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788일차 ㅡ 다시 기초로 돌아가려니 얼마나 힘든가!

by Aner병문

젊고 어렸던 이십대 시절에는 형形이며 투로, 초식, 체계들을 늘 경멸하고 사람을 효율적으로 제압하는 기술들에만 골몰했다. 그러므로 레슬링의 테이크다운과 권투의 주먹 기술, 킥복싱이나 무에타이의 로우킥을 제멋대로 쓰는 축이었다. 내 딴에는 종합격투라고 생각했겠지만, 그저 체계 없는 깡패들의 잡스런 드잡이질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실제 MMA를 익혀보니 더욱 그러했다. 공부에도 이 성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나는 늘 고전을 가벼이 여겼고, 그럴듯한 요설과 이론에 골몰했었다. 이제 내 나이 벌써 서른여섯의 저물 끝즈음, 공부든 무공이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천방지축이나 의도된 겸손함으로 스스로의 무지함을 변명하려는 이들에게 유독 예민한 이유는, 그토록 나와 벗들에게 부끄러운 상처만 주었던 과거 내 스스로에 대한 증오와 경멸과 무시일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게 받아들였을 때 나는 비로소 성경과 불경과 사서와 고전을 무겁게 다시 읽었고, 그토록 경멸했던 태권도를 시작했다. ITF WT 를 막론하고 태권도는 가장 현대적인 체계를 자랑하는 무공이다. 모처럼 출근이 늦은 날, 나는 이제서야 뒤늦게 주먹과 발을 다시 추슬러 기본대로 오래오래 헤비백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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