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ITF 1242일차ㅡ 내가 나를 지키는길

by Aner병문

아이와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한편으로 힘든 이유는, 모든 일상이 아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마치 등산이나.행군을 할때 내가 선두에 서기보다 행렬 뒤를 따를때 더 지치는 맥락과도 같은데, 내가 내 보폭에 맞춰 걷질 못하고, 앞선 이들의 보폭따라 서둘러 걸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에서는.무엇보다 제식훈련을 통해 모든 병사들이 같은 보폭으로 뛰고 걷도록 맞춘다. 그러나 육아는 그럴수 없다. 맞추더라도 아비인 내가 맞추어야 한다. 지난번 설 연휴를 함께 보내며, 아내는 새삼 어머니가 왜 둘째를 반대하는지 알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가장 육아를 적게 할수밖에 없는, 주말부부의 아내로서는 잘 와닿지 않았을 터이다. 아내는 이미 쉴때마다 경상도와 경기도를 매번 오르내리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어미와 아내의 의무를 다하고.있다. 사랑하는 이가 최선을 다해 곁에 있는 일. 그 자체로도 나와 딸은 아내와 어미의 사랑을 느낄수 있다.



여하튼 나를 스스로 없애고 죽여야할 일은 그 이외로도 많다. 벌어먹고 살아야하니 회사의 부품처럼 하루 8시간 이상을 내 생각없이 매여있어야하고, 신앙은 또 아니 그런가.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의 부모형제를 포함하여 모든 가진 것들을 버리고 팔아 몸만 오는 이만이 진정한 제자라셨고, 누군가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도 돌려 대라셨다. 이는 항시 내가 스스로 사랑하고 봉사하는 주체가 되라는 일갈이신데, 수처작주 ㅡ 누군가 5리를 가자 을러대거든 오히려 10리를 같이 가주어 스스로 처한 상황의 주인이 되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닿는 바가 있다. 어느 쪽이든 내 스스로를 죽이고, 중심에 신성을 놓지 아니하면 불가능하다. 나같은 평신도에게 어찌 가능하랴.



그러므로 나는 내가 온전히 남는 취미나 쾌락이 좋은데, 책을 읽거나 태권도 훈련을 할때 가장 내가 온전히 남아서 좋다. 아내와 시간날때 차 마시며 보드게임도 즐겁다. 아이가 어서 커야 3인용 게임도 풀수 있을테니 그때를 기다린다. 술은 무척 좋아하지만, 최근 들어 고민중인데, 건강하게 오래 마셔야하니 젊을적처럼 두주불사 퍼마시기도 어렵고, 아내가 좋아하지도 않으며, 부족한 학식과 무공으로 죽는 그 날까지 공부와 훈련을 이어나가자면, 술만 퍼마실수는 없다. 오죽하면

에피쿠로스 학파도 음주는 저열한 취미라고 했다. 스스로를.오래 행복하게 지켜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몇 시간 눈붙이고, 아이를 보내고 나서, 나는 다시 훈련을 반복한다. 실제로 불안한 위기에서 나를 지키는 힘과 기술의 단련이기도 하지만, 나를 덮쳐 없애버릴듯한, 일상의 파도에서 나를 잃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발악이기도 하다. 늘 하는 말이지만, 태권도를 잘해서 하는게 아니다. 좋아하고, 필요해서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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