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그대, 혹시 투표는 하셨습니까.

by Aner병문

몇년 전, 그 유명한 기안84가 SNS에 '자꾸 투표해라 투표해라 강요하지 마라 안 그래도 뽑고 싶은 사람 없는데 빡친다' 라는 내용을 올리자마자 파괴왕 주호민이 '야이 무식한 놈아ㅋㅋ' 라며 댓글을 단 사건 또한 선거철마다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일찍이 요 임금이 천하의 현인에게 왕위를 양도하려 해도,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씻고, 소부는 그 물을 어찌 또 소에게 먹이겠냐며 굳이 상류로 갔으니 사실 주호민의 비판도 그저 하나의 의견에 지날 따름이다. 최동훈 감독의 재기발랄함이 빛나 제발 후편이 좀 나와줬으면 하는 영화 전우치에서도, 유해진 배우가 열연한 초랭이의 말이 그럴듯하지 않은가. 아니, 도가의 도술을 닦는 녀석이 언제나 유가의 입신양명을 따르고자 하니 이거 어디 될 말이겠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노자는 소 한 마리 타고 타박타박 낙향하다 겨우 잔등에서 오천자 불후의 도덕경을 남겼을 뿐이고, 장자는 자신을 등용하려는 벼슬아치들이 오자 앞장서 진흙덩이에 몸을 뒹굴며 거부했으며, 열자는 살과 뼈를 바람에 녹여 날아다니는 비술을 지녔음에도 평생 은거했다. 배운 자는 제자백가요, 장삼이사도 백인백색이라 다 제 멋에 살 뿐이라지만 아내도 나도 개인으로서는, 왜 굳이 저렇게 입신해봐야 욕만 먹는 정치에 목을 매는지 알 수 없을 따름이다. 하기사 인간 욕망의 마지막 정점이 권력욕, 출세욕이라고 했던가.



선거를 앞두고 현 정부는 조국 사태로 망하고 코로나로 살아났다 는 평이 공공연한 요즘, 급기야 유시민 작가께서 180석 선언을 하시고야 말았다. 알쓸신잡 PD도 '유 작가님은 진짜 아는 것도 많고 말씀도 많이 하시지만, 알고보면 틀리거나 섞인 것들도 많아서 편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라고 말했듯이, 혹시나 유시민 작가의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서른이 넘으면서 정치적 의견은 그저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지 오래되었는데, 남녀 갈등까지 더해져서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살풍경한 요즘은, 내가 정당에 상관없이 어느 의견에는 동조한다는 말조차 꺼내기가 갈수록 어렵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아내로서는, 아이 젖을 먹이며 그저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보시다 불현듯 물어보시었다. 근데, 지금 대통령도 모르지 않았을낀데, 어찌 조국 장관을 그대로 임명했으꼬, 지금 생각하몬 이상 안합니까? 아따, 만약에 여보가 보스라고 해보소, 오랫동안 야당에서 몇십년간 고생했는디, 딱 대통령 되불믄, 부하들 한 자리씩 챙겨주고 싶은 맴이 인지상정이제, 어차피 비리야 여그나 저그나 털믄 먼지 안나오는 사람 있으까, 옛날 김대중 대통령 때도, 그 양반 은퇴하신다 말씀하신 뒤에도 오죽 주변에서 저 한자리 안 씨기주믄 자살하겠다 하는 측근들도 많아서, 번복하고 다시 선거 나오시기도 했었는디. 정치 이야기할때마다 아내와 다른 사투리로 얘기하는 것이 즐거워 그저 전라도 집안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임에도 괜시리 말을 더 과하게 써본다.



그래도 아내가 그런가 싶은 얼굴이라, 십팔사략이며 열국지, 사기 등에 나오는 오래 전 춘추오패 중 하나인 진 문공이 되는 공자 중이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훗날 한식과 청명절의 유래가 되는 개자추의 고사와도 얽힌 군주다. 진나라 공자 중이는 형 신생이 계모 여희의 독계로 억울하게 죽고, 본인 또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무려 19년간 방랑길에 오른다. 왕족이긴 해도, 위로는 허울만 좋을지언정 상국 주나라가 있고, 주변으로는 비슷한 강국들이 힘을 겨루는 춘추의 시대인지라, 그는 오로지 명함 한 장만 가지고 천하를 떠돌며 자신을 지원하여 나라와 왕위를 되찾아줄 강국을 찾는데 평생을 바쳤다. 19년이면 지금 세월로도 결코 짧지 아니한데 하물며 기원전 근 600년전의 시대였으랴. 그래도 김보성 씨 못지 않은 의리가 살아 있어 변협(갈빗대가 갈라져 있지 않고 통뼈인 이상체형)에 중동(눈동자가 2개!)인 공자가 정통성에 따라 나라만 되찾는다면 본인들도 여당의 중신이 될 꿈에 부푼 가신들이 끝내 그 뒤를 변치 않고 따랐다.



19년 동안 신산한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터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통갈비에 눈동자 2개를 구경하겠다고 촐싹대며 목욕탕까지 훔쳐보는 군주에게 수모를 당했고, 어느 나라에서는 제 앞가림도 하기 어려우면서 인의를 부르짖으며 원병을 하겠다는 군주를 보며 얼마나 복수가 지난한 일인지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한발 앞서 춘추오패의 앞자리를 차지한 제 환공은 때마침 자신과 비슷한 영웅의 풍모를 지닌 중늙은이 공자를 귀빈으로 접대하며 장가도 보내주고 휴식하게 하는데, 이때 중이는 제 환공의 영락을 목도하며 그만 대업에 흥미를 잃기도 한다. 천하제일의 영웅이 한낱 여인의 치마폭에 빠져 웅지를 잃는다 소문나 욕될 것이 부끄럽다 여긴, 조강지처 강씨 여인이 아니었다면 훗날의 진 문공은 없었을 터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눈물섞어 준 달콤한 술에 취해 깨어난 중이가 깨어난 곳은, 미녀와 함께 한 폭신한 침대가 아니라 다시금 나라를 되찾기 위해 달려나가는 초라한 마차 위였으니, 이에 중이는 창을 들고 설치며 당장 자신을 되돌려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지만, 충복이자 외숙부인 호언은 그 이름처럼 호언한다. 이 한 몸 죽어서 주군께서 웅지와 기백을 되찾는다면 그 것으로 족합니다. 끝내 창을 던지고 말면서도, 대업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대의 생살을 씹으리라, 한 마디 덧붙이는 노영웅에게 끝내 한 마디 깐족거림, 빼놓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 모두 실패한다면, 신의 살은 이미 무르고 썩어서 씹을 것이나 있겠습니까? 이처럼 배포 하나는 끝내주는 부하들과 함께 또다시 고생길에 스스로 오른 중이는, 농부에게 흙도시락을 받기도 하고, 가신 중 두수가 얼마 남지 않은 재산까지 횡령하여 도망치는 배신을 당하기도 하다가, 끝내 초나라의 강병을 빌려 복수에 성공하고 나라와 왕위를 되찾는다. 이 중 초나라의 군사를 빌릴 때의 고사 또한 눈여겨봄직하다. 병사를 빌려주면 무엇으로 은혜를 갚겠느냐는 말에, 중이의 말이 걸작이다. 귀국은 이미 인재와 재물, 땅이 넘쳐나는데 딱히 무엇으로 은혜를 갚겠습니까, 훗날 초와 진의 군사가 서로 맞붙는다할때, 우리는 무조건 3사(舍)를 물러드리리다. 사, 는 당시 군대의 하루치 행군 거리로 12KM에 해당한다. 즉, 아무 것도 가진게 없어 남의 나라 병사로 싸워서 겨우 나라를 되찾으러 가는 주제에, 나중에 한 판 붙거든 우리가 무조건 36KM 후퇴해주마, 그럼 됐지? 하는 배포를 지금 어데서 찾을 수 있을까.



중이는, 역사의 흐름대로 진 문공이 되어 훌륭한 군주가 되었다. 먼저 패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비참하게 죽은 제 환공을 직접 보았으니 더욱 신중을 기했을 터이다. 그러나 논공행상에서만큼은 그조차도 실패했다. 연나라 소왕은, 일찍이 곽외라는 작은 재주의 선비를 등용했는데, 곽외조차도 출세하는 것을 알자 전국의 이름난 선비와 호걸들이 연나라에 구름같이 취직을 하러 달려왔다- 이 것이 그 유명한 매사마골, 천금백골, 사마골오백금- 즉 표현을 달라도 죽은 말 뼈를 비싸게 샀더니, 천리마를 알아서 팔러 오더라는 유명한 고사다. 그러므로 진 문공이 된 중이는, 방랑객 시절 자신의 재산을 횡령하고 도망쳤던 두수가 다시 취업을 하러 오자, 오히려 그를 크게 등용하는 광고 효과까지 노릴 정도로 대담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자추를 등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한식과 청명절을 강조하기 위한 훗날의 야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천하의 한 고조도, 파촉의 한왕이 되지 않았던들 어찌 절치부심하여 패왕 항우를 꺾을 수 있었을까. 또한 정사에 의하면, 개자추는 불타 죽지도 않고 역시 나중에 삽입된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아내가 모처럼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재미있다고 하니, 나중에 돌아가신 고우영 화백의 역사만화전집이라도 마련하여 아내와 함께 다시 읽을까 싶다. 여하튼 논공행상은 이렇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가 선거라면 역시 소중히 행사할 수밖에 없다. 불행중 다행으로, 코로나 때문에 선거를 이유삼아 많은 사람들이 바깥나들이 겸 선거 참여율이 높다고 한다. 서양에서 말하는 사회계약론처럼, 현재 정부는 개인이 처리할 수 없는 공공서비스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이 정부의 성과가 평가될 터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답답해도, 투표를 권장드리고자 합니다. 이 나라는 다른 나라들처럼, 무효표가 일정 이상 되면 다시 선거하는 법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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