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아귀레 : 신의 분노, 독일, 1972.
영아산통 등으로 가끔 자지러지게 울 때를 제외하면, 아이는 이제 보통 밤 9~10시에 잠들어 서너 시간 정도는 충분히 아니 깨고 잠드는 듯 보였다. 육십일을 조금 넘긴 즈음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낮에는 주로 내가 돌보고, 밤에는 아내가 돌보기로 합의하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탓도 있지만, 나는 잠귀가 밝고 예민해서, 아이가 한번 울기 시작하면 낮밤에 상관없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갑자기 특근이 취소된 황금연휴, 아이는 평소 잠들던 10시를 넘겨서까지 귀가 찢어지도록 울면서 악을 썼는데, 아이를 겨우 달래어 재운 뒤로도, 나는 가슴이 바끈거려서 날이 밝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므로 낮밤에 상관없이 정말이지 뒤통수만 닿으면 바로 주무시는, 부러운 성정의 우리 아내께서, 아이고 여보야 안되겠습니더, 낮에는 내가 좀 잘테이께네, 밤에는 여보야가 무조건 주무이소, 안쓰러가 못 보겠네, 하셨던 터이다. 따라서 낮에는 주로 아이를 어르면서 고전 영화를 보는 시간이 생겼다. 아이가 잠드는 10시부터 나는 실내 자전거를 한 시간 타고, 기술 연습을 간단하게 하고, 독서와 외국어 공부를 좀 하다 잔다. 행동의 축을 만들어두면 이토록 하루가 든든하다.
반면 행동의 축은커녕, 삶의 축조차 없이 방만한 공란의 삶을 살았음에도 불굴의 배우로 찬탄받는 이가 있다. 예인(藝人)의 삶이란, 본디 그런 것이라고는 들었다. 세기의 여배우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클라우스 킨스키는 젊었을 적 절도, 강도, 폭행뿐 아니라 2차대전에는 탈영까지 한 시정잡배였으며, 영화배우 일을 시작한 뒤로도 출연료가 비싼 작품에 출연했고, 심지어 일본 포르노에까지 얼굴을 들이밀었으니, 가히 그 이력이 '어느 잡범의 수사보고서' 유용주 소설가 같을만하다. 그러나 사생활이 어찌 되었건, 부리부리한 눈으로 화면을 찢어발길듯한 그의 얼굴은 이미 관객을 빠져들게 한다. 감독이 연출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면, 그 펜이자 도구인 배우 역시 나름의 방법이 있을 터인데, 클라우스 킨스키는 앞서 말한 퉁방울 눈, 두툼한 입술, 게다가 기묘하게 허리를 비틀어 선 자세와, 가볍게 광대처럼 걷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관객을 압도한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걷지? 왜 저렇게 말하지? 라는 의문은 필요없다. 그가 클라우스 킨스키이기 때문이다.
아귀레 : 신의 분노 는 '나의 친애하는 적' 이라고까지 표현했던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과의 대표작이다. 한때 배우 정재영이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였고, 배우 하정우 또한 윤종빈 감독에게 그러했듯이, 클라우스 킨스키에게도 헤어조크 감독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큐 영화를 방불케할 정도로 사실적인 영상을 추구했던 헤어조크 감독의 고집과, 킨스키의 광기는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배가 산을 넘어가는 내용의 영화 위대한 피츠제랄드 에서도 두 사람은 시종일관 충돌했고, 아귀레 : 신의 분노 는 페루 정글에서 촬영했는데, 이 극악한 촬영 환경에 넌더리가 난 킨스키가 주변 배우들을 때리며 분노를 표출하자, 일일 배우로 모집된 원주민들은 감독에게 '저 남자, 죽일까?' 라고 물어봣다고 하고, 감독은 아예 총을 쏘아 주연배우를 위협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작품이고 뭐고 진작에 갈라섰어야 할텐데, 그래도 15년 동안이나 함께 작업했으니, 서로의 영감만큼은 잘 맞았던 모양이다. 킨스키 사후, 헤어조크 감독은 '나의 친애하는 적'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그에게 헌사하였다. (허지웅 선생의 동명 에세이도 있더라.)
아귀레 : 신의 분노 는 개신교를 앞세워 남미를 무력으로 굴종시키던 이른바 '대항해시대' 를 배경으로 한다. 에르난 꼬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즈텍을 정복하고,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잉카를 굴복시키던 그 시절, 피사로가 파견한 40인 선발대를 실질적으로 이끌던 아귀레는 반란을 기획한다. 귀족 출신이자 자신의 상관인 우르수아를 누명을 씌워 죽이고, 꼭두각시 황제를 세워 엘도라도 국을 만든 뒤 스뻬인으로부터 아예 독립할 생각을 한다. 한 손에 총, 한 손에 성경을 든 무뢰배들이 모험가랍시고 신대륙을 탐험하여 온갖 만행을 저지르던 때였으니 이런 생각 할법도 하다. 우리가 해적 영화에서 흔히 보던, 어항용 철제 투구에 긴 도끼창, 화승총을 장비하고 정글을 누비던 콩키스따도르들은 15세기~17세기를 주름잡으며, 그야말로 신대륙 전역에 악명을 떨쳤다. 이들은 어찌 보면 낭만적인 모험가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신의 말씀을 앞세워 황금과 권력을 강탈해가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깡패들이었다. 아귀레 역시 제2의 피사로, 또는 꼬르테스를 꿈꾸는 불한당에 불과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무색케 할 정도로, 숨막히는 정글 속에서 가마를 떠메고 가는 원주민 노예들과, 더위에도 갑옷을 절그럭거리며 진흙 늪을 건너는 병사들의 모습을 아주 현실적으로 오랫동안 보내준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적막하고 건조한 그 장면에서, 짐승처럼 사나운 눈을 번뜩이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어슬렁대는 클라우스 킨스키의 아귀레 만이 정말이지 '신의 분노' 와도 같은 생동감을 표출시킨다. 영화는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예고된 비극을 향해 서서히 스러져가지만, 아귀레만큼은 계속해서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관객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른바 배우가 영화를 '캐리한다' 라고 하는 것은 아마 이러한 작품을 말하지 싶다.
음습한 늪지, 그들을 노리는 원주민들의 게릴라식 공격, 부족한 식량과 식수에서 정복욕에 불타던 콩키스타도르들은 하나씩 죽어간다. 영화 말미에 그들은 열병에 걸려 나무 위의 배를 보고, 날아오는 화살이 꿈인지 생시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오로지 아귀레만이 특유의 분노를 표출하며, 막판에는 '딸과 결혼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새 왕국의 시조가 되겠다' 라는 정신나간 소리까지 한다. 이렇듯 어찌 보면 그저 한 정복자의 쇠락을 담은, 무미건조한 기록 영화라고 할법한 서사에도 오로지 클라우스 킨스키가 펄펄 살아 생동감을 넣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어느 때에도 징그럽게 눈을 부라리며 허리를 꺾고 잔인하게 미소짓는, 아귀레가 오래토록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