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부녀육아일지 ㅡ 아이의 재롱잔치
아이는 몇 주 전부터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헝가리무곡을 틀어놓고 북 치는 연습을 했고, 동요나 대중가요를 틀어놓고 안무 연습을 했다. 유튜브에 그렇게 다양한 노래와.안무, 아동용.행사가 있는줄, 애 키우며 처음 알았으나, 아이의 솜씨도 대단했다. 내 딸이니 고슴도치 애비 심정 어찌 없으랴만, 교회에서 젬베치는 입장에서 아이의 박자는 정확히 맞아들어갔고, 허리를 돌리거나, 손발을 뻗고 거두는 동작이 시원하고 완급이 풍부했다. 원래 친가가 흥이 많고, 노래 듣고 부르기를 즐기기도 하며, 소은이는 그에 더불어 어렸을때부터 조금씩 태권도의 움직임을 배웠으므로 그 덕도 분명 보았을 터이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는 어린이집을 나서기 전에도, 이것만 하고! 하며 유튜브를 틀어놓고 춤을 추었고, 등하원길에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집에서 자기 전에도 계속 그러해서, 사실 고모, 우리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기대가 좀 높았었다.
그러나 야구는 9회말 투아웃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고, 뚜껑은 열어봐야 알며, 면사포 쓰고도 들어가볼때까지 모른다더니, 아닌게 아니라 그러했다. 아이는 4세부터 7세까지의 반들이 돌아가며 솜씨를 보이는 두시간 동안 총 다섯번 무대에 나와야 했는데, 첫번째 두번째는 약간 긴장한 티는 있어도 평소처렁 매우 잘했고, 세번째는 갑자기 나오지 않아 빈자리가 무서웠으며, 네번째 공연에는 입술을 삐죽이며 시종일관 굳은 얼굴이었고, 다섯번째 마지막 합창 때에는 엉엉 울면서 손으로 눈물 훔치면서도 율동하고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귀여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는데, 무대 뒤 대기실에서 정신없었을 애 고모ㅡ즉 여동생의 말인즉슨, 좀 어이없다는 투였다.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 보고 싶어서 그랬대.
어머니 아버지, 아내도 새삼스레 녀석도 참… 하면서 별나다는 투였지만 나는 좀 이해가 갔다. 아내는 주말 전날에 왔다 다시 훌쩍 떠나는 쪽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살림만도 정신이 없으시니 아침 저녁 짧은 시간이라도 일어나고 재우는 시간에, 남겨진 아이의 속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이는 나밖에 없을 터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윗층 방에 올라가시고, 어미는 멀리 있으며, 예민한 아비는 먼저 저를 재운 뒤에 책 읽고 운동하다, 거실에 나가자는 그 새벽 어둠 속에서, 아이는 항상 아비 곁을 찾아 파고들었고, 제 어미가 오는 날엔 어미가 올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행여나 제 어미가 늦어 먼저 자자 꾀면, 단번에 시무룩해져서 입술이 삐쭉삐쭉, 엄마 오면 같이 자고 싶은데에… 하다가 제 어미 문 여는 소리 들리면, 엄마다! 하며 벼락같이 튀어나갔다. 가끔 할머니께서 힘들어 못 살겠다, 농으로 혼내시면, 할머니, 할머니 요리가 제일 맛있어요, 우리 같이 살아요! 하며 애교부리고, 제 어미 오면 모두 저리가라고 제 어미 곁에서 기세등등하다가도, 월요일 새벽녘에 사라지듯 출근한 어미의 식은 빈자리에서 아이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게 와서, 아빠, 소은이는 아빠가 제일 좋아요 한다. 누가 저에게 눈치를 주나, 이유없이 혼내거나 굶기기를 하나, 조부모님, 부모, 고모까지 2대가 걸쳐 사랑을 쏟아붓는데도, 생계가 뭔지 부모가 늘 같이 있지 못하고, 특히 배아파 낳아준 제 어미 오래 못보는 불안과 불만이 얽히웠다 난생 처음 으리번쩍한 재롱잔치 무대에서 그만 터져버린게 아닌가 싶었다. 벼락처럼 꽂히는 조명 아래, 저마다 사랑넘치는 부모님들이 모인 관중석에서, 아이는 긴장 속에 배운 공연을 행하며 제 부모는 어디있는지 남몰래 찾다찾다 막막하지 않았을까.
새삼 아내가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던 3년전 무렵이 생각났다. 말이 늦게 트던 아이는, 늘 함께 하던 어미가 없으니 제 입장 설명도 못하고, 밤낮없이 폭주했다. 아비와 나들이를 가다가도 길 한복판에 천천히 드러누우며, 신발 양말을 다 벗었고, 제 어미 찾아내라며 새벽에도 몇번씩 울어대었다. 제 어미를 애타게 찾는 모습은 짐승 인간을 가리지 않는.본능이자 천성이다. 기가 세고 활달하게 큰 아이가 행여나 버릇없을까, 기본적인 예절예의에서는 엄격히 키우려하지만, 당연히 어미를 그리는 아이를 혼내는 아비가 어디있는가. 나는 그때마다 아이를 안고 둥기둥기 해주며 달래고 또 재웠다. 불현듯 그때가 생각나, 아내와 나는 주말 내내 틈날때마다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볼에 입맞추며, 부모는 정말 너를 사랑한다고, 비록 회사 때문에 늘 같이 있을수는 있어도, 정말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아이는 이제 제법 커서 행여나 혼날듯하면, 제가 먼저 심각한척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삐죽이며, 히잉, 엄마가 보고찌픈데… 하며 시무룩한 척을 한다. 처음에는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애처로워 깜빡 속았다가 이 녀석이 혀를 낼름거리며 뻥이지로옹, 히히히, 하는 바람에 겨우 알았다. 그렇게 컸으나, 아직도 어미와 매주 하는 이별은 슬픈지, 이번 설 당일 당직을 섰던 아내와 헤어지기 아쉬워 그 전 밤에 제 어미 목을 꼬옥 안고 누우며, 이러면 엄마가 안 사라지겠지? 했다 하여 아내도 새벽 출근길 힘없이 하얗게 웃었고, 나도 눈가가 시큰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