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3년 전 9월 첫 날 더위가 가시기 전에 만나, 그 해가 가기 전의 12월 첫 날 추위가 매서울 무렵 결혼하였다. 퇴직 딱 한 달 전에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구름같은 하객과 산 같은 봉투를 돌려받으신 아버지의 희색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한복으로 한껏 치장하신 어머니는 뤼실 뷔꼴랭처럼 강경하게 우아하시었다. 많은 이들이 혼수 생겨 급하냐며 정감 어린 농을 건넸으나 사실 아내나 나나 서른 남짓 살아오며 인생을 홀로 넘기기는 어려우겠다 결심하였으므로, 아내는 믿음이 강하고 순하고 성실한 남편을, 나는 무던하고 말이 통하는 아내를 찾아 오래토록 헤매다가 서로에게 겹치고 스미게 되었다. 이십대를 누구보다 추하게 보내어, 나는 야스퍼스의 고백처럼 다시는 그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늘 가정을 행복하게 꾸릴 것을 다짐했다. 나는 실상 겁많고 소심하고 능력없는 사내인지라, 한 상의 밥과 술과 책과 격투놀음할 몸만 있으면 능히 살고 또 이에 대해 함께 떠들어줄 가족과 벗이 있으면 그로서 좋았다. 다행히도 산처럼 높이 현명하고, 바다처럼 깊이 무던한 아내를 만나 평안히 산다. 겨울바다에 아내의 이름을 새겨놓고 삼일 밤낮 술 마시고 책 읽고 땀을 흘리었다. 벌써 두번째 결혼기념일, 내 딸과는 처음 맞는 연말.세상이 제아무리 어지러워도 공부하는 후학들이 시험을 보고, 도시락을 두개씩 싸들고 다니며 땀 흘리는 무인들이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