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집착을 버리는게 쉬우면 벌써 다 구원받게. :(

by Aner병문

아버지께서 갑자기 간단한 수술을 받게 되시어 퇴근하고 병원에 들렀다. 불과 두세 달 전에 아내의 출산을 위해 갔던 병원이다. 내가 적을 둔 태권도장과도 가까운 이 곳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족과 조선족, 원주민들이 서로 각축을 벌여 어지러웠다. 특히 내가 어렸을 때 주먹으로 잘 나가던 벗들은,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로 불리는 가리봉을 평정해야 비로소 쳐준다는 얘기도 있었다. 지금은 구로와 가리봉 근방은 조선족, 신길과 영등포 등지는 한족들이 주로 머물기로 대략적인 구역 합의가 되었다는 얘기 또한 언뜻 들은 듯하다. 여하튼 병원 앞 거리는 아직 도로가 정비가 덜 된데다가 전통시장을 오고가는 사람들로 늘 붐비었다.



서둘러 병원을 향해 가는데, 앞길의 노부인이 영 발길을 잡는다. 그 연배의 어머님들이 많이 끌고 다니시는, 가방 달린 작은 손수레를 등 뒤에 끌고 걸으시는데, 그 가방에 사람 키만한 깃대가 세로가 아닌 가로로, 그러니까 한 일자 형태로 꽂혀 있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빨리 걸으신다 한들, 마주 오는 사람들 발목에 걸리고, 전봇대에 걸리고, 또 거리 곳곳에 펼쳐둔 노점에 걸려서 자꾸만 작은 손수레가 뒤집어졌다. 노부인은 그 때마다 짜증도 안 내고 다시 손수레를 추켜서 걸었는데, 그래봐야 몇 걸음 못 가 손수레가 뒤집어져서 멈추고, 뒤집어져 멈추고 를 반복했다. 이쯤 되면 차라리 내가 뒤에서 아이고, 어머님, 이 뽈대를 세로로 꽂아야 안 걸리제, 자꾸 걸그작거리잖애라, 대신 돕고 싶은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여 그냥 그녀를 지나쳐 발길을 빨리 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뵙고 때마침 걸린 퇴근길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낑겨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총각 시절, 나는 닻 없이 흘러가는 배처럼 때때로 무척 불안정하였다. 혜가 스님이 깨달음을 구하여 한 팔을 자르듯, 만약 내 마음을 꺼내어 편하게 할 수 있었다면, 어디든 찾아서 기어이 내놓았을 터이다. 내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실에 분개하고 분노하여 스스로를 망가뜨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밝은 날에는 몸을 혹사하여 무공을 연마했고, 그럼에도 잠들지 못하는 밤을 새워 술을 마시며 책을 읽곤 했다. 혹자는 그 것을 낭만이라 부를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답 없는 방황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길을 걷기도 했고, 때로는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나를 부를까 싶어 하루 내내 책을 읽으며 거리 앞을 서성이기도 했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옆에 앉은 이가 무릎을 모아 돌려주어야만 했던 작은 버스 안에서, 나는 그리움 같은 한숨을 토하며, 술기운에 벌겋게 달아오른 이마를 아침 나절 차가운 창문에 부벼댔었다. 나는 그 때 그냥 떠나고 싶었다. 류근 시인처럼 주머니에 허섭스레기 같은 잔돈푼 허락하는 대로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정착하고 싶었다. 혹은 아무도 찾지 못할 세상 틈새에 홀로 낑겨 앉아 내가 누군가에게 짙은 그리움으로라도 남기를 열망했다. 나는 뻔히 이길 수 없는 상대들에게 툭하면 글러브를 던졌고, 언제나 그 거리를 뚫지 못한 채 무참하게 쓰러졌다. 무공처럼 삶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사무치게 알았지만, 몸이 뜻을 따라주지 못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시절을 악착같이 버텨왔다. 외로움에 지쳐 올라가던 북촌 오르막 끄트머리, 너가 커피를 내려줄때마다 별이 잠시 내려앉았었다. 때로는 혼내고, 때로는 따스하던 너가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이지 지금 이렇게 가정을 꾸리며 어른 흉내를 낼 수 없었다. 너와 함께 내려오던 밤길 끝에는, 지금의 소중한 내 아내와 딸이 있었다.



육조단경에서는, 중생에게 기특사(奇特事- 특별한 일) 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말고, 일용사(日用事)- 즉, 밥 먹고 잠 자고 옷 잘 입고, 일 열심히 하는 하루의 일상에 매진하라고 가르친다. 깨달음이란, 단식고행이나 면벽수련 같은 거창한 행사가 아닌, 매일매일 도근(道根)을 생각하며 사는 삶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젊은이가 두 송이의 꽃을 들고 깨달음을 얻고자 부처님을 찾아갔을 때, 부처님은 그에게 말씀하신다. 손에 든 것을 내려놓게. 두 송이의 꽃을 내려놓아도 부처님은 여전히 내려놓으라 하신다. 이미 손에 든 꽃을 다 내려놓았는데, 무엇을 더 내려놓으라 하십니까. 부처님은 설법하신다. 6근(六根- 눈, 코, 입 등의 감각기관 6개), 6경(六境- 색깔, 무게, 향기 등의 감각대상 6개), 6식(六識- 감각과 대상이 서로 접촉하여 생성되는 인식 6개)이 아직도 그대로 있지 않은가. 고려의 지눌 국사를 모시던 혜심 스님이 남긴 염송선문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약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던 젊은이에게 말한다. 너희들 중 진실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는 자만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모든 것에서는 단순히 재산뿐만이 아니라 미혹과 집착, 의심 등도 포함되어 있을 터이다.



결혼하고 출산하여 달라진 것이 참으로 많다. 하물며 주변 사람들은 내가 결혼하여 정말 많이 변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어제 문득 옛 생각을 하다가, 새삼 나의 총각 시절이 아득하여 놀라긴 하였다. 요즘의 나는, 총각 시절처럼 옷 안쪽에 조그마한 술병을 꽂아놓지도 않고, 퇴근하여 도장이나 책방을 들르지도 아니하며, 책은 하루에 30분이나 읽을까 싶고, 하물며 무공이나 여타 다른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정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일용사를 늘 행하고 있는 셈이며, 또한 성경 말씀처럼 범사에 감사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언제나 아내에게 감사하다. 집착을 버릴 수는 없지만, 그 집착을 올바로 모아 다루는 법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나는, 언제나 내 발길을 채던 깃대들을 올바로 다시 추스려 살고 있다.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어지러운 말이 길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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