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나가수부터 싱어게인에 이르기까지

by Aner병문

오래 전 실력파 가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자웅을 겨룬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90년대 가요톱텐처럼 가수들끼리 경쟁하여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없지는 아니했으나 쟝르도 달랐고 대중의 인기 척도를 가늠할 뿐이었다. 나는 가수다 는 그동안 각 쟝르의 대표자 격으로 군림해오던 실력파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 매번 과제를 내주고 경쟁케 하여 탈락시키는 구도를 도입하여 순식간에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종교와 더불어 예술만큼은 잔인한 무한경쟁의 시대에 비껴나있는듯한 한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으며, 부담감에 출연자들이 도중 하차를 선언하고, 당시 인기 코미디언이 그의 성명절기이기도 한 무릎을 꿇고 읍소하기 를 시전하여 탈락 위기의 김건모를 되살렸을때 어마어마한 비판이 들끓기도 했다. 당시 정치판조차 나가수의 예를 입에 올릴 정도로, "깨끗하고 공정한 대결과 그 결과" 를 갈망하던 사회였다.



나가수를 기점으로 어마어마한 음악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뒤를 이었다. 4천만 국민을 모두 가수로 만들어 지구촌 곳곳에 투사하겠다는 정부의 육성 계획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미스/미스터 트롯처럼 특정 쟝르의 대성공 후에는, 선비 국악, 자매님 찬송 같은건 안 나오나 싶을 정도였다. 역시 흥의 민족이로구만 감탄할 즈음 신선한 프로그램이 또 등장했다. 이미 알고 있는 가수라도 복면을 뒤집어씌워 선입견없이 듣고 누군지 맞혀보자는 내용이었다. 퀴즈(Quiz)는 본디 너는 누구냐 는 뜻의 라틴어 Qui es? 에서 나왔다고 했다. 영국의 추리 퀴즈 전문가 팀 데도풀로스는 닫힌 상자가 있다면 열어서 꺼내보고픈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라 했다. 그러므로 판도라의 상자처럼, 얼굴을 가린 별 같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듣고 뉜가를 맞히는 내용 또한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지, 미국까지 수출되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한 번 무대의 맛을 보았으나 좌절하거나 혹은 떠나거나 은둔한, 무림의 은거기인 혹은 재야고수 같은 이들을 모아 한 번 더 노래해달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싱 어게인(Sing again) 이라지만, 사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싱어 게인(Singer gain)일지도 알 수 없다.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노장이거나, 아리스토텔레스 적으로 말하면 이미 테크네 적으로 탁월하여 젊은 나이에 부와 명성을 거머쥔 젊은이들이다. 여타 면접 프로그램처럼 그들이 의자에 앉아 수없는 이들의 재사회화 기회를 부여하는 듯하여 속상하지만, 일단은 오랜 세월 푹 삭혀온 옛 이들의 노래를 듣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그동안 한국 사회 저변에 끊임없이 요구되던 "실력 있는 자가 당당히 존경받고 대접받는" 사회에 대한 바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옛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전국사공자 중 하나로 이름을 떨치던 조나라 평원군이 왕을 모시고 회담을 하러 갈 적에 스무 명의 수행원을 뽑았으나 그 수는 열아홉, 꼭 한 명이 모자랐다. 그 중 행색이 초라한 모수 라는 선비가 스스로를 천거하니, 이에서 실력 있는 자는 쓸데없이 겸손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추천한다는 모수자천 의 고사가 나왔다. 평원군은 모수가 이미 자신의 식객으로 오래 있었으나 누구도 그를 칭찬하거나 존경하는 모습을 본 적 없어, 그 유명한 낭중지추의 예를 들어 모수를 쫓아내고자 했다. 자고로 현자가 그 뜻을 드러냄은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음과 같아 자연스레 천하가 알게 된다 들었습니다, 헌데 공께서 이미 제 막하에 오래 계시었으나 여지껏 공에 대해 들은 말 한 마디조차 없습니다. 이에 모수는 웃으며 답하기를, 제가 오늘 공자께 청하고자 함은 저를 이제 그 주머니에 넣어달라 할뿐입니다, 이 모수, 주머니에 들게만 해주신다면 어찌 그 날끝만 드러내겠습니까, 주머니를 찢어발겨 천하에 이 모수가 있음을 알게 하겠습니다.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 무한경쟁에 신음하는데도 경쟁 프로그램을 보며 뉜가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여 아침 어학원 길에 몇 자 적었다. 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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