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번외편 ㅡ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

by Aner병문

한때 천하제일의 무공을 자랑했던 젊은 사범이 징역 6년을 신고받았다. 그는 고대 유술을 근대식으로 개량한 스포츠 유도의 젊은 미남 스타로 인기를 누렸고,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으며 그 유명한 최민호 선수, 이원희 선수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은퇴 후 그는 영남 지방에서 본인의 이름을 내건 도장을 운영하며 지도자로 급부상했고, 역시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며 당시의 종합격투기 초기를 이끌던 미스터 샤크 김민수 선수의 광명ㅡ안양 등지 도장과 예능 유도 조준호 형제의 분당 등지 도장과 함께 일약 명문 도장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비록 태권도는 평생 한다지만, 나 진짜 집 앞 바로 코끝에 있는 김민수 선수 도장이나 신비태웅 무에타이 회관 한번 지도받는게 소원이다. 나는 실력없는 사회체육 아재인데 왜 이렇게 주변에는 천하제일 고수들 투성이지? 무협지인가?ㅜㅜ)



인성과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 것일까? 신데렐라 맨 ㅡ 제임스 브래덕처럼 천주교인으로서 대공황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던 무도인도 있지만, 모 유파의 이름을 내걸고 장사와 사기를 반복하다 오히려 후배들과 그 유파에 불명예를 입힌 이들도 허다하다. 그 역시 젊은 시절부터 유흥업소에서 왜 자기를 몰라보냐며 여성들과 약자를 폭행한 일로 구설에 오르더니 급기야 번듯한 도장의 지도자로서 씻을 수 없는 미성년 성폭행으로 그 이름을 더럽혔다. 한때 맞수가 없었던 천하제일의 유술기를 지녔으나 그는 부모와 문파의 이름에 불명예를 끼쳤다. 이제 누가 그의 이름을 잊을까, 또한 누가 그를 기억해줄까, 한국유도협회는 이미 오래 전 그를 제명하였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여러 구기 종목의 프로 선수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평생 일신해온 일인만큼 다른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은지라 인정에 호소하여 복귀하겠다 애걸하는 이도 있고, 뻔뻔하게 버젓이 이름 내걸고 유소년 지도자를 하는 이도 있다. 오래 전 종합격투를 배우던 시절, 나는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실력이라 보았다. 극진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가장 험한 골목에 도장을 차리고 서양의 골목대장들이며 프로 레슬러들과 손수 자웅을 겨루던 최영의 총재처럼, 나는 천하제일의 한 수라도 이 빈약한 몸에 심고 싶었었다.



ITF에 입문하여 사범님을 모신지 6년, 늙고 비둔해져가는 몸에 사범님들은 정으로 2단을 주셨다. 연골도 없이 꿰매어붙인 무릎과 발목으로 평소에도 다리를 저는데 태권도를 해봐야 얼마나 할 것인가, 평생 하기로 결심하였으나 내 무공이야 천하에 한 점 무게나 더할 것인가, 다만 밤새 제 어미를 괴롭히고 일찍 깬 딸이 벌써 무엇을 안다고 창시자님께서 손수 쓰고 그리신 소나무 문양 태권도 글자를 더듬고 있기에 이 아비 부끄러워나 말라고 1시간 동안 땀흘려 훈련하였다. 오늘은 온라인 태권도 대회가 있는 날이다. 언젠가 우리 딸도 이 부족한 아비의 도복을 물려입을 날이 올 터이다. 그 생각만 하면 술 마신 몸조차 쉴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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