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이영도, 시하와 칸타의 장:마트 이야기, 현대문학, 2020.

by Aner병문

같은 시대에, 같은 언어를 쓰면서 그의 글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지는 작가가 있다. 장르 작가에서는 단연 이영도 선생을 손꼽는다. (그러나 전화해서 술이라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분까지 꼽자면, 역시 한차현 형님이 최고다..ㅋㅋ) 흔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더러 위편삼절 이라고 하는데, 책을 엮은 책등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보고 또 봤다는 뜻이다. 한때 톨킨을 능가하는 환상소설작가가 되겠다는 어린 중학생 소년은, 눈이 나빠지도록 몰래 드래곤 라자를 읽고 또 읽었었다. 이영도 선생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드래곤 라자는, 인간과 드래곤을 연결해주는 드래곤 라자Dragon raja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성향 중 하나인 관계맺음과 또한 이종족으로부터 대비되는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 고찰을 녹여낸 역작이다. 비문이 다소 많지만, 후속작들에 비해 가장 대중적이기도 해서 아내도 좋아하는가 싶었더니, 역시 좀 읽다가 주무셨단다. 그러더니 꼭 좀 구해달라는 책이 있다 하여 뭔가 했더니, 쥬논이라는 작가의 '앙신의 강림' ...내 지인 소설가께서는, 글을 쓰다 막히면 책방으로 달려가 온갖, 이른바 '양판소' 를 실컷 읽다가 온단다. 그러면 내가 이거보단 잘쓰지! 하면서 다시 원고 쓸 욕망이 나신다나 어쩐다나... 여튼 백인백색 취향은 다 다르므로, 나 역시 아내를 대하는 예의상 앞의 몇 쪽 좀 읽다가 다시 아이를 안았다. 기술이 무슨 상관이냐, 그냥 링에 올라가서 이기는 놈이 1등이지- 하는 사람이 전통 무공에 관심을 가지기 어렵듯이, 문장력이나 서사도 상관없이 재미만 있으면 땡이다~ 하는 이로부터 이른바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이 갈라진다. 폭력과 무공의 구분, 문학과 잡설의 구분, 나는 그 벽을 넘을 자신이 없어서, 어느 쪽이든 대성할 꿈을 진작 버렸다.



여하튼 아내의 책을 인천 근방의 중고서점에서 구하면서, 제일 먼저, 이영도 선생의 신간이 나오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세계사편력은 아직 한 권이 남았고, 어렵게 구한 김영식 선생의 논문집 '동아시아의 과학의 차이' 이며, 다른 책들도 다 읽어야 하지만, 역시 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거장의 기억은 막강해서, 나는 자정이 넘어 하루의 첫 시작을, 그의 책장과 함께 했다. 특근이 취소된 황금 연휴의 첫 날, 아이도 아내도 모두 잠든, 나만의 시간이었다.




이제 나온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책이므로, 가능한 내용에 관한 말은 삼가고자 한다. 다만 오랜만에 읽는 그의 서사가 무척 반가웠다. 초기작에서부터 다소 거슬리던 비문이며 번역체도 많이 개선되었다. 이번 단편에서 작가는, 차분하게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대화체를 위주로 하여 갑작스러운 디스토피아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이해할 수 없는 대화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아, 이 인물들은 이러한 세상에서 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를 깨닫게 되는 희열을 선사한다. 배명훈, 조현, 곽재식이 그렇듯이, 이영도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지녔다. 그러므로 서사가 진행되면서, 점점 독자의 인식이 짙어지고 넓어지는 그 끝에는, 언제나 가슴 벅찬 감동이 있다.




젊은 시절에, 문학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순수해야 된다고 주장하던 형님이 있었다. 턱이 뾰족하고 목선이 가늘던 인상만이 기억이 남는다. 그가 말하는 '시대와 상관없는 순수성' 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이를테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매해 등단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 같은 것이 그가 말하는 문학의 순수함일까? 그러나 그 순수함을 노래하는 시인의 인식은, 사회가 제공했으며, 그 사회는 또한 시대의 일부일 터이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는 순수한 자의식만으로 살아가기 어렵고, 좋든 싫든 시대와 늘 결부되어 살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인류의 역사와 함께 사회적 동물로 인간을 규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이영도는, 아주 얇은 한 권의 단편을 통해, 현재 한국의 지친 세대들에게 한 마디 던지고 있다.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잃는 것을 가슴 아파하지 말라고. 두려움이란, 지금 강렬히 살고 싶은 삶이 있다는 증거이며, 상실에 대한 아픔은, 결국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미 이영도는 이미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언제나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아름다운 역사에 대해 찬탄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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