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그야말로 대 유튜브 시대.

by Aner병문

동생에게 약정 기가 남은 전화기를 물려받아가며 스마트폰을 써 왔다. 본디 기계에 큰 관심이 없는 탓이었다. 아내도 어지간히 기계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긴 했지만, 5년 가까이 쓴 내 노트3에는 정말이지 혀를 내둘렀다. 결혼하고 한 달 만에 바꾼 전화기가, 한화 팬과 더불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결혼 상대자 삼으라는, LG폰의 당시 역작 V40. 삼성과 애플이 양분하는 판세에서 그나마 삼성이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휘어잡는다지만, 어차피 기능을 많이 쓰지 않는 나로서는, 가볍고 튼튼한데다, 무엇보다 노트3처럼 2시간마다 한번씩 충전하지 않아도 되어서 정말 편했다(?!) 휴대전화를 새로 사면서 내게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그 중 하나는 하루에 십분에서 이십분 정도 게임하는 시간이 생겼고, 또 하나는 책 못지 않게 유튜브를 엄청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휴대전화 사고 처음 한 석 달 동안은 정신없이 유튜브만 본 듯 하다. 그 동안 나는 동생의 휴대전화를 물려받아썼고, 그나마 요금제도 아주 쌌다. 난생 처음 무제한 요금제가 열어준 유튜브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북촌과 인사동을 넘나들던 시절, 우연찮게 뵙게 된 박찬일 쉐프는 유튜브만 잘 봐도 요리 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라고 하셨었는데, 막상 유튜브를 보다보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유튜브는 거대한 서재였다. 장미의 이름 에서 윌리엄 수도사가 비밀 서재를 찾았을 때의 마음이 이랬을까? 유튜브에는 정말이지 소소한 해학부터 학문의 간단한 기초, 심지어 효율적인 무공의 훈련 비법까지 정말이지 없는게 없었다. 특히 틀의 연무 순서를 가끔 잊어버렸을 때, 유튜브에 ITF pattern만 두드려도 나오니 이 어찌 아니 좋을손가. 게다가 간단한 어학 공부로도 손색이 없었다. (이렇게만 쓰니 굉장히 휴대전화를 모범적으로 사용하는 듯 하다.) 곽 선생은, 지금 학생들이 영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교과서의 글을 읽거나 이해하기 굉장히 힘들어 한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 나도 중학교 논술반을 지도했을 때, 천승세의 포대령 을 읽어오라 숙제를 내주었더니, 학생들이 역시 읽기 힘들어했었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유튜브나 휴대전화 게임에 대한 열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맞지 아니한 내 고루한 취향 탓도 있겠지만, 유튜브나 휴대전화 게임에는 '깊은 맛' 이 없었다. 정제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들이 '지식' 인 것처럼 굴러다녔다. 촘스키나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하듯, 언어는 인간의 생지적 기능이고, 이야기에 대한 욕망은 문자가 생성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역사다. 그러므로 듣고 웃어넘길만한 희화적인 영상이야 크게 문제되지 아니하였다. 유튜브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던 것은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이른바 '보람튜브 와 '윾튜브'' 처럼 요즘 젊은이들이 연예인을 욕망하듯 돈을 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수단처럼 강제되는 양상이 버거웠고(별 것 아닌 나에게조차 유튜브를 해보라는 권유가 꽤 들어왔다.), 나머지 하나는 유튜브에서 검증되지 않는 발언자들- 역사와 정치에 있어서 정말이지 깊은 공부를 하지도 않은 이들이 대단한 선도자들인 양 인기몰이하며 사람들을 가르치려드는 모습이 역겨워서였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빈 깡통이 시끄러운 법이다. 스스로 희생한다고 말하는 이 치고 희생하는 이를 보지 못했고, 이 것만이 진실이라고 외치는 이들 중에 다른 이를 존중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역사에 대한 가치관을 이야기할 수는 있으나 무엇이 정사인지는 규정하며, 정치적 견해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것이 절대적 정의인지 논의하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몇 권의 책을 대략 읽고, 그 것을 지껄이는 것만으로도 무대에 올라서서 스스로에게 도취되어버린 이들이 마치 대단한 역사학자인 것처럼, 훌륭한 민중의 지도자인 것처럼 나서는 일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이제 조용히 책을 뒤적이며 오래토록 사색하고, 진중하게 말을 고르는 태도는 '꼰대스러움' 처럼 박제되어 사라질 모양이다.




이처럼 갈수록 말을 강하게 하고, 특색있게 나서는 이들이 주목받으며 손쉽게 돈과 인기를 얻는 듯 보이다보니, 아예 사기꾼들까지 등장했다. 몇몇 조폭들이 마치 자기 고백하듯 유튜브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참말 거슬렸다. 나는 오래 전부터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함부로 폭력 쓰는 이를 크게 존중하지 않았다. 물론 무공을 익힌 자와 싸움꾼이 맞붙었을 때, 무공을 익힌 자가 언제나 이기리란 보장은 없다. 천성적으로 강한 싸움꾼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땀흘려 얻지 않은 힘을, 그들이 무슨 수로 타인에게 전수해줄 수 있을 것이며, 훈련을 통해 얻는 품격과 고매한 정신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유튜브에 나와 반성은 아니 하고 오히려 왕년에 어디를 먹었다는 둥, 어디를 찔러야 사람이 바로 죽는다는 둥, 센 척하는 꼴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래봐야 그들 역시 그러한 세계에서조차 비루하게 버림받아 타인의 관심을 돈으로 바꾸고자 구걸하는 중이 아닌가. 차라리 그 유명한 신데렐라 맨처럼 모자라도 벗어 구걸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터이다. 잠시 덧붙이자면, 1930년대 경제 대공황기에 활동했던 제임스 브래독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에 끔찍한 애처가이며 훌륭한 챔피언이었지만, 그 역시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투자에 실패하는 등, 화려한 왕좌에서 내려와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막노동까지 불사한다. 얼마나 그 삶이 비참했던지 잘 나가던 챔피언 시절 자신을 후원해주던 부자들의 모임에 찾아가 모자를 벗으며, '제가 정말이지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내게는 며칠째 우유에 물을 타서 연명하는 아이들과 아내가 있습니다.' 도움까지 요청하였으니 그 참담함이 오죽했을까. 제임스 브래독은 가족들을 위해 막노동을 하느라 거의 연습을 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팔힘이 무척 세져서 만년에 복귀를 했을 때는 오히려 더욱 박진감 넘치는 KO를 선사했고, 이 훌륭한 가장의 재기에 사람들은 신데렐라 맨 이라는 별칭으로 아낌없이 칭송하였다. 한신의 과하지욕(過下之辱)의 고사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기도 하다.




말이 잠깐 샜지만 많은 이들이 모인만큼 유튜브는 더럽고 혼탁해졌다. 남녀는 편을 갈라 싸우고, 다시 그 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또 돈을 벌며, 인기 있는 자들의 뒤를 뒤져 서로를 물어뜯느라 바쁘다. 그 틈에 나온 부끄러운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미남 약사는 성병을 옮기고, 선천적인 장애가 있는 줄 알았던 이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며, 동물을 사랑하는 줄 알았던 이는 또다시 학대가 폭로되었다. 서로 자기가 아는 것만이 맞다고 우기고, 상대는 조금도 배려하거나 존중치 않으면서 오로지 나만 사랑해달라고 떼를 쓰니, 남녀를 가리지 않고 벗으면 몰려들고, 또 과히 벗으면 몰매를 준다. 그러므로 나는 더이상 유튜브에 대한 과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천하를 주름잡을 것 같던 싸이월드는 무너지고, 도토리도 져버렸으니, 유튜브도 또다시 어떤 미디어의 물결에 휩쓸려 사라질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한 번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믿는다. 목판과 활자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하고 귀한 것들을 단단한 것에 힘써 새겨 전수해왔다. 인류의 멸망이 다가올 때 손쉽게 불러와 내 머리 속에 든 양 편집하고 저장하는 모든 것들은, 전기가 끊기며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리지만, 말린 양가죽과 오래된 돌에 새긴 모든 글씨들은 몇천년이 가도 크게 닳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는, 쉽사리 내뱉는 말과 글보다, 으스대며 후려치는 주먹질보다, 미련하다 욕해도 손이 휘고 혀가 굳도록 쓰고 읽어 남는 것들과, 영원히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 단련하는 손발에 대해 경탄을 보내고 싶다. 그러한 자존심이, 진시황의 불 같은 서슬에도 끝내 귀한 가르침들을 지켜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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