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부부의 세계..일명 쀼의 세계...

by Aner병문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안 보는 것은 아닌데, 일단 총각 시절에라도 하루 일을 끝내고 나면 도장 다녀 와서 책 읽고 좋아하는 영화 보다 자기도 바쁜데, 매일 꼬박꼬박 시간 맞춰 챙겨보기도 힘들거니와 그렇게 본다고 해봐야 결국 울고 짜는 치정극뿐. 요즘에는 소위 말하는 웰메이드 수작 드라마도 많다지만, 국산 드라마는 아직까지 예전 '태릉선수촌' '태권, 도를 아십니까' '곰팡이꽃' 정도의 단편 드라마 아니면 눈이 잘 가지 않는다. 대신 옴니버스 식으로 한 편 안에 기승전결이 모두 들어 있는, 수사극은 비교적 좋아하는 편이라서, 병원 신세를 오랫동안 질 때는 밤새도록 멘탈리스트며, 번 노티스, NCIS, 라이 투 미, 등의 수사극을 몰아서 보기도 했었다. 수사극에도 내 나름의 원칙이 있어서,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도 재미없고, 큰 줄거리는 있어야 하지만 사건은 반드시 한 편 안에 끝나야 하며, CSI처럼 첨단기계로 밀어붙이기보다, 추리나 심리극 으로 범인을 잡아내야 했는데, 그래서 멘탈리스트는 제법 질리지 않고 오래도 봤었다. 국내에서는, 별순검 정도나 그렇게 봤지 싶다.



나와 여러모로 취향이 다른 아내는, 동물 예능을 비롯한 자연 다큐멘터리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부부의 세게- 일명 '쀼의 세계' 에 빠지셨다. 16부작이라고 하는데, 10회에까 방영되어 중반을 넘긴 요즘에는, 아주 방송 예약을 맞춰놓으시고 아이를 아주 안아, 울지도 못하게 하신다. 처음에는 김희애랑 살아도 바람 피면 대체 누구랑 살아야 하는거냐며 농담조로 아이를 대신 얼러주던 나였으나, 나는 아내의 곁에서 이 드라마를 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극중 배경인 지방 소도시인 고산에는 정말이지 제대로 된 인간이 거의 없다. 어디서 이런 인간들만 사 오나 싶을 정도다. 영화감독인 남편인 (좀 차가워서 무섭긴 하지만) 우아한 아내와 번듯한 아들을 두고도 기어이 외도하여 새 가정을 꾸리는데도, 전 가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주인공 역할인 아내는 복수로 갑자기 남의 가정 남편을 끌어다가 맞바람을 피우며, 그렇다고 두 사람 모두 손을 끊고 더이상 신경을 안쓰기는커녕, 상대를 더욱 파멸시키기 위해 권력욕과 폭력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난형난제 용호상박 설상가상 점입가경 금준미주에 옥반가효.. 아 이건 아닌가... 여하튼 저 고산이라는 동네는 부동산이 없는건가, 어떻게 골라도 저런 동네만 골라서 들어가며, 그냥 저길 뜨는 게 만수무강에 이롭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된 드라마가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 1분을 넘지 못한다. 나오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하나같이 질시와 증오와 폭력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용은 검증되었다 시피 자극적이지만 짜임새가 있고, 연출 또한 훌륭하여 주부층을 넘어 많은 사랑을 받는 드라마라고 들었다.




여하튼 나는 체면상 몇 화 정도는 아내 옆에서 아이를 어르며 등장 인물 이름이나 구별하는 정도로 보았으나, 1분마다 서로 미워하고 화내고 짜증내는 극중 인물들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도로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영어나 일본어를 쓰면서 자리만 함께 하고 있다. 아내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정신없이 보시다가도, 때때로 허벅지를 찰싹 치시면서, 아하이, 저건 아니지~ 저래 하모 더 씅질 나지~ 하거나 저걸 우야노, 저걸 우야노, 하며 추임새를 넣는 품새가 참말 재밌으신 모양이다. 다만 어제 10회의 방영분에서, 김희애와 박선영이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부부가 무엇인지 논하는 장면이 있엇는데, 그 장면만큼은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일찍이 적련선자 이막수가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불길로 몸을 던지듯이, 사랑이란 단순히 반지를 끼고 있다고 해서 영원할 수 없고, 따라서 결혼이나 자녀가 반드시 사랑을 보증한다고도 볼 수 없다. 고산에서의 부유층들은 누구 하나 물질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지만,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셋방살이하지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피곤하게 산다. 욕망에 지기 때문에 인간이라지만, 욕망만을 앞세운 삶이 어떻게 되는지는, 나 또한 이십대를 겪어서 잘 알고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아내는 모처럼 6시간을 내리 푹 잤다. 나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푹 젖어 샌 모유를 유축해두고, 다시금 내 아침을 챙겨주었다. 그 동안은 나조차도 피곤해서 스스로 못 챙겨먹던 아침이었다. 아내는 나를 위해 키위를 갈고 달걀을 삶고, 잣 한 줌과 바나나를 넣어주었다. 일찍이 곤양대전에서 고작 천 명의 기병으로 선봉에 올라 43만명에 달하는 왕망의 반란군을 격파하고,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는 과부가 된 누이 호양공주의 짝을 짓고자 어사대부 송홍에게 은근히 속내를 비친다. 무릇 사람이 처지가 바뀌어 부유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이름을 날리게 되면 아내를 바꾼다던데, 경의 생각은 어떤가. 송홍은 요즘으로 치면 고시생 출신으로 어렵게 고생하여 출세한 인물로, 늠름한 풍채에 언행이 좋아 광무제의 총애를 받았으므로 혹시 새롭게 공주의 남편이 될 생각이 없는지 떠본 것이다. 이에 송홍은 의젓하게 대답한다. 가난할 때의 친구를 어찌 잊고, 밥이 없어 쌀겨와 술지게미를 나눠먹은 아내를 어찌 버리겠습니까. 이미 예상되었던 대답이기에 어쩌면 광무제는, 일부러 누이더러 직접 들으라고 자신의 자리 뒤편에 몰래 공주를 감췄는지도 모른다. 송홍전에 따르면, 중국 대륙의 지배자조차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쓴웃음을 지으며 소곤거렸다고 한다. 누님, 안되겠는데요? 사도 바울은 일찍이 정욕에 몸을 태워 죄를 짓느니 짝을 만나 살라고 권하였다. 타짜 1편에서 고니는 죽은 고광렬을 대신하여 미망인이 된 화란에게 청혼한다.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결혼을 하겠냐는 화란의 질문에, 고니는 늠름하게 대답한다. 난 무식한 놈이라 사랑 같은건 잘 모르지만, 사람은 사랑보다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소, 의리란 놈은 사랑이랑 달리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거든, 당신이 나와 결혼해준다면 한평생 남편으로서의 의리를 지킬거요! 아내는 항상 나에게 최선을 다해주신다. 언제나 피곤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오늘도 힘내라며, 심지어 오늘은 유단자 세미나 날이니 도장 조심히 다녀오라며 말해주는 아내에게 늘 고맙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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