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보고 - 막힘의 고통, 변기를 중심으로
정초부터 정말 일이 많았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방학 동안 아이의 아픔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는, 2년여 전, 폐렴 직전까지 갔을때에도 입원 한번 하지 않고, 그냥 이틀 정도 병원에서 약 타먹고, 집에서 먹고 자고 놀며 거뜬히 이겨낼 정도로 튼튼하였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무심코 아이의 면역력과 내구성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튼튼해도, 아이는 아이였다. 아이는 크게 아픈 티는 내지 아니하였지만, 식욕이 다소 줄었고, 가끔 열이 났는데, 약을 먹이면 금새 땀을 뻘뻘 흘리며, 열이 내리고 또 좋아졌지만, 약기운이 빠지면 다시 열이 오르면서 식욕이 없는, 상태를 반복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잘 놀기에 별 일 없겠지 싶었는데, 갑자기 입 안에서 수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은 혹시 수족구 아니냐며 대번에 아이를 돌려보냈고, 아이 방학도 끝난 마당에 나도 출근을 해야 해서 난 일단 아이를 어머니 아버지께 인계하고 회사 생활을 했다. 아이는 다행히도 수족구는 아니었고, 주사 한 방에 잘 털고 일어났지만, 이 와중에 아내는 평일 근무를 마치고 주말에 올라오다 왜관 역 앞에서 넘어져서 발목과 무릎을 삐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 큰 키로 나름 중심을 잡았다는데, 오히려 더 무리를 했는지, 반대쪽 무릎이 영 뻐근했다고 했다. 다행히도 뼈는 상한 곳이 없고, 인대만 좀 다친듯하다 하여 아내는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받아 먹어가며 통원 치료 중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의 중심이라면, 변기였다. 간헐적으로 열에 들뜨는, 아이는 물을 잘 마시지 않았는데, 그 때문인지 변이 무척 딱딱하게 굳었다. 보기만 해도 알 정도였다. 아이의 용변 뒤처리를 해주고 물을 내렸는데, 그 때부터 어째 물 내려가는 모양새가 영 심상치 않았다. 그래봐야 변하고 휴지인데 하면서 별 신경쓰지 않고, 아내가 출근 때문에 먼저 내려간 집안일을 정리하고 아이를 돌보았는데, 웬걸, 변기가 그날부터 계속 잘 내려가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거나, 소변만 내릴 떄에는 잠시 차오르다 아주 천천히라도 내려가는데, 누가 큰일이라도 보고 나면 조금 꿀렁거리다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반드시 속칭 ’뚫어뻥‘ 이나 변기솔로 막힌 곳을 뚫어주면서 대야로 물을 내려가며 내려주어야 비로소 내려갔다.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몇 번 하면 변기가 뚫려야 맞는데, 내가 본거라곤 아이의 굳은 변 뿐이었는데, 참 변기가 오래도 안 뚫렸다.
노쇠하신 어머니 아버지, 혹은 어린 아이가 이러한 변기를 한겨울에 오래 쓸수는 없었다. 나는 밤늦게 퇴근 후 늘 변기에 매달렸다. 진짜 안해본 일이 없었다. 변기 뚫는다는 용액도 부어봤고, 샴푸도 부어봤고, 군대에서 배운대로 변기솔에 비닐 씌워 풍랑 일으키듯, 뚫어도 봤고, 대야로 하염없이 물도 부어봤고, 길다란 관통기도 써봤다. 그런데 변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조금 뚫리는 듯 하다가도, 누군가 큰일을 보면 여지없이 막혀버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상당히 지쳤다. 내가 없을땐 어머니와 아버지꼐서 교대로 변기와 씨름하셨다. 나는 변기와 씨름하다 새벽 한두시, 심하면 세시 넘어서 누웠는데,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가려면 아무리 늦어도 아침 여덟시엔 일어나야 햇다. 그러나 변기 걱정 때문에 제대로 잠이 들지 못했다. 잠이 올리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변기와 씨름하다 신새벽에 홀로 거실에 누워서, 막힌 변기를 생각하며, 대체 막힌다는게 뭘까 고민했다. 분명히 뭔가가 저 안에 들어앉아 있으니 막혔을텐데, 그게 뭔지 전문가를 불러다 변기를 뜯지 않고서야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변기를 뜯으면 일은 더욱 커진다. 또한 새로 앉힌 변기가 고정될때까지 어른은 둘쨰치고, 저 어린 것을 데리고 이 추운 날에 바깥 공중 화장실을 써야 한다. 여러모로 못할 짓이었다. 나는 마찬가지로 들여다볼수 없는 사람 속의 막힘을 생각했고,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속을 얼마나 막히게 햇는가도 생각했다. 내 존재만으로, 혹은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생각없이 한 행동 때문에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은 응어리가 속에 막혀 나 때문에 고통스럽고 괴로웠을지도 몰랐다. 변기를 뚫어도 모자랄 시간에, 아니면 푹 잠이 들어도 모자랄 시간에, 나는 그런 생각이나 하며 하잘것없이 데굴거리며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강은 괜찮던 무렵이었다. 사실 변기 걱정 때문에 계속 몸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계속 변기 생각을 하며 아이를 돌봤고, 태권도 연습을 했고, 출퇴근했고, 일상 생활을 했다.
금요일 밤이었다. 아내가 올라오다 발목과 무릎을 삐었다길래, 걱정도 했지만, 솔직히, 속으로 짜증도 많이 났다. 안그래도 이런저런 톱니바퀴들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처치곤란인데, 아내까지 짐을 하나 안겨주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게 모르게 짜증이 많이 바깥으로 샜다. 참으려 노력해도 지금 돌아보면 이미 몸이 많이 아픈 상태였고, 지쳐서, 아마 내 몸이 더이상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갖고 있지 못했을게다. 나는 아내와 같이 병원을 가기 전이라, 아내가 얼마나 아픈지 잘 몰랐다. 염치불구하고, 아니, 솔직히 신경쓸 새도 없이 아내에게 물을 좀 미지근하게 끓여오라 하는 새에 관통기를 놓고 변기를 쑤시다가 느닷없이 변기 앞에 무릎을 꿇엇다. 진짜다. 그 전에도 기도를 안한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기도가 터졌다. 터졌다라기보다는 막막해서 진짜 더 할 수 있는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까지 다쳐가지고 온 그 때, 아마 내심 아내가 좀 일을 덜어주길 바랐는데, 오히려 아내가 일을 더했다는 생각이 컸었는가보다. 변기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했다. 그리고 아내가 미지근하게 물을 데워왔기에 물을 쏟아붓고 다시 변기솔로 한창 변기를 뚫었다.
이번 새벽기도 떄,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야기를 중심으로 설교 말씀 들었다고 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려 이스라엘 군이 이레 동안 여리고 주변을 돌았듯이, 변기도 그렇게 뚫렸다. 퐁! 하고 변기솔 끝에 뭔가 뚫리는 듯한 느낌이, 자루 끝을 쥔 내 손에도 느껴졌다. 이건 되었다, 이건 되었구나. 싶어 서둘러 물을 내려봤다. 잘 내려갔다. 몇번을 눌러도 잘 내려갔다. 이렇게 속이 시원할수가 없었다. 며칠간 지샌 밤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날 달게 잤다. 그리고 바로 몸살이 났다. 토요일부터 몸 뼈마디가 쑤시는듯하여 그냥 무리해서겠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토요일 밤부터 목구멍 안쪽이 간질간질하기 시작하더니, 주일 아침부터는 살살 오한이 났다. 날 자체가 워낙 추워 그렇겠거니 참고 교회까지 갔는데, 몸에 열이 오르고 어지럽고, 온 관절이 다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정신없이 졸렸다. 아내는 아이와 놀아주다가 빨리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내 할 일을 해주어야 다른 가족들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배 끝나고 억지로 아내와 아이를 따라 대공원 실내 체험장에 갔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온 몸이 춥고 아팠다. 아내는, 정형외과 약에도 항생제가 들어가있으니 먹으면 나을거라고 했다. 잠이 오진 않았지만, 일단 약을 먹고, 난방을 세게 틀어놓고, 두꺼운 이불 안에 쑥 들어갓다. 땀을 쭉 뺴고 나니 몸이 좀 가벼워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입 안 가득한 수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과에서 치석 제거를 한 일이 있어, 썩은 이는 없었어도 유달리 아픈 부위가 있었는데, 어쩐지 그 부위들이 계속 아픈 듯하여 나는 다시 치과를 찾아갔다. 웬만하면 아무리 아파도 시간이 아까워서 도장을 먼저 찾는 내가, 스스로 병원을 찾아갈 정도였으니 내 스스로도 아픔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내 입 안을 들여다본 선생님은, 표정이 복잡했다. 물론, 제가 실수할 가능성도 있는데요...아버님, 혹시 주변 식구들에게 비슷한 증상 있었던 일 없으십니까? 쪽집게 같은 명의였다. 아직 낯이 설어, 나는 치받아오르는 사투리를 겨우 눌러 점잖게 답했다. 사실 입 안이 하도 들쑤시듯 아파서 그럴 기력도 없었다. 우리 아이가..비슷한 수포가 있지요. 아마 옮으신 거 같습니다, 약을 처방해드릴테니 주무시는 시간 제외하시고 네다섯 시간마다 한번씩 꼭 신경써서 드셔야 합니다. 어머니 체질을 물려받아 잠 못 이루면 입안이 곧 잘 터지곤 하는 나로서는, 기껏해야 구내염 아니었나 싶었는데, 선생님 말씀으로는 아니었나 보다. 생각해보니 열과 오한이 나고, 뼈마디가 쑤시고, 입 안에 수포가 가득한 이 모든 증상이 아닌게 아니라 아이와 비슷했다.
입 안 수포는, 태권도 훈련을 할때 의외로 가장 견딜만했다. 물론 복식 호흡을 위해 입을 오므렸다 터뜨리는 과정에서는 자극을 받을수밖에 없지만, 틀 연습을 하든, 헤비백을 치고 차든, 그 외의 신체 단련을 하든, 내 신체의 연장 끝까지 생각이 가 있어서 차라리 나았다. 일을 하거나, 회의를 하거나, 말을 하거나, 공부나 책을 읽으려 하거나 할때, 때때로 성가셔서 집중이 깨졌고, 가장 힘든 일은 역시 식사였다. 나는 회사 냉장고에 내가 싸둔 도시락을 아직도 묵히고 있다. 처가로 떠나기 전 내일은 꼭 먹어야 한다. 최근 날도 추웠는데, 매운건 둘쨰치고, 뜨거운 거라도 먹으면 진짜 온 입안이 벗겨지듯 아우성을 쳐서 견딜수가 없었다. 입안을 꽉 죄는듯도 했고, 반대로 아예 찢어져라 완전히 벌리는 듯도 했다. 고슴도치 서너 마리는 물고 있는듯한 기분에 나는 밥 먹다 말고 여러번 눈물지었다. 어쨌든 주사도 두 번이나 맞고, 꾸준히 약을 챙겨먹고 있는데, 그래도 맨 처음보다는 나은 듯하다.
중요한건, 그래도 변기 막힌 일보다는 낫다는 점이다. 나는 이번에 막힌 변기와 약 닷새간 지내보면서, 사람의 삶에 오물이 얼마나 배격되어 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야생초 편지, 의 저자 바우 황대권 선생은, 사람의 용변이 거름화되던 옛날 농업방식이 진정한 유기농식 순환이라는 점에 있어서 위생을 제외하면 훨씬 근대화된 체계라고 평가한다. 반면 미스터 토일렛- 전 수원 시장을 지낸 고 심재덕 선생은, 한평생을 우리 나라, 특히 수원시의 화장실을 근대화된 구조로 바꾸는데 일생을 다하셨다. 어찌되었건 현대의 화장실 문화는 옛 농경사회처럼 생산의 일부로서 삶에 포용되기보다, 가려두고 숨겨두고 멀리 흘려보내며 배격되는 요소로 생각된다. 그러한 삶의 테두리 안에서, 온전한 차단과 배격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의 불편을 나는 너무나 여실히 겪었다. 혹시나 나는, 젊었을적, 누군가에게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었던, 불민하게 끈적대는 날건달은 아니었었나. 그저 꽝꽝 막혀 제 고집만 부리며 뚫릴 여유도 보이지 않던 멍청이는 아니었나, 새해 정초부터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던 변기 사건이었다. 젊은 날의 시인 동주는, 일찍부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노래하고자 했는데, 나는 아직도 아픈 입만 부여잡고 있다. 이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