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번외편 ㅡ 집착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by Aner병문

방역 2.5단계 정책이 다시 2주 더 연장되면서 미스터 강은 결국 어학원을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사상 초유의 세계적 재해이니 탓하기도 뭐하다만 안그래도 우왕좌왕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학원이고 도장이고 아우성치는 요즘에 그 학원은 괜찮으냐 여쭈니 중고등학생들 가르치는 화상 수업 학원이란다. 아이가 셋이고보니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나처럼 어데든 찾아나섰을 터이다. 아비이자 남편이란, 원래 그렇다. 아내가 그렇듯이.



CJ와 미스터 강의 이직 얘기를 하다 문득 내 영어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원래 내가 어학원을 다시 다니기로 결심한건 인사동을 떠나고 나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어감이며 구조, 문법 등을 다듬기 위해서였다. 나 어렸을 때는 조형기식 실전 영어 라는 말이 유행이었었는데, 한때 에로액션배우(!)를 자처하며 다양한 희극에 나오던 그가 목이 마르다는 말을 영어로 할 줄 몰라 제 목을 쥐어뜯으며 드라이, 드라이(헤이, 츄라이 츄라이?) 했다는 사연에서 비롯되었다. 까짓 거 인도의 강 선생님 말씀처럼 영어래봐야 사람 쓰는 말이고 십년간 학창시절 공부에 벌써 십칠 년 가까이 이런저런 무공 익히며 말이야 되는대로 던질 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가지런해져가던 문장들이 많이 쓰던 것들 제외하면 또 제멋대로 헝클어져 성가셨다. 나는 extend가 기억나지 않아 decide it to push 2 weeks more 라고 말했고, leave의 과거형 left를 잊어버려 got out 이라고 썼다. 내가 스스로 어어억 I cannot speak in English anymore 하자 전화기 건너편에서 스물두살난 착한 열국의 처녀는 조심스레 제딴에는 영업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 하는지 Jay의 영어가 나쁘진 않지만, 좀 더 영어로 이야기할 기회가 필요할듯 하니. 일주일에 다섯 번으로 수업을 늘려보면 어떠냐 제안했다. 미스터 강 처럼 잘 가르치는 명강사도 없는 어학원이 언제 제자리 찾을지 모르는데다 어데 갈 필요없이 집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나야 좋다. 다만 남편이자 아비로서 내가 해야할 일들을 제외하면 잠을 줄여도 하루의 독서와 무공조차 다 하기 어려운데, 내 본연의 말도 아닌 영어로 더욱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이 또한 집착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술 먹을 시간도 부족...읍읍.



아내가 피곤하다며 아이와 함께 일찍 잠들어, 나는 도구 하나 없이 맨몸으로 권투와 발차기 연습을 했다. 1시간 정도 했더니 그것도 운동이랍시고 땀이 빼쪽 솟았다. 이 또한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 집착이리라. 부처께서는 제 모습이 반드시 어때야 한다는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고 보셨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을 알게 된 것도 현명함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늘 조금씩 무엇이든 하려고 발버둥치면서 이룬 것도 없는 나야말로 집착의 부산물 같은 존재 아닐까.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칸트와 싸르뜨르가 오늘따라 유독 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