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다시 한 번, 우리는 곁에 있는 이나 겨우 사랑할 수 있는 존재다.

by Aner병문

그러므로 곽선생이 통화 중에 씩씩대던 어느 밤이었다. 이미 녀석을 공적으로 힘들게 하던 이는 엊저녁에 떠났는데, 여전히 뉜가의 언행에서 옛 상사를 떠올리고 저 혼자 못 견뎌서 씩씩대고 있었다. 그래봐야 함께 있을 때조차 젊은 부하직원 하나 헤아려주지 못하던 이가, 떠났다고 새삼 그를 생각하겠는가. 결국 부처님 말씀처럼 곽선생의 집착이 허깨비를 만들어 제 속을 긋고 태우는 것이었기에 나는 그냥 내려놓으라 일러주었다. 나조차도 이 밤 어느 때에 잠 못 이루고 새벽 내내 이갈리게할 철천지 원수일지 모르는데 해묵은 원한 품어 무엇할까. 그러므로 나는 왜 구약의 주께서 십계를 내리시며 우리에게 네 이웃부터 먼저 사랑하라 하셨는지, 왜 공부자께서 집안부터 잘 다스리라 하셨는지, 왜 묵자께서 타인이 너를 돕기를 바라듯 곁에 있는 타인이나 돕기를 바랐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러므로 오래 전 총각 시절, 나는 눈싸움을 하다 코뼈가 부러진 어느 소년을 살펴주고 그 아비에게 인계했었는데, 내가 그를 알아서도 아니요, 작게는 칭찬을 듣고 싶었고, 크게는 옳은 일임을 내 양심 어덴가가 알았을 터이다. 양명학에서 치양지 致養知 라고 하는 바로 그 것. 그러므로 우리는 큰 꿈이나 허망한 그리움을 버리고 내 곁에 있는 이나 잘 돌볼 일이다. 제 욕심도 못 다스리면서 나라를 다스리겠다 나서는 나으리들이 비웃음을 당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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