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오랜만에 비싼 곳에서 머리를 깎았다.

by Aner병문

Ms. CJ에게 양해를 구하고 평소보다 좀 더 이르게, 그러나 정규 수업 시간 30분은 딱 맞게 영어 수업을 종료하고 아이의 돌 이후 예방접종을 맞히던 날이었다. 이제는 십 킬로가 넘어 16개월 넘는 이웃집 언니보다도 기골이 장대한 아이는 의사 선생님도 주삿바늘 부러질까 조바심치도록, 힘이 세고 눈치가 빨라서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입술을 삐죽이며 울었으며, 애비의 품에 폭 안겨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이를 겨우 아내에게 딸려 보내놓고 나서 비로소 늦은 오후 출근을 시작했는데 초봄 햇살에 마름모꼴로 덥수룩히 자란 머리칼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남들 보기엔 그깟 숱도 없는 머리칼 깎아봐야 천원이나 들겠나 싶겠으나 오히려 숱이 없어 더 지저분하게 티도 나는 법이다.




시간이 애매하여 회사 아래 으리번쩍한 미용실을 한 번 들렀더니 모델 같은 키 큰 여선생님들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가방부터 받아주었다. 머리 좀 짧게 다듬어주시고 경계 따라 바리깡만 대달랬을 뿐인데 대뜸 바리깡으로 뒤통수부터 쭉쭉 밀고 나선다. 놀라서 웜메, 삭발시켜부면 안되는디, 하자 걱정 마셔요, 숱없는 머리는 시원하게 치시는게 나아요, 투블럭으로 깎아드릴게요! 투블럭이요? 그게 멋이당가. 어머, 샵에 혹시 처음 오셔요? 나야 모 아저씨가 알겄소, 동네 미용실에서 짧게 쳐달래서 깎제. 아, 그러시구나, 저도 나이 먹으면 그런 사랑방 같은 동네 미용실 운영하는게 꿈여요. 나라고 모르겠나. 오랜만에 빠텐더 마냥 새살대는 낯선 외간 여자의 차가운 손가락도 부담스러워 사투리 쓰며 촌스럽게 굴지만, 나도 뒷골목 요령없이 굴러먹던 시절 늘 3밀리로 삭발하고, 스크래치 내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이제는 이런 공간이 귀찮아졌을 뿐이다. 여선생님은 시원하게 머리를 쳐주고, 머리를 감겨주고, 조물조물 두피 마사지도 해주고, 페퍼민트 오일이라나 싸아한 향 진동하는 기름 좀 뒷목에 발라주고는, 문 밖까지 나와 배웅해주면서 2만원(!!!!!)을 달라했다. 이만원이요?? 하자마자 문에 걸려 있는 "모든 가격에는 봉사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니...아 예... 십년전 그 시절하고는 또 달라졌구나, 그나마 나 머리 말려줄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드라이기 두 개 써줘서 머리 숱 많은 기분 들었기에 그냥 잠자코 돈 내고 나왔다. 다음에는 꼭 도장 앞 중국 미용실에서 깎아야지ㅜㅜ 역시 대륙의 기술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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