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은 나도.
적어도, 내가 하겠다 마음먹은 부분에 있어서 나도 질기다면 질기고, 굳다면 굳은 사람이다. 당연히.잘 하지.못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나는 누가 뭐라건 꾸준히 반복한다. 공부와 무공, 회사일, 육아 등도 그렇게 해왔고 또한 계속할 터이다. 다만 제아무리 장강에 굽이치는 곳 하나 없으랴, 작심삼일도 백스물두번이면, 일년이라 큰소리치면서도 가끔은 쇠심줄같고, 무쇠같기도 한 내 일상의 태엽도 물러지고 녹슬고 헛돌 때가 있다. 갑자기 하염없이 시나 소설이 읽고 싶어져서, 나는 갖고 있던 이성복 시인의 시와 이영도 선생의 책을 펼쳐놓고 번갈아 읽었다.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나서 주로 읽은 책들 중 문학은 손을 꼽는다. 거의 어학이나 철학, 역사, 과학 책들의 문장이 어데론가 새버릴까 밑줄 빡빡 그어가며 읽곤 했었다. 그제서야 영화보듯, 전화기보듯, 그냥 이야기 흐름 따라 멍하니 읽고 느끼고 빠져서 젖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싶었다.
아내와 전통시장을 한바퀴 돌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중식中食으로 시작해서 일식日食으로 끝냈다. 내 얘길 다 못해도 좋고, 지청구를 들어도 좋았는데, 술로 가슴을 씻어내다 말고 아, 내가 몰려 있어 지쳤구나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늦었다. 뱉은 말은 주울수 없고, 내 일상은 이미 남편이자 아비이고 아들이며 도장의 부사범 역할까지 메우느라 못박혔다. 나는 내 바닥이 너무 일찍 소진되지 않기를 바랐다. 내 못남이 너무 일찍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약함이 가장 먼저 와서 내 몸은 일찍 물렀고, 나는 담아둔 술들을 다 이겨내지 못하고 다만 맞서기 경기만 끝나길 기다리듯 버티고 있었던듯하다. 단지 벗들의 반가움과 아내의 든든함과 비례해 미안함이 크게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