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해도 어쩔 수 없는 가족의 소중함 - 아쿠아맨과 로스트킹덤.
감독 제임스 완, 주연 제이슨 모모아, 패트릭 윌슨, 야히아 압둘마틴 2세, 랜들 박(솔직히 비중상 해줘야 한다..), 아쿠아맨과 로스트킹덤, 미국, 2023.
DC의 아쿠아맨은, 마블의 쏘어Thor- 토르와 비슷한 점이 많다. 왕된 자의 품격과 자격을 묻는 주제, 소중한 가족의 배경, 왕의 상징인 무기 등, 영웅설화란 원래 그리 비슷하지 않은가. 영웅은 분명 혈통과 자격이 주어지지만, 처음부터 기회를 얻지는 않는다. 전설 속 아서 왕도 바위에 꽂힌 보검 엑스캘리버를 뽑은 다음에야 비로소 원탁의 기사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토르는 우주의 왕으로 등극할 운명이었지만 준비되지 못해 거만하고 교만했으며, 따라서 이복동생인 로키가 시험들수 밖에 없었다. 반면 아쿠아맨 아서(어, 여기도 아서네^^;;) 커리는, 왕위에 관심없이, 그저 타고난 아틀란티스 혼혈 인간으로 바다를 지키는데만 골몰했으나 운명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천방지축 바다의 자경대에서, 그는 한 명의 제왕으로 거듭나기 위해 성숙해져야 한다. 배경이 우주냐 바다냐 정도일뿐, 결국 주제부터 흐름까지, 두 영화의 축과 흐름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웅됨을 강조하는 시각이 다소 다르다. 토르 3부작을 관통하는 강력한 소재는, 실제 신화에서도 강조되는 그 유명한 망치- 묠니르다. 과연 토르는 1부작에서 묠니르를 드는 시험을 통과하여 진정한 왕임을 증명했고, 끝내 망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더 엄청난 도끼 썬더브레이커를 얻음으로써 망치 없이도, 그 자체로 왕된 존재임을 증명햇는데, 이는 곧 수많은 종류의 수트를 통해 영웅으로서의 정체성과 기능성을 확립했지만, 또한 그 수트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폭발시키고 버림으로써, 수트를 만들 수 있는 지성과 정의감 그 자체로 영웅이었음을 증명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서사와도 닿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아쿠아맨은 과연 어떤 왕이며, 어떤 영웅인가? 그 역시 아틀란티스 왕국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삼지창을 휘두르긴 하나 그에 국한하여 싸우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토르처럼 처음부터 왕의 정당한 자격을 갖고 태어나지도 않았다. 엄밀히 따지면 여왕이 다른 남자와 관계하여 낳았으니 장자라 해도 적자는 아니요, 게다가 순수 아틀란티스인도 아니고 인간 혼혈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왕이었어야할 토르나 혹은 처음부터 전쟁 전문가였던 아이언맨과 달리, 아서 커리는 아쿠아맨이기 이전에 그저 바다를 지키는데만 골몰하는 난폭한 수호자에 불과했다.
해적이란.이유로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아비까지 죽게 내버려두던 아쿠아맨이 드디어 왕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더할 나위없이 책임감 때문일게다. 천하의 바람둥이 토니 스타크도 결혼해서 정착하여 아이를 가졌다. 지구의 절반이 사라지는 '상실의 시대' 에서, 그만큼 운좋게 상실없이 가정을 꾸렸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는, 다시금 옛날로 돌아가게끔 하기 위한 모험에, 현실의 행복을 누리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을 참여시키기 껄끄러워했다. 어부 출신 아버지를 모시며 바다를 지키던 젊은 총각 아서 커리는, 자신의 혈통을 깨닫고, 아틀란티스를 지키기 위한 의무감을 가졌으며, 그로부터 책임져야할 공동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쿠아맨의 속편은, 아이를 보는 아버지로서의 아쿠아맨을 부각시킨다. 아틀란티스의 왕으로서, 아쿠아맨으로서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밤잠없이 아이 기저귀를 가는 아버지로서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끌어낼만하다.
영화 자체는 극적이지 않고 평이하게 흘러간다. 그나마 아쿠아맨 1편이, 그동안 영웅 서사의 절대극상을 달리던 마블에 이제 조금 맞설만한 수준이었다 뿐이지, 2편도 그에 준하다 보긴 어려웠다. 그래도 가족을 지키는 내용이라 나 개인으로서는 대단히 재밌게 보았다. 아이를 보느라 동분서주하는 아비로서도, 또한 아이를 되찾기 위해 분노하며 고군분투하는 한 명의 사내로서도, 가족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영웅이란 애초에 쉽지 않은 존재다.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에서, 박중훈 배우가 열연한 계백 장군은, 꺠끗한 이름을 남기기 위해 결사항전 전에 처자식을 모두 베고 출전한다. 그 드높은 이름은, ITF태권도의 초단 틀 마지막에도 남아 있지만, 왕권을 지키기 위해 제 아들을 무참히 뒤주에 넣어야했던 영조대왕의 뒤틀린 가족사처럼, 과연 장군으로서의 계백이 남편, 아비로서의 계백을 덮을 정도인가 하면, 지금와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떄 이상에 골몰하여 있다가, 이제 겨우 처자식을 손맡에 두는 떄가 되니, 자꾸만 사람이 잘아지고, 그저 가정이 우선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원래 그리 다 나이 먹는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