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순 없다고, 일년만에 찾아온 자길 두고 결혼하실 수는 없다고 너는 얼굴을 감싸쥐고 울부짖었다. 아닌게 아니라 곽선생의 생일을 맞아 한 달 늦은 잔치를 벌이려던 지난 토요일, 모처럼 아이도 어머니께 맡겨놓았으니 우리 부부가 서울로 나가보자며 나는 이발과 도장과 독서를 끝마쳤고, 아내도 회의 후에 지하철을 타고 올라왔던 대학로 근방이었다. 졸업을 맞아 십수년전, 나도 입었던 전통 복식의 졸업 정장을 입은 젊은 후배님들이 발랄한 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다양한 종류의 외국맥주와 안주, 무엇보다 너가 좋아해마지않는 끈적하고 꾸덕한 맥앤치즈를 파는 집이 있었는데, 그리하여 개장시간 맞춰 근 일년만에 찾아갔건만 "아저씨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라며 하필 당일에 결혼하시어 일주일간 휴가를 내신 터였다. 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커플들 또한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업장 앞에서 말도 안된다며 허탈해했고, 곽선생만 멀거니 중얼거렸다. 아직 결혼을 안하셨단 말이야? 할수없이 너가 잘 간다는 여대 앞 막걸리집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맥앤치즈으으, 맥앤치즈으으 를 울부짖는 너에게 나는, 야, 아조 그냥 대학로에 소문 다 나겄다, 그 집 아저씨 결혼사진 앞에서 아가씨 하나가 울다 갔다곸ㅋㅋㅋ 몰라, 나 진짜 담에 가면 그 맥앤치즈 레씨피 알려달라 할거야, 나 자격있어! 대학에서 대학으로 건너가는 짧은 거리를 운전해주시는 기사님은 키득거리시었다. 거, 째깐헌 양반이 농담을 재미나게 잘허시네이, 허허.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골목들을 짚어 돌고 돌다보니 구석진 곳에 작은 가게가 하나 나왔다. 크기도 작고 탁자는 흔들리고 화장실도 좁은데다 내가 아는 대포집 같은 곳이 아니라 대학생들 잘 가는 피맥집 같은 분위기였다. 핑거푸드로 생양배추를 썰어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주길래 이게 뭔 막걸리집인가, 하고 있는데 온갖 막걸리를 다 모아둔 정성은 그렇다치고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 끓인 차돌 전골이며 바삭하게 구워낸 감자전, 달달한 육회, 누룽지를 뿌려 구운 두부, 채끝 육전까지 참말로 주인장의 실력을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여대 앞이다보니 양이 적고 치즈가 가끔 들어가서 아쉽긴 했으나 큰 흠은 아니었다. 이 날만 기다려온 나는 막걸리도 모자라서 이강주 19도짜리까지 더해 마셨다. 내가 마시던 것에 비해 도수가 낮아 뒷맛이 쓰고 계피 향이 강하게 났지만 가릴 이유가 없었다. 즐거웠다.
다음 날은 날이 푹해서 돌아온 아이와 함께 봄길을 걸었다. 빼곡한 등산객들 사이로 개 아니면 애들이었다. 아내는 모처럼 해장술로 두 병을 허락해주셨다. 늘 가는 순대국집의 셰프님께서는 웬일로 잔까지 마다하시며 늘 그렇듯이 모듬수육을 차게 식혀 얇게 썰어주시고, 돼지귀무침을 가득 무쳐 얹어주셨다. 늘 그렇듯 술이 달았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센 바람도 차지 않았다. 별이 흔들리는 밤거리에 처자식이 건강히 함께 하여 즐거웠다. 사내대장부 살림 이만하면 족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