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꿈을 꾸었다.

by Aner병문

아내가 수영을 하고 돌아온 저녁이었다. 아내는 근육이 다 죽고 영법을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엊그제 나 혼자 소주에 치킨 먹고 돌아온 것이 미안하여 동생에게 받은 쿠폰으로 치킨과 음료수를 사서 아내와 나눠먹었다. 해장술 한 잔 더 하고 싶었으나 아내가 계속 죽을 사짜 4일째라고 정색하고 말리니 별 수 없었다. 수영하고 돌아온데다가 갑자기 포식을 했으니 아내는 칭얼대는 아이를 재우다 제가 먼저 잠들어버렸다. 아내는 그래도 어미라고 비몽사몽 간에 계속해서 분유를 타달라 하고, 잠과 싸우며 더 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안아서 재워달라 했다. 원래는 이유식을 만들기로 했던 밤이었다. 딸보다 본인이 더 잠에 겨워서 아내는 아이고 여보야 미안하네 내가 내일 다 할라카니까는 채소만 다 씻거서 쟁반에 놔주이소.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감자, 당근, 부추, 브로콜리를 씻고 깎아서 쟁반에 얹고, 그릇과 흔적을 치우고 정리했다. 아내가 새로 사준 무선 이어폰으로 영화나 음악을 좀 뒤적이다가 나 역시 빈 침대에서 잠들었다. 모처럼 한번도 안 깨고 아주 선명한 꿈을 꾸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마냥 외로운 반항아가 되어 여기저기 쫓기는 꿈이었다. 자기 전에 본 헝거게임이나 이소룡전기 등이 여러가지 뒤섞인듯도 했다. 그토록 선명했던 꿈이 일어나자마자 정말 꿈처럼 사라져서 나는 십분짜리 아침 영어방송을 틀어놓고 또 팔굽혀펴기 5쎗트와 스쿼트를 했다. 아내는 그새 기운차게 깨어 불려놓은 쌀을 짓이기고 있었다. 더욱 선명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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