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아라카와 히로무, 강철의 연금술사, 학산문화사, 2011.
그러므로 씨네21에서는, 단 한 마디로 이 만화를 평했다. '가장 최고의 소년만화를 꼽으라면 여러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소년만화를 꼽으라면 오직 이 작품뿐이다.'
작품을 쓴 작가를 제외하고 작품만으로 평가를 하는 평론의 시점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런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뒤르껨이 자살론에서 명시하듯,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조차도 실은 사회의 영향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어찌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떨어져나와 오롯이 절대적인 개인은 없을 터이다. 작가는 작품에 영향을 주고, 작가는 다시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나는 그녀의 대표작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아라카와 히로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아라카와 히로무, 본명 아라카와 히로미는 북해도 토카치 지방의 농가에서 자랐고, 학교 또한 농고를 나왔다. 토카치 지방은 엄혹한 기후와 척박한 토지 환경이 어루어져 일본 근대 초기에 말 그대로 '돼지와 함께 먹고 자며' 이 곳을 개간했던 사람들의 기록이 영웅처럼 남아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농업으로 단련된 그녀의 청춘은 강철의 연금술사 후속의 '백성귀족' (일본어에서 백성, 은 농민의 뜻에 가깝다고 한다.) 에 잘 나타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라카와 히로미는 부모님과 함께 농장을 경영하며 농기계를 다루고, 가축들을 키우고, 작물을 재배하는 등 이미 노동에 능숙했으며, 학교 생활 또한 필수적인 교양과 가라테 이외에는 역시 농업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러한 가정 환경 때문에 처음에는 수의사를 꿈꾸었으나, 학비 문제로 수의대에 진학하지는 못하고, 대신 다른 꿈이던 만화가를 이루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그림을 그리고 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하는데, 심지어 바쁜 날에는 잠을 안 자는 날도 며칠씩 이어졌다니 아무리 젊은 날이라고 해도 대단하다. 훗날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위해 도쿄로 상경한 그녀는, 새벽녘 신문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마치 축사의 소울음 소리 같아 소를 돌보려고 일어났다가, 아, 여긴 도시지, 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잠들었다고 하는데, 도시에 와서 더이상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고 말할 정도로 본질적으로 노동에 물들어 있었는듯하다. 그러므로 그녀의 필명이 강함을 뜻하는 '히로무(强)' 인 이유도 납득이 간다.
이렇듯 각고의 고생 끝에 태어난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는 물리적 노동에 대한 찬사와 더불어서 세상의 절대적인 법칙인 '등가교환' 이 깊게 강조된다. 연금술사들은 연성진을 통해 아무거나 재깍재깍 만들어내는 요술쟁이인듯 하지만, 실제로는 과학자에 가깝다. 원료가 되는 물질의 속성에 벗어나는 물질을 재창조할 수 없으며, 그 분량 이상으로 많이 만들어낼 수도 없다. 즉, 피 속의 철분을 통해 쇠를 만들거나, 인간 몸 속의 탄소 성분으로 탄화 혹은 경화는 가능하지만, 전혀 다른 물질은 만들 수 없으며, 반드시 그 요소의 양만큼만 창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물리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주인공인 에드워드 엘릭과 알폰스 엘릭 형제가 따라가는 큰 줄거리의 서사는,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연금술사 최대의 금기인 인체연성- 즉 사람을 만들어내려다가 실패하고, 그 대가로 형은 한쪽 팔과 다리를 , 동생은 아예 몸을 통째로 잃어버리며, 이 동생의 혼이라도 붙잡아두기 위해, 형 에드워드는 집에 굴러다니던 갑옷에 동생의 혼을 억지로 이식하는, 끔찍한 과거로부터 출발한다.
한쪽 팔과 다리를 잃어 강철의 의수를 달고 다니는 형과 아예 몸을 잃어버려 갑옷을 몸 대신 쓰는 동생은, 연금술로 부흥을 이룩한 군사국가 아메스트리스를 횡행하며 자신들의 몸을 되찾고자 한다. 이 큰 서사의 배경이 되는 군사국가 아메스트리스는 그 복색에도 보듯이 급작스러운 산업화로 강국의 반열에 들던 20세기 독일과 매우 유사하다. 아메스트리스는 동쪽으로는 연금술과 유사한 갈래지만 의료적 면모가 강조된 연단술의 나라 동방국가 싱,또한 은근히 이슈발 내란을 지원하던 남부의 강국 아에르고, 북쪽의 국경 지대 브릭스를 위협하던 드라크마 등에도 전혀 밀리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그 배경에는 이른바 이슈발 내란 평정을 통한 민족주의 강조와 총통정치에 의한 군사정부 통치 등이 있었다. 특히 극 중의 가공 사건인 이슈발 내전은, 강철의 연금술사의 여러 사상적 배경 중에서도 가장 참혹하면서도 강렬한 무게를 갖고 있는데, 현실에서도 실제로 일어난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비롯한 홀로코스트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어찌 보면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한 연금술사 형제의 모험이라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할, 소년만화적 서사가, 강렬한 정치적 배경과 결합되면서 여러가지 철학적 주제를 잉태한다. 내가 여지껏 읽으며 찬탄해왔고, 앞으로도 찬탄할 위대한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아라카와 히로무 역시 강철의 연금술사 내내 '나약한데도 끝내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끊임없이 드러내는데, 이 것은 결국 이상을 향해 끝까지 꺾이지 않고 결말까지 당도하는 주인공 형제에게 독자들이 깊이 이입하게 한다. 환상소설의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메스트리스의 연금술사 들은 사실상 현대의 엘리뜨 계급으로서 대부분 국가의 도구가 되어 전쟁에 끌려나가거나, 사상적 재생산의 수단이 되고, 극히 일부만이 민중들과 함께 은거하는 사상가가 되는데, 이러한 갈등들은 인간인 연금술사들과 완벽한 진리 및 욕망을 추구하는 호문클루스 집단으로 대비되며,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 고민에 품격 있게 안착하도록 돕는다. 결국 연금술사들은 이미 1권에서 인간을 이루는 물질 성분에 대한 완벽한 파악을 끝냈고, 1+1은 반드시 2라는 물리적 법칙을 신봉하면서 살지만, 그들 스스로도 법칙만으로는 결코 인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간다.
강철의 연금술사 또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1년에 한두번씩은 반드시 읽는다. 걸작은 언제나 다시 읽어도 새롭게 읽힌다. 팔자에도 없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미생을 반복해 읽어가며 이해의 폭이 넓어갈수록, 내가 비로소 직장인의 언어와 서사를 이해하는구나 느꼈듯이, 강철의 연금술사를 되짚어 읽어가며 그 방대한 서사와 주제가 이해될수록 비로소 내가 내 삶의 한 축을 이해하고 있구나 느끼게 된다. 동시에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얼마나 끈질기고 고된 일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 작품을 연재하면서 아라카와 히로무는 점프를 비롯한 여러 거대 만화 잡지의 초대를 받았으나, 모두 거부하고 자신의 연재 일정에 맞출 수 있는 중소 잡지에서 끝내 결말까지 완간했다고 한다. 단순히 의리뿐만이 아니라, 편집부의 입김을 물리치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기승전결을 마무리짓고 싶은, 작가의 본능적인 욕망이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번, 이미 오래전 읽는 자로 만족하는 것에 차라리 안도감을 느낀다. 글 쓰고 훈련하고 삶까지 챙기는 거, 그거 진짜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강철의 연금술사도 27권 다되어서야 겨우 해낸 일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