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연극, 아니,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빰빰빰~

by Aner병문

시티즌 유- 유시민 작가의 180석 공언이 현실로 옮겨지고야 말았다. 이낙연 대표는 승자의 여유를 보이며 체면지켜 소회를 말씀하셨으나, 법궤를 되찾은 다윗마냥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었을 터이다. 황교안 대표는 처참한 당의 패배를 책임지고 사퇴한다 했으나, 국민에게 소소하게나마 봉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 여지를 남겼고, 그 또한 정치에 남겠다는 의견으로 해석해도 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으며, 또한 당의 패배를 어찌 책임질지에 대한 방법 또한 구체적으로 남기지 아니하였다. 심상정 대표는 소소히 예상한 9.9%의 의석을 채우지 못했고, 또 본인도 고전하는 듯 보였으나, 역시 '진보의 성지' '심블리의 텃밭' 경기 고양 갑에서 당선을 거두었다. 지난 선거 당시 많은 구설수가 있었으나 특히 당 대표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또 홀연히 돌아와 느닷없이 전국 종주를 완료한 '포레스트 철수' 안철수 씨는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또한 대부분 구심점을 잃고 미래통합당으로 흘러가버린 이른바 '안철수계' 의원들 또한 그 성패를 알 수가 없어져버리었다. 정치란 이토록 참으로 허망하고 무서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폭 빠져 있기를 원하니 요망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하여튼 앞으로의 정치판이란, 볼 것 없이 뻔하다. 사실상 여당이 입법에서 큰 힘을 가지게 되었고, 제1야당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지금보다 더한 농성파업 시위 등을 벌이며 악착같이 절차를 방해할 터이다. 어찌 생각하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오히려 더한 혼란을 보아야할 듯 하여 서글프기까지 하다.



일찍이 그리스에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정식 교육을 받아 지혜롭고,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 가정과 사회를 위해 참전이 가능한 남성 자유민 계급' - 즉 시민들로 제한되었긴 했으나, 아고라에서 모인 그들은 높은 학식과 참여 의식을 뽐내며 토론하였고, 외적의 침입에 앞장서 중무장을 하고 참전하였다. 이때의 전쟁이란, 평소에 몸을 단련한 시민이, 기꺼이 스스로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무구까지 손수 구매하여 장비하고 나가는, 일종의 정치적 행위였기 때문에 그 유명한 밀집대형으로 용맹을 떨쳤던 그리스의 중장보병들은, 그야말로 군대에서 강조하는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쳐져있었을 터이다. 소크라테스 또한 시민의 덕목을 다하기 위해 여러 번 전쟁에 나가 군공을 세웠고, 업어치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기술이라고 주장하며 레슬링 챔피언까지 지낸 플라톤 역시 이러한 싸움에 빠질 인물이 아니었다. 다만 직접 민주주의는 역시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과 반대되는 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생각할 수 있으므로, 플라톤은 철학을 배운 엘리뜨 계급만이 정치를 주도해나가야된다는 철인정치를 주장하였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서 백성들을 효용적으로 다루는 지배자의 덕목에 대해 논하였고, 또한 그 유명한 군주론을 써서 지금까지 회자된다. 마키아벨리는 워낙 평이 다양한 중세의 거장이라, 몇 권의 책만 가지고 감히 내가 그의 사상을 말할 수 없다. 다만 마키아벨리 이후 서양은 르네상스를 통해 근대로 진입하고 이후 다양한 분야의 혁명을 거쳐 지금의 민주주의, 또한 정치적 시스템을 갖추었다.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에서도 말하듯, 정치학에서는 보통 이렇게 3단락으로 정치의 흐름을 크게 구분짓는 것으로 안다.



반면 동아시아권에서는 일찍부터 제정일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지도자가 오랫동안 거두하였다. 춘추의 시절까지도, 주나라는 비록 허울좋을망정 상국으로서 공물과 인사를 받았는데, 공부자는 주나라의 예식, 즉 주례(周禮)의 복원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예의란, 결국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방식이며, 이를 정치에 투영하면 결국 서로의 지위와 계급이 있었다는 뜻이 되므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한다는 공부자의 정명(正名) 사상과도 또다시 맞닿는다. 이후 수 문제가 과거를 시행하고, 한나라 때부터 널리 시행했으며, 청나라 때는 지배자 만주족이 민족적 정통성을 병합하기 위해, 금석학과 팔고문을 더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 신라 시대 때 독서삼품과 등을 통해 독자적인 관료 시험 체계를 갖추었으며, 노비안검법으로도 유명한 광종이 과거를 도입하고, 말기에는 안향이 유학을 널리 퍼뜨림으로 하여, 흔히 장원 급제로 인식되는 과거 제도가 조선의 관료제를 완성시켰다. 왕 으름장도 놓고, 왕비 사형까지 시키던 유럽의 대혁명에 비해 동아시아는 비교적 왕권이 잘 이어져 왔으므로, 몇몇 이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부끄러운 과거이네, 헬조선이네, 그런 말을 하지만, 나라마다 근대화의 시점이 다르고, 또한 시대의 한계 또한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근대화 이후 한국은 해방공간과 미군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은 높은 교육열과 시민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 10위권을 전후하는 경제 규모와 문화적 파급력을 지녔다. 정치에 분노하고, 때로는 한탄하며 포기하다가도, 막상 위기가 닥치면 속된말로 씨발씨발 욕을 하면서도, 정부의 행정명령에 협조하고, 거국적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기꺼이 나라를 위해 개인을 희생할 줄 아는 대인적인 국민성 또한 가지고 있다. 20대 총선이 끝났다. 남은 것은 이 정부가 남은 험난한 기간을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비록 정당을 신뢰할 수 없다 할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근데 뭐 나도 사실 뭐 맘에 안들면 투덜투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낄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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