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행동의 축, 에 대하여.

by Aner병문

특근이 취소되었다. 결혼 전부터 어머니는 남편이고 애비가 별 것 있냐, 그냥 꿍꿍 벌어서 무조건 집에다 갖다줘야 되는 것이여, 고 놈의 술도 좀 끊고, 라고 말씀하셨었다. 하기사 아내가 육아휴직하여 외벌이인데, 이제 겨우 육십일 지난 아이가 먹고 싸는 분유며 기저귀가 벌써부터 산더미인지라 어머니 말씀 틀린 것 없지 하고 특근을 신청해놓았지만, 웬걸, 천리마마트 정복동 사장 '어린이날에 가장 필요한건 아버지 아닐까요?' 말하듯, 5월 4일 하루 제외하고 닷새를 꼬박 쉬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 길어졌으니 운동도 좀 하고 미뤄둔 책이랑 영어/일어 공부도 박차를 가하자 싶었지만, 역시나 또 웬걸, 일단 첫 날은 모처럼 휴일에 아내와 번갈아 길게 잠 좀 잤다 치고(오후 여덟시쯤 '잠깐' 누웠는데, 눈 떠보니 이미 한낮이더라.), 둘째 날부터는 역시나 애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는 그나마 밤잠이 평균 다섯시간 정도로 길어지긴 했지만, 대신 낮에는 그만큼 더 잠을 자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있는 날에는 하루종일 안고 놀고 운동도 시키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지내지만, 내가 출근하고 없는 평일 낮에 홀로 집에 있는 아내의 고충을 알만했다. 아내는 내가 돌아오면, 손을 씻자마자 일단 아이를 넘겨주고 무조건 물부터 몇 잔씩 들이킨다.



그러므로 기생충, 에서 물난리에 쫄딱 젖은 송강호가 말하듯 계획이란 아무리 공들여도 때로는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연휴 동안 나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훈련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한채, 그나마 이틀 동안 실내 자전거 2시간 탄 것이 전부였다. 아이를 안고 몇 시간씩 돌아다니는 일 또한 운동이라고 치면 칠 수 있겠다. 그래도 아이를 재우면서 고전 영화 몇 편을, 또 아이가 깨길 기다리면서 만화 한 질 정도는 후루룩 읽을 수 있었다.



단 하루, 아이가 영아 산통으로 늘 잠드는 시간에 2시간 정도 심하게 울었던 날을 제외하고는, 평온한 나날이었다. 아이는 어느 틈에 머리통이 딱딱히 굳어 야물고, 볼살이 두툼해졌으며, 몸에서 젖냄새도 훨씬 더 진하게 났다. 뺨은 늘 부드러워서 입술을 갖다대고만 싶고, 머리칼은 보들보들 간지럽고, 이 하나 없이 깨끗한 입 안은 분유와 모유로 하얗게 물들어서, 하품할때마다 새하얀 향기가 났다. 특히 요즘에는 제법 애비에미 눈이 마주칠 때 은근히 찡긋 웃기도 하고, 아직 언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와워워웅어우어! 외치면서 바동바동 뜻한 바를 표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밥을 먹고나면 이제는 제법 불편한지, 일어나 앉고 싶다고 온 몸을 까동댄다. 그러면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아이의 양 겨드랑이를 넓게 붙잡고, 다리를 배와 가슴에 살짝 올려서 마치 제 힘으로 선 것인양 세워주는데, 그러면 아이는 신이 나서 꺄흐흥 제 애비를 자꾸만 딛고 올라서려는 것이다. 속으로, 아이고 이것아, 어차피 너가 십년 이십년이면 이 애비보다 훨씬 태권도도 잘하고, 공부도 더 뛰어나지 않겠냐, 싶을 때에 이미 아내는 황홀히 넋이 나가서, 아이고, 세상에, 우짜노, 저거 첨에 나띨때는(낳았을 때는), 고마 부스지지 않을까 걱정했디만, 언제 이리 야무지게 컸노, 아고 우짜노, 우짜노, 하면서 아이를 쓰다듬기 바빴다. 과연 아이는, 육십일만에 제법 몸이 만들어져서 이제 운동하라고 유아 체육관(아는 분들은 안다! 필수 용품! ㅋㅋ) 에 내려놓으면, 어느새 세진 팔다리를 자랑이라도 하듯 통탕통탕 딸랑이 장난감이며 발 아래의 건반들을 치고 누르기 바빠서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밥 안 먹은 듯 배가 부르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더 오죽했을까. 내가 아이를 안고 어를 때, 옆에서 생선을 굽고 계시던 어머니는, 너가 부모한테는 매정해도 남헌티 잘하듯 니 새끼헌티는 잘할 꺼이다, 인쟈 부모 됐응게 너도 우리 맘 알고 헤아려라이, 반농으로 건네셨다. 많이 아물었다 한들 지난 이십년 가까운 세월이 쉽게 가까워지긴 어려울 터이다. 그러므로 집 안의 아이가 얼마나 위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내와 나는 절실하게 알고 있다. 어머니는 어린이날에 이미 커다란 요릿집을 예약해놓으셨고, 두툼한 봉투는 둘째치더라도, 손수 글씨와 그림을 그려서 아이에게 코팅해서 훗날 보여주라 당부하셨다. 내 친구들이 놀라듯, 나는 이토록 부드럽고 자애로운 어머니를 본 적이 드물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아들딸은 (부모님께) 뺨을 맞으며 크지만, 손자손녀는 (조부모의) 뺨을 치면서 큰다고 그러셨나보다. 아이가 벙싯벙싯 웃는 것만으로, 말이라고 하기엔 한참 모자란 소리를 내뱉을 때에도, 마알간 볼을 부풀리며 잠들 때에도, 어머니 아버지는 그저 좋으셔서 어쩔 줄을 모르시었다. 삼십삼년만이다, 이 집에 애기 울음은 삼십삼년만이여. 내 여동생이 88년 용띠, 나와 세 살 터울이므로 올해로 서른셋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늘 잠들어야할 시간에 갑자기 울어젖힐때 아내와 나는 당혹하였다. 그나마 간호사였던 아내가 담담히 아이고 이랄 수 있십니더, 영아 산통은 원래 원인도 모른다 안하는강, 했지만 아내도 다소 놀란 듯은 해보였다. 육아 육십일차, 이제 제법 아이의 울음소리만으로도 지금은 배가 고픈지, 혹은 졸린지, 아니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지 정도는 능히 안다고 믿었지만, 아이가 아플 때의 울음소리는 내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고, 듣고 싶지도 아니한 것이었다. 울음소리는 높고 날카로워, 이미 고막을 찢고 가슴까지 내려꽂히는 듯한데, 그 속심은 또 어찌나 옹골찬지 울림이 쩌렁쩌렁하여 여운이 오래토록 남았다. 이제 겨우 5.1kg. 두 달 새 2배 정도로 몸이 불었다지만, 아직도 작은 것이 어찌나 아프면 이리 우나 싶어서 아내도 나도 잠 못 이루고 오랫동안 안고 서성이다 겨우 재웠던 날이었다.



어깨는 여전히 아프다. 왼팔을 들어올리거나 살짝 비틀기만 해도 찢어질 듯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안아주고 흔들어야 아이는 하품을 하다 잠들어버리므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실은 나도 아이의 말랑한 귓가나 혹은 향기로 뜨뜻한 뒤통수에 얼굴을 묻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아서, 아내가 어깨 아프다 걱정하여도 자꾸만 아이를 안는다. 덕분에 내가 항상 지켜오던 행동의 축은, 자주 휘어지고 끊어지고 무너지지만, 항상 아이가 소중하다. 그 것이 애비인가보다. 어제는 너무 지쳐서 일기도 제대로 못 쓰고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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