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일모도원(日暮道遠) ㅡ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교수 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시비는 시비를 가리다, 시시비비를 따지다 할 때의 그 시비이므로 옳고 그름을 이르는 표현이다. 즉 올 한 해는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 는 식의 싸움만 일삼다 끝났다는 비판이니, 흔히들 쓰는 내로남불(이거 사자성어 아니다!) 의 고풍스러운 표현이라 하겠다. 슬픈 일이다.
내 스스로의 작은 삶을 돌아볼때 올 한 해는 무엇으로 꼽을 수 있을까. 역질이 도는 와중에도 올해 2월의 마지막 날 첫 딸이 세상에 났고, 그녀가 서고 말이 트기까지 아내가 품었던 마냥 열 달이 다시 가고, 나는 회사에서 자리를 옮겨 다시 적응하는 동안, 몸은 무뎌지고 마음은 닳아서 책 한 줄, 무공 일초, 술 한 잔 제대로 들기도 어려웠다. 아니, 그래도 술은 만사 젖혀놓고 때되면 마신듯도 하다. 그러므로 무엇 하나 이루기도 어려운 필부의 삶에 목구멍은 비루하고 시간은 촉박하여 여유를 낼 수 없었다. 늘 성마르고 예민한 성정의 작은 사내와 평생을 함께 하는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다.
흔히 절치부심하여 옛 복수의 마음을 잊지 않고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황을 빗대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고 한다. 오나라 왕 부차와 월나라 왕 구천이 서로에게 복수하고자 가시나무 위에 누워자고 끼니 때마다 쓸개를 핥았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신필 김용 선생의 단편 월녀검의 배경도 이 무렵이며 항우의 참모 범증의 조상이라고도 알려진 책사 범려와 전무후무한 복수의 화신 오자서가 활약하던 때도 이 때다. 오자서는 제 아비와 형을 죽인 초 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나라 합려에게 몸을 의탁하여 끝내 복수에는 성공하지만, 평왕은 이미 죽어 시신조차 물러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 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오자서는 죽어 묻혀있다 한들 나를 피할 수 알았던가! 하며 손수 묘를 헤집고 시체에 삼백 번이나 채찍을 갈겨 살을 찢고 뼈를 부수어 모두 흩어놓았다고 했다. 그의 오랜 벗이었던 신포서는 제후국 중 제일인 진나라로 탈출하여 구원병을 빌던 중 친구인 오자서의 복수가 지나침을 꾸짖는 편지를 보냈는데, 오자서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붓조차 들지 않고 옛 벗에게 말을 전했다 한다. 돌아가서 전하거라, 나 오자서. 일모도원.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아직 멀다는 뜻이니 전염병 같은 일상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내 발버둥도 그와 같지 싶어 몇 자 적었다. 북극의 한파가 밀려 내려오는 세밑. 무엇을 이루고 본을 보일만한 아비나 남편이나 사형이나 되었던가, 다 부질없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