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1282일차 ㅡ 사제들과 즐겁게!
간밤에 비가 폭포처럼 쏟아져 몇번이나 자다 깼다. 무릎과 어깨 관절에 못을 박아 꿴.듯 쑤시고 뜨거워 견딜수 없었다. 몇번이고 끙끙 앓으며 뒤척이다 늦잠을 잤다. 먼저 일어난 아이가 할아버지와 아침을 먹다, 아빠, 오늘은 회사 안 가? 하며 벙긋 웃었다. 아이 웃음이 그나마 진통제였다. 아내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비 오고, 오늘.하루 쉬고, 호옥시나 천연 진통제 마시지 마이소, 견디기 힘들모, 진통소염제 드시이소, 그게 나을끼라. 실제로 사투리로 보낸 문자는 아니었지만, 멀리서도 신경써주는 말투가 생생히 들리는듯하여 웃고 말았다. 몇 안되는 벗들이 있는 모임방에서도 술 먹지 말라 이야기가 있어 별수없다 생각했다. 이런 날에 술을 마셔 아픔을 재울수 없다면 어서 도장에서 몸에 열을 내야했다.
날이 궂어 칠레 처녀와 허수아비 소년만 왔다. 나잇대가.비슷한 두 젊은이들이 맞서기 기술 연습 주고받는 동안, 나는 보 맞서기 30개와 2, 3단 남은 틀 연습을 모두 마치고 사이마다 체력단련 5종 연습을.했다. 보 맞서기는 모두 외웠지만, 저번 맞서기 쎄미나 끝나고 이어진 승단심사에서 심사자들의 보 맞서기를 받아줄때, 갑자기 하느라 나도 헷갈렸다. 2보 4번! 1보 7번! 하면 바로바로 나올 정도로 나도 연습해야 했다.
각자의 훈련을 끝내고 맞서기 연습을 했다. 칠레 처녀는 2단, 나는.3단, 허수아비 소년은 이제 흰.띠지만 키가 크고 신체 기능이 좋으며 팔다리가 유연해서 가볍게 맞서기를 해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범님께서는 나의 전후좌우 이동보법을.보시고 마치 호주 들판을.내달리는 캥거루.같았다.. 라고 평하셨지만, 어쨌든 오늘 날씨에 이미 오래 전 닳은 관절들은 모두 들끓어 끙끙 앓는데, 체면 세울 정도로는 움직였다. 나는 칠레 처녀의 공격 사이를.피해서 발차기와 주먹을 성공시켰고, 상대의 공격을 막아누른뒤 뚫고 쳤다. 허수아비 소년은 나보다 길고 높았지만, 당연하게도 이동할줄 몰랐고, 휘두르고 나서는 팔다리를 빠르게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공격 뒤 수습되기 전에 따라들어가 치기 좋았다. 그의.방어는 틈새가 많이 벌어져 있었고, 흰 띠의 얼굴을 칠수는.없었으므로 나는 따라들어가서 복부를 치거나 찼다. 3단이자 부사범 체면치레는 어찌어찌한 셈이다.
흰 띠 10대 소년 입장에서야 이 아저씨가 얼마나 잘해보이겠는가. 훈련시간이 끝났는데도 안 가고 머뭇대다가 묻기를, 상대가 계속 거리를.좁히면 어떻게 해야되냐 했다. 본인은 아직 서기나 걷기가 여물지 않은데다, 당연한 말이지만 키 작은 내가 거리를.주면 안되므로 계속 바짝 따라붙었으니 본인 타격거리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을 터이다. 가까이 귀에서 속삭여줘라, 소리를 질러라, 마늘을 씹고나서 입김을 불어라(권투 은메달수상자인 김광선 관장님의 유명한 농담^^;;) 등의.농을 걷어낸 뒤, 옆으로 돌거나 뒤로 빠지며 치거나 하는 발놀림을 보여주었다.
물론 무조건 치고 차고 쳐야한다 생각하는 흰 띠에겐.아직 어려울 터이다. 보법을 함부로 전하면 스승이 제자에게 칼 맞는다는 말이 있듯, 발놀림이야말로 무공의 진수다. 손자는 일찍이 손자병법에서, 이기는 법이란, 세勢. 즉 세력을 유지하는 것인데, 세를 유지하기 위한 좋은 위치를 점해야된다 했다. 손자의 병법이 좋은 고지를 선점키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그는, 엄밀하게 준비하느라 늦게 출발하기보다 차라리 미비하더라도 신속히 움직이는게 낫다 했으며, 가장 마지막 서른여섯번째 계책이 퇴각인 이유도, 결국 위치싸움에서 졌다면
서둘러 벗어나 피해를 줄이라는.게다. 치고 차는 건 배우지 않아도 본능으로 할수 있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오래, 빠르게, 효율적으로 움직여, 내 거리를 확보하고 위치를 점하는 발놀림은 오로지 끝없는 연습과 경험으로만 익힐수있다. 내 발바닥도 그래서 몇번 벗겨졌다.
상대의 방어를 막고 누르거나, 젖혀 열고 치는법, 빠르게 거리를 두고 치는 법 등 아직, 기초가 여물지 않은 소년을 위해 몇.가지 기술을 알려주다 움찔했다. 어찌나 초롱초롱 선망의 눈으로 나를 보던지, 그 순간 그만 알려주고 어서 알바하러 가보라 했다. 아직 흰 띠는 지루하더라도 기초를 알아야할때다. 나도 그런 때가 있어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 기초에 익숙치 않다 해서 단번에 쓸수 있는 응용기를 알려주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막히고 , 난감한 상황에서 배우는 길도 분명 있을터이다. 내가 어떻게든 돌파해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