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794일차 ㅡ 오늘의 착한 일들!

by Aner병문

도장에 흰 띠 수련자들이 좀 늘었다. 하얗고 귀여운 태권이 덕분인가 보았다. 아르헨띠나 세계대회 동메달리스트인 박지연 라이징이 돌아왔다. 희고 동그란 얼굴이 고운 아가씨인데, 틀 연무선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한때 세계 대회를 풍미하던 몸의 움직임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WT 8단 승단을 준비하시려 잠시 도장 한 구석을 빌리신 신 사범님께 WT 발차기의 진수를 배우고자 했다. 그 분께서는 ITF와 WT를 나누는 것은 의미없고, 단지 상황에 맞는 발차기가 있다시었다. 앞으로 밀어차는 ITF의 앞차부수기는 높아봐야 눈높이에서 앞축으로 타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호구의 둥근 면을 빠르게 온 방향으로 타격해야하는 WT의 앞차기는 무릎을 끝까지 끌고, 발등에 힘을 빼서 고무줄을 튕기듯이 차는것뿐이라셨다. 권투를 해서 펀치는 뭐 할 말이 없고, 발차기는 가라테나 킥복싱 발차기예요, 힘주려고 멀리 돌아서 차니까 늦고 무겁지요, 무릎을 앞으로 내밀어서 빠르게 차고 거둬야해요. 말끝에 신 사범님은, WT의 극단적인 측면 자세에서도 허리를 어떻게 돌리는지, 또 상체를 눕혀서 체중을 실어 차는 법을 몸소 보여주셨다. 참, 발차기는 어렵단 말이야ㅜ



모처럼 한가할 때 땀에 젖은 몸으로 사범님들과 도장 구석을 정리했다. 창고의 삭아버린 우레탄 바닥을 빼고, 쓰레기를 버리고, 색띠와 도복과 맞서기 장비를 규격에 맞춰 놓았다. 줄검은띠가 많이 남아서, 확실히 그동안 유단자들이 없었구나 싶었다. 도장 청소나 후배 사제 사매들을 돌보는 것도 유단자들이 할 일인데 새삼 한적한 도장이 마음에 걸리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고양이라도 된 양 잔뜩 취하여 차 다니는 도로에서 대자로 뻗어 바닥에 등을 긁어대고 있는 중년 아재를 번쩍 들어 구출했다. 소년처럼 장난기 많은, 잘생긴 아저씨였다. 술을 얼마나 자셨는지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하마터면 도로에서 아저씨를 갈아버릴뻔한 운전자께서 욕을 하며 차를 세웠다. 같은 애주가끼리 두고볼 수 없어 내가 순찰차 부를테니 사고 안 난 것도 다행 아니냐며 달래어 돌려세웠다. 순찰차를 기다리는 십여분 동안, 아저씨는 혼자 춤을 추고 노래불렀다. 팔자 좋은 아저씨였다. 아저씨, 뭔 술을 신나게 자셨네이, 안식구 처가 가서 여유나 있응게 여서 붙잡고 있는줄 아시오, 아저씨도 나처럼 오지랖 넓은 놈 만난거 봉게 살 팔잔가개비, 중얼거리며 쓰러지지 아니하게 한 팔과 다리로 나보다 키가 큰 아저씨를 벽에 몰아붙여 놓고, 경찰 공무원들을 기다렸다. 겨우 취객 동지를 잘 인계하고 돌아가는 버스에 있다. 세상만사 다 챙겨댈 오지랖으로 살려니 이토록 피곤한 모양이다. 집에선 또 설거지하고 겨울옷 꺼내야 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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