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천룡팔부, 홍콩. 1963~1966. 국내 출간 1982
아시아의 셰익스피어, 중국 문학의 톨킨 등으로 불리며 일세를 풍미했던 무협소설의 거장 김용 선생의 본명은 사량용이며, 본디 그가 창간한 명보신문의 부수를 올리고자 가볍게(?) 썼던 무협소설이 모두 명작에 들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신필이라고까지 불리던 명성에 비해 그는 스스로의 무협소설을 좋은 작품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신문에 수필, 논평 등을 실으며 언론인으로 불리기를 평생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월녀검을 덧붙여서 이른바 십사천서의 간행 이후로는 신작을 내지 아니하고 이미 출간되어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는 자신의 연재물들을 개정하며 여생을 보내었다. 듣자하면 말년에 치매가 온 김용 선생이 황약사와 매초풍의 로맨스까지 치달아 많은 애독자들의 근심을 샀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고 있으나, 여하튼 김용 선생의 모든 작품들은 무려 김학(金學)이라는 독자적인 학문의 갈래를 구축할 정도이며, 서양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대학 입학 이전에는 무협지고 뭐고 관심도 없었다가, 우연치 않게 학교 OT를 가면서 공짜로 받은 김영사 새 판본의 사조영웅전 1권을 받았고, 그 유명한 이지청 화백의 수려한 삽화까지 더한 책에 그만 넋이 나가서 , 머리로는 김용 선생에 홀딱 빠지고, 또한 새터에서는 혁혁한 무공을 자랑하는 성대 명륜의 택견에 흠뻑 빠져서, 마침내 지금까지지도 몸과 머리가 모두 무협(武俠)에 절여진 소인배가 되어버리었다. 이래서 공부자께서 일찍부터 소인(小人)은 자고자대(自高自大) 하다고 하셨던가.
여하튼 김영사의 초판본 사조영웅전을 읽은 뒤로 김용 선생의 전집을 찾아 헤매었지만, 당시는 김영사가 사조영웅전-신조협려-의천도룡기로 완결되는 이른바 사조삼부곡 전집을 서서히 발행할 무렵이었고, 그래서 나는 학교 도서관 구석에서 아주 오래된 고려원 판본의 구판 사조삼부곡을 읽으면서 김용 선생의 작품 세계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조삼부곡은 김용 선생의 다른 작품처럼 매해마다 중국 본토에서 드라마화되며 그 인기를 여전히 구가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작품이다. 서른이 넘어도 그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아서, 나는 지금도 가끔 사조삼부곡을 읽을 뿐더러, 서검은구록, 벽혈검, 녹정기, 연성결, 비호외전, 설산비호, 월녀검 등의 다른 작품도 열심히 찾아다 읽었다. 개인적인 농담으로 무협은 김용, 좌백, 용대운이요(근데 용 노사는 요즘 좀...), 환상소설은 이영도요, SF는 배명훈, 조현, 곽재식이라고, 내 마음대로 지껄이곤 하는데, 여하튼 장르소설의 기초를 마련하는 좋은 작가들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SF 애독자들이 작품 내에서 과학적 지식을 얼마나 잘 녹여냈느냐에 따라 하드/소프트 등으로 구분하듯이 뭐니뭐니해도 김용 선생이 신필이라고 일컬어지며, 그 작품이 명작 반열에 드는 이유는, 그의 작품 내에 중국의 역사와 문화, 예술, 종교 등이 진하게 녹아 있으며, 심지어 무공의 일초일초의 묘사 또한 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도 후기작일수록 가치가 높고 재미가 있다 라고 평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근작들을 읽다가 그의 초기작인 백마소서풍이나 벽혈검 등을 읽으면, 어랍쇼, 김용 선생이 이렇게 고전적으로 글을 평이하게 썼던가 싶은 당혹스러움까지 느낀다. 그나마 서검은구록의 여어동은 좀 나았지만, 벽혈검의 원승지는 정말이지 주인공인 주제에..ㅠㅠㅠ
김용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단 한 글자를 말하자면 다름아닌 정(情)일 터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인 신조협 양과가 활약하는 신조협려에서 악녀 이막수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사무쳐 사람을 죽일 때마다 금나라 시인 원호문의 안구사를 읊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대저 정이란 무엇이관대 사람으로 하여금 생사조차 넘게 하는가? 항룡십팔장을 즐겨쓸 정도로 성정이 곧다 못해 투박한 곽정마저도 한때 정으로 가슴 아파했다. 선악의 구분은 물론이요, 검과 나조차 가르지 않았던 독고구패의 전인 영호충조차도 정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눈 덮인 산에서 호비는 호가도법의 정수를 아버지의 원수를 향해 내려치지만, 그 칼끝에 듬뿍 당긴 정까지는 어찌하지 못했으며, 녹정기의 위소보는 무공은 얕을지언정 아주 사방에 정을 뿌리고 다닌다. 김용의 작품 중 제목부터 그러하듯 불교적 색채가 짙은 천룡팔부 역시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천하제일을 자부하는 영웅호걸들이지만 하나같이 정에 휩쓸려 처음 그들이 견지한 뜻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천룡팔부는 김용이 처음부터 말했듯, 수호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군상극이다. 주요 인물은 소심하기 짝이 없는 대리국의 미남 황자 단예, 개방의 방주이자 거란의 장군이 되는 소봉, 소림사 승려였다 소요파 장문이 되며 파계하는 허죽, 자신을 사모하는 여인의 정까지 끊어내며 연나라를 수복하려는 모용복 등이지만, 그 주변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큰 뜻과 사상을 품고 있다. 서사가 흐를수록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나가지만, 네 명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되는 이야기를 보자면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천룡팔부는 팔부천룡이라고도 하며,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여덟 위의 신적 개체를 일컫는다. 서유기의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뛰어난 무공과 이술을 지니고 있지만 삼장법사를 보호하는 위치에 머무르듯이, 이들 역시 아무리 그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아니 오히려 그 능력이 지나치게 출중한 탓에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고 해탈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천룡팔부의 주역들 역시 하나같이 천룡팔부처럼 뛰어나고 훌륭하지만, 역시 천룡팔부처럼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혹은 다른 길을 찾아 떠난다.
명작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특히 내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달리 읽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움에 늘 못 이겨 술로 마음을 식히던 청춘이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단예에게 마음을 깊이 주었을 터이다. 단예는 그저 혈통만이 황손이요, 얼굴만 잘생겼을뿐, 적극적으로 하는 일이라곤 그저 미녀 왕어언을 하루종일 쫓아다니는 일뿐이다. 우연찮게 얻은 육맥신검이며 능파미보 모두 심력이 얕아 시원치 못하고, 그 스스로는 왕어언을 쫓아다니면서, 매번 그녀의 태도에 일희일비하지만, 정작 자신도 여러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고 아프게 한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가정을 꾸리고 남편이자 아비가 된 지금, 나는 성씨까지 바꾸게 된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 소봉에게 깊이 연민을 느낀다. 그는 천생신무의 기력을 타고나 강공 중의 강공 항룡이십팔장을 정리하며 개방의 절기로 전수하였고, 내력없이 술을 마셔도 능히 단예와 맞상대하는 호걸 중의 호걸이지만, 언제나 의협에 죽고 살아도, 그의 삶은 지난하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올바르고 정이 많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비참하였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면서, TV에서 가끔 유목민족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나는 눈을 떼지 못한다. 유기농업계에서 경력을 쌓았다지만, 농사 조금 지은 것이 전부이면서,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표표히 흐르는 유목민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 것일까? 말이나 낙타에 단려한 짐을 싣고, 한 손에는 무기를 든 채 메마른 고원 혹은 사막을 누비는 유목민의 삶은, 알량한 디지털 노마드니 하는 말속임에 없는 향취가 있다. 산을 살피는 일로 밥을 먹는 아내는 도시 사람의 가벼운 꿈일 뿐이라며 타박하지만, 그런 연유로 나는 늘 맹자가 부르짖었던 대장부를 꿈꾸고, 호탕한 호걸이 되기 바란다. 내 스스로 그런 이와 거리가 멀어서, 나는 술을 마시며 책을 대신 읽곤 했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