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북치는 소녀!

by Aner병문

나는 교회에서 꽤 오랫동안 젬베를 쳐왔는데 사실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고 이십대 시절 잠시 춤바람 났을때 쌀사나 바차따 리듬에 맞춰 독학한 것이다. 춤 역시 정식으로 배우거나 오래 춘 것은 아니고, 한 1년 쌀사 빠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부천 바닥에서 일만 끝나면 택시타고 홍대로 넘어가기도 예사였던 시절, 젬베나 콩가, 봉고 역시 그저 알음알음으로 익혔을 뿐이다. 큰 키에 걸맞게 탱고를 배운 적이 있으며 훗날 노년이 되면 태권도보다는 함께 사교댄스를 추고싶다는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없다며 젬베를 가르쳐달라 했다. 하여 낙원상가도 들러보고 교회에서 쓰던 손때묻은 젬베를 집으로 들여놓기도 하였으나 애 키우기도 힘든 판에 팔자좋게 젬베 두드릴 시간이 어데 있어야지. 박자감각이 거의 없는 아내로서는 그저 낮에 가끔 허벅지 사이에 끼워놓고 두둥 탁 장구마냥 두드리기나 했던 모양인데 뜻밖에도 딸이 그 소리가 좋은 모양이었다.



모처럼 연이틀 쉬며 아내와 한가로운 휴일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가 여보야, 그 젬베 좀 쳐보이소, 소은이가 그래 좋아하니더, 하기에 옛 생각하며 리듬을 쪼개가며 쳐주었더니 이제 아홉 달 되어가는 녀석이 무엇을 안다고 손발을 짝짝 쳐가며 그렇게 좋아하였다. 젬베를 기둥삼아 번쩍 일어선 뒤 제 손으로 가죽을 탕탕 치는가 하면, 나더러 쳐달라고 손을 끌기까지 했다. 안그래도 요즘 면도하지 아니한 부숭한 턱으로 보들보들한 볼을 쓱 문지르면 끼아아아아 소리지르며 내 얼굴을 막 때리고 밀어낼 정도로 어느 틈에 자기 의견 확실한 다 큰 아가씨가 되었는데, 젬베의 울림이 제 작은 몸을 파고들 때마다 입을 벌쭉 벌리며 웃는 그 모습이 고와서 한참을 쳐다보았었다. 참말로, 뉘 집 자식인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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