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기억 ㅡ 때로는.도려내고 싶도록.괴로운.

by Aner병문


모처럼.쉬는.평일, 나는 비록 정신없이 바빴을망정.차분하게 내 일상의 축을 다시.쌓고 있었다. 아이가 자는.동안 어린이집 물놀이를 위한 준비물을 챙기고, 한껏 신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땀에 흠뻑 젖도록 연습하고 목욕했다. 웬일로 매콤한 맛도 보고 싶고, 서가書架 사이도 지나다녀보고 싶어서 나는 버스를 타고 도장 근처 교보문고로 갔다. 너가 선물해준 교보문고 카드가 있기도 했다. 이 모든 잠시의 일상은, 결국 다섯시까지 소은이를 다시 데려오기까지 마무리되어야 했다. 나는 지극히 현실에 있었다.



그러므로 역에 내려서 교보문고 근처까지 갈 때까지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만큼 옛.기억을.나도 오래 묻어두고 살았다. 더웠지만 습하지는 않아 걸을만한 골목 양 사이에는, 아직 영업하지 않는 가게들이 줄지어 차양을 쳐놓고 있었다. 한때 이러한 곳에서 잠시나마 사람 지키는 일을 했던지라 모를리가 없다. 속칭 개미굴 이라.부르는, 집단 성 노동.업소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 속 오래 묻어둔 기억이 후다닥 깨어났다.



나는 약 십 년 전, 이 곳에 “높이” 가 필요해서 왔었다. 절망밖에 없던 내게는 반드시 큰 낙차의 높이가 필요했는데, 찾는 곳마다 얼씬도 못하게 막아두어, 때마침 신문에서 비슷한 일을 보고 메마른 가슴으로 무작정.찾아갔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요령없고 무른 사람이라 결국 그 주변에서 한껏 행복하게 물건 사는 가족들이나 보다 돌아왔고, 결국 젊은 시절 철없던 내가 선택한 방법은 “깊이” 였다. 몇 년 후, 너는 먼저 결혼하여 신혼이던 내게 술을 사주면서 전 선생님, 나 하나 물어봐도 돼? … 그때 왜 그랬어? 라고 물었고, 나는 술을 이미 마시고 있었지만 할말이 없어 더 마셨다. 정확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영어나 한자로 이루어졌는데 도통 뜻을 이어지지 않는 문장을 해석하지 못하면 죽어야할 사람처럼 막막했고, 팔다리가 열 개씩 달린 이와 사생결단 해야될 경기를 치르듯이 답답했다. 머무를수 없으므로 어데든 가야만 했는데, 갈 곳이 없던 시절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손을 떨었던 기억은 두 번이다. 5년만에 첫 승단을 할때, 나는 탈의실에서 글러브를 끼다 말고 손을 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다.낫지 않은 몸이, 오랜만의 긴장에 반응했을뿐, 마음이나 정신의 내용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때 나는 까페인 높기로 유명한 스누피 우유에 소주를 섞어 마시고서야 겨우 진정했다. 훗날 아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너는, 전 선생님, 정신차려, 그게 자기 실력으로 딴거야? 아니면, 술기운이야? 했다. 그 이후로도 크게 반성하여 맨정신으로 연습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두 번째는, 너의 집에서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선명한 사실은, 어떤 단어나 이야기가 나의 묻어둔 응어리를 툭 건드렸다는 점이었다. 나는 몹시 민망해했고, 손이 떨려서 술잔을 잡았는데, 너도 아내도 그만 마시라며 말렸다. 아내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즐기려고 하지도 아니한다. 가장 가까운 벗과 아내가 그리 얘기하니 더운.물 마시고 눈 감고 있다 잠들었던.기억이 난다. 그때는 흐릿해야할 기억과 연결될.마음이 날뛰어 손끝까지 오던 때였다.



그 마음과 기억은, 비록 흐려지고 묻혀질망정 없어지지 않았음을,. 마흔 넘어 실감했다. 기억은 연이어 살아났고, 나는 버틸 기운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쳐올리는 뒷차찌르기를 명치에 맞은듯, 나는 숨이 가빴고, 심장이 말랐고, 손을 떨었다. 눈 앞이 어지러워서 나는 잠시 앉아있었다. 시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목젖에 걸린 호흡을 조절했다. 만약 술이 있다면 당장 마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내는 결혼할때 제일 먼저 내가 품고 다니던 술병부터 전부 내다버리었다. 나는 아내의 현명함에 늘 경탄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속으로 쉼없이 되뇌었다. 나는, 내 아내의 남편이고, 내 딸의 아비이며, 회사에서 돈을 벌어와야 하는 가장이자 도장의 부사범이기에 앞서 3단.띠를 받은 사내였고, 다 못한 공부의 전승자이자, 교회의 집사였다. 나는 내가 가진 역할을 잊지 않았고, 그를 망가뜨리거나 훼손할수 없었다.



다행히도 어지러움과 숨가쁨과 떨림이 아주 오래 가진 않았다. 나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살아난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그때의 내가 아니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고 처자식과 함께 비록 부유하지 못해도 마음이 안정적인 사람임을 계속 새기려 했다. 그러나 십여년전, 갈곳없이 헤매다 그만 하염없이 막연한 높이를 찾아 헤매던 그때 그 피폐한, 볼품없는 청년이, 그림자처럼.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를 신경쓰지 않으려 했으나, 그럴수 없었다. 그는 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굉장히 날카로워지고, 예민하고, 냉소적인 상태로 서점에 도착했다. 나는 마치, 나라의 큰 문제에는 입 닫고 있다가도 비계만 들어간 고깃국에 분노하는 어느 싯구 속 사내처럼, 교보문고 앞, 고전과 부유함을 서로 연결하려는 희극인 출신 어느 사내에게 냉소했고, 늘 그렇듯, 이른바.베스트셀러들에게 냉소했다. 예나 지금이나 잘 팔리는 책들은, 평안이나 부유함이나, 출세나 빠른 지식을 준다고 강조하는 책들이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화려한 옷을 입은 이가 찾아와 널 부유하게 해주마, 출세하게 해주마, 원전을 읽지 않아도 단숨에 똑똑하게 해주마 꾀는 격이었다. 나는 유명작가 라고 따로 분류된 서가의 작가들을 뜯어보았고, 또 그들 중 몇 명에게 냉소했다. 결국 대형서점이 분류한 유명작가에 들지 못한 이들은, 마치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이나, 혹은 그조차도 하지 못한 연습생 같은걸까 생각했고, 나는 결국 이병일 시인의 시집과 절판된 수학먹는 달팽이, 는 사지 못했지만, 대신 새로운 배명훈 선생과 김훈 선생을.사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도 녹록치 않아서 나는 결국, 중래향 사장님과 아내에게 1일 3노도 一日三老倒 하루에 세 노인이 넘어지다, 할만한 일을 겪었다. 나는 이제 그만, 사는 맛을 절절히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좀처럼 찾지 않는 매운 맛으로, 중래향의 절품인 마파두부를 밥에 얹어달라 했다. 옛 중국의 곰보 과부댁이 늙도록 볶아내던 그 맛 그대로 이어진 양념은 과연 혀를 지나 얽힌 속을 아찔하게 긁어내며 땀을 펄펄 내게 만들었다. 그 땀이 식어갈때 나는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는듯했고, 이시간 이 때의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한때 높이와 깊이를 찾던 나는 이제서야 겨우 넓이를 가늠한 사내로 늙어가고 있다. 넓이란, 다른 말로 면적이니, 나는 내가 발붙일수 있을만한 몫만을 내 면적으로 지키기도 쉽지 않다. 겨우, 내 일상들이 돌아와 와그르르 쏟아져내렸다. 아내의 연락이 와 있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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