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설교 말씀 ㅡ 유독 더 좋았다.
십자가에 달려 로마.병사에게 옆구리 창질까지 당하시며 마침내 다 이루셨다 하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오셨을때 열두제자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은 두렵기도 하고 무렴하기도 했을 터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에도 함부로 내색을 못하고 숨어살았다 했다. 막상 예수님이 찾아오시자 고기 잡다 말고, 물에 첨벙 뛰어들어 예수님 맞으려던, 바위같은 베드로조차 닭이 울기 전 세 번 스승을 부정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버린 옛 제자들을 친히 찾아와 말씀하시기로, 너희들을 세상에 보내니, 평안하라 하셨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어도, 왜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는지, 왜 환경이 평안해지지 않은지 궁금할때가 있다. 이미 성경에서, 사람끼리 사랑하라고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으므로, 속세의 번잡스러움이란, 말씀대로 살지 않고 우리끼리 불화하고 미워하는 탓인데도, 여러 대형 사고들을 보며, 안타까운 피해자를 보며, 나조차도 아, 주여…탄식하며 술잔을 들때가 많았다. 결국 선한척 하는 방관자에 지나지 않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다시 내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성령을.주노니 평안하고, 또한 평안케 하라 하셨다 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얻어맞은듯 했다. 한때 앞장서서 개신교를 핍박했던 로마가, 마침내 국교로까지 선포하게 된 주된 계기 중 하나는, 로마 전역에 역병이 퍼졌을때 개신교인들이 앞장서 병자들을 돕고 구원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다. 믿음 가진 이는 늘 의협심을 가지고 주변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나는 늘 내 평안이 우선이었다.
현장을.바꿔주시는 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현장을 바꾸는 사람이 되도록 하셨다. 심지어 스스로 우리 죄를 대속해주셔서 본까지 보이셨다. 말씀하신 그대로, 잔을 치우고자 하면 치우실수도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열두군단 넘는 천사들을 불러 결단내실수도 있었다. 그래도 안하셨다. 주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성도가 어찌 사는지 보여주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베버는 권위란 합당한 권력이라 했고, 질서는 참된 권력이 만들어낸 규칙이라 했다. 합당하지 않은 권력을 우리는 독재라 부르고, 참되지 아니한 권력의 행태를 폭력이라 한다. 가라테나 펜칵 실랏, 소림권 등 많은 무공들이 크고 작은 폭력으로부터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가 체계화된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를 잘하려면 책을 펴야하고, 태권도를 잘하려면 도복입고 땀흘려야하며, 평안하려면 기도로 무장하고 주변을 편케 해주어야 한다. 나이 마흔 하나, 처자식을 두고서야 이제야 겨우 조금, 아주 약간, 해주세요, 해주세요, 떼쓰는 기도에서 벗어나려나보다. 그러나 아직도 한다. 늘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