만도 못하다면, 그 집 실력을 의심해볼 수밖에 없는거죠. 마트에서 사오는 면들도 예전과 달리 밀가루 향도 덜하고, 쫄깃함이 훌륭해졌습니다. 공산품 간장에 방앗간에서 짠 참기름, 어머니가 직접 매해 담그시는 김치를 얹었으니 맛이야 보증수표지요. 일찍이 심야식당 한국판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이영범 씨가 열연한 음식 평론가 레오나르도 오는, 간장버터비빔밥 편에서 '추억의 맛은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라는 명대사를 남겼는데, 소은이에게도 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준비해주시는 음식이 늘 좋은 기억으로 남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 CU ㅇ 돈코츠 라멘.
돈코츠 라멘에 맛을 막 들일 무렵의 대학 시절에, 기억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돈豚라면이라는 인스턴트 라면이 나온 적 있었다. 딱 한번 먹긴 했는데, 돈코츠의 진한 맛을 좋아하는 나에게, 향은 그럭저럭 비슷했으나, 색깔이 갈색이라 돈코츠라기엔 흡사 갈비탕 같았던 그 국물의 맛이 몹시 옅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편의점에서 아주 싼 값에 파는, 돈코츠'맛' 도 아닌 돈코츠'향' 컵라면을 가끔 먹곤 하는데, 제육볶음 식어 엉긴 기름덩이 같은 고형수프를 봉지에서 짜내는 일이 다소 성가셔서 그렇지, 가격에 비해서는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다.
그러는 와중에 CU에서 도시락 컵라면처럼 각진 용기에 돈코츠 라멘이 나와서 냉큼 한번 사보았다. 돈코츠라멘이라면 덮어놓고 먹어볼 정도로 정말 좋아는 한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쫄깃한 떡도 한덩어리 들어 있는 라멘이었다. 뭐 이런 라멘이 있나 싶었다. 아쉽게도 수프는, 일식라멘을 흉내낸 다른 라면도 그렇듯이, 양념을 짜내는 일이 고역스러웠다. 아니, 봉지에서 좀 한번에 쑥 빠지게끔 만들어줄 수 없나. 늘 짜낸 다음에, 젓가락으로 쭉쭉 훑어서 또 밀어내야 된단 말이지.
결론 : 그 맛 자체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그냥저냥 시덥잖았습니다.
제가 무슨 전문 평론가도 아니고, 음식 먹고 바로 인상을 적어놓거나 할 정도로 열의가 있지도 않습니다. 그냥 심심파적 삼아 먹어본 음식들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 충동적으로 시작한 일기지요. 그러므로 보통 이 일기를 쓸 때 즈음에 그 때의 맛을 다시 더듬어보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라멘의 맛은 저에게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나봅니다. 맛의 기억 자체가 없어요. 먹었을 떄 당시에도 좀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돈라면처럼 맛이 흐리거나 밍밍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국물이 돈코츠 라멘의 맛이라기보다는, 파 잔뜩 풀어넣고, 돼지고기 누린내 좀 넣은, 사리곰탕면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돈코츠향 컵라멘처럼 가격이 싸지도 않은데 말이죠. 전자레인지에 충분히 조리해서 먹으니 면이 탱글탱글하긴 했지만, 떡이 왜 들어갔는지도 모르겟고, 맛의 방향 자체도 파악하기 힘들었어요. 이를테면 방어는, 기름지고 쫄깃하고 고소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알기 쉽고 분명한 맛이죠. 편의점 음식이라면, 비록 건강에는 좋지 않을지라도, 양념을 짜고 맵고 달게 해서 가격에 비해 인상을 크게 주는 게 보통인데, 요즘은 물가가 결코 싸지도 않은데, 이도 저도 아닌 음식이 너무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올해부터는 편의점 음식을 좀 더 줄이려고요.
-아뿔싸,사진 깜빡!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