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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결혼식을 위한 대절버스.

by Aner병문


나는 젊었을 적, 총각 시절에, 지금의 우리 아내만은 못해도 키가 크고 아주 예쁜, 활달한 대장격의 동갑내기 친구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결혼식 대절.버스에 오른적이 있다. 첫 경험이었다. 백수시절 씨즌1 의.무렵이었기에 아직 돈도 없었지만, 주짓수하다 날려먹은 발목, 무릎으로 병원에 오래 있을때 그 친구는 남도 아가씨답게 그 젊은 나이에도 병원밥.얼마나 부실하겠냐며 반합에 반찬을 잔뜩 손수 해와서 어머니도 감탄하셨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사람이 은혜를 알아야한다며 두둑한 봉투 하나 전하며 다녀오라셨다.



그.버스의 기억은 지금도 몸서리쳐지도록 선연하다. 장소는 충청도 어드메로 기억하는데, 처녀시절 그렇게 주변인들에게 잘해주고 열과 성을 다 했으나 막상.결혼하니 다들 딴마음이라도 들었는지, 작은 결혼식장조차 한산했고, “머스마”는 나 하나뿐, 그나마 친구의 화장이며 꽃이라도 거들어준다고, 낯이 선 아가씨 몇만 있었다. 친구는 멀리서 와줘서 정말 고맙다 했다. 아니, 고마운건 고마운건데 ㅋㅋㅋ 나는 그렇게 내가 아는 얼굴도 하나 없는 대절버스 속에서 광란의 시간을.겪었다. 무슨 소린고 하니, 어머님의 지인분들이 가득 찬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창문 커튼을 탁 치고, 술과 김밥, 육포, 견과류 등이 돌기 시작하더니, 노래방 음악이 켜지기 시작하고…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예나 지금이나 술을 무척 좋아하지만, 아는 얼굴 하나 없는 버스에서 무턱대고 들이킬 생각도 안 났고, 책 몇 권 싸들고 갔지만, 읽을 겨를도 없었다. 다만 우두커니 책장만 만지고 있는 내게 누군가 마이크를 주신다면, 듀스의 노래 한 곡 크게 부르고는 싶었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아아아…



혹시나 싶었는데, 이번 광주광역시로 향하는, 어린 이종사촌 여동생의 결혼식 버스는, 다행히도 술도, 노래방도, 광란의 댄스타임도 없었다. 참기름향이 고소한 김밥 한 줄, 물 한 병, 간식상자 하나씩이 돌았다. 우리 집안 사람들과 이모의 성당.분들이 타신 버스였다. 정치 얘기가 과하게 크게,.자주 들린다는게 흠이라면 흠이었으나, 15년전 그 버스와는 비교할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제럴드.싯처 목사님의 하나님 앞에서 울다, 를 읽고 있었다. 명료한 슬픔들이.매 문장마다 배어 있었는데, 남겨진 자의 고통과 혼란과 상실, 그러나 한편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목회자이자 대학 교수이자 아버지로서의 노력, 고민, 생각이 담담하게 펼쳐져 있어서 오히려 더 슬펐다, 여기서 듣는 임윤찬은 진짜 나를 우울하게 할듯했다. 경사의 도리가 아니었다. 함께 가져온 다른 책을 먼저 읽을걸 싶을 정도였지만 한편으로 책이 대단히 합리적이라, 이 슬픔을 담담히 이겨내고 극복하고 돌파하는 한 사내의 신앙을 계속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브리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며 계속 읽었다.



결혼식은 성대했고, 음식은 맛있었다. 회는 무난했고, 설녹은 육회는 설탕과 얼음이 서로 버석거렸지만, 뜻밖에도 홍어의 삭힘 정도가 괜찮았다. 적당히 삭았고, 향도 과하지 않았다. 나는 좀 더 삭아 쿰쿰하고 지릿한 홍어가 좋았지만, 그럼 적어도 아내는 힘들었을 터이다. 역시 다 있어도 홍어없으면 서럽다는 전라도 잔치다웠다. 해산물보다는 육고기, 특히 구이나 튀김이.나쁘지 않았고, 연어 아가미구이가 맛있었다. 기름이 가득 고여 발라먹을만한 맛이었다. 왕복 열시간의 고단함이 있었으나 책 두 권, 모처럼 각잡고 보는 드라마로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돌아오는 길은 그래도 조금 덜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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