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아이가 멀미를 시작했다.

by Aner병문

식사 중이시거나 그 전후이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하얗고 뜨끈한 토사물이 내 검은 바지 다리 하나를 몽땅 뒤덮을 때 나도 아내도 그제서야 아이가 멀미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이제는 분유 대신 우유를 살짝 데워 마시고, 이유식 대신 국에 말아 으깬 밥이며 잘게 찢은 고기, 튀밥, 심심하게 간도 안한 과자를 잘도 먹는다며 좋아하던 요즘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아비어미의 보건소에다가 제 장난감을 빌리러 가고 대학병원 검진까지 가느라 바빴던 하루, 차에서 얼른 재울 욕심에 우유를 조금 과히 먹였더니 아이는 그때만 해도 곤하게 잘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조금 토하는가 싶더니 그예 왈칵 쏟아내었다. 아침에 야무지게 먹은 황태국밥이며 우유 등이 다 섞여 시트, 발판, 옷, 가방에 사방으로 엉망이었다.




집에 오는 길도 아니고 하필 또 보안이 엄중삼중인 병원 행에 이러니 막막하였으나 아내 말마따나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지, 어머니가 본가에 조금 남은 내 옷을 마저 찾아 빨아놓았다며 건네주셨던 옷이 아직 차에 놔둔 상태로 있었고 나는 늘 만약을 대비해 책 한 권, 속옷과 수건을 챙긴 상태라 속옷과 바지를 모두 갈아입을 수 있었다. 이러니 부부끼리 그냥 웃고 말 도리밖에 없었다. 차에서 연달아 토한데다 병원에서 흰 가운 입으신 선생님만 보면 기함을 하며 용을 쓰는 아이는, 돌아오는 길에는 평소의 기운 하나도 없이 내게 어깨를 기대고 말 한 마디 없이 조용히 있다가 집에 가서 한숨 푹 자고 나서야 본래의 미소와 활기를 찾았다, 야, 이 녀석아, 이 애비는 니가 저질러놓은거 빨고 씻고 닦고 꼬박 두 시간이었시야, 하며 장난으로 눈을 부릅뜨자 장모님께서는 아이고 야야, 부모가 뭐 그냥 되는 줄 아나, 어무찌 어무찌(경상도에서 아이가 무서울까봐 어르는 방언이란다..처음 들음) 하며 내게 눈을 흘기셨다. 그래도 고생했던걸 알아주셔서 술 한 병 하는 것 허락해주셨다...ㅋㅋㅋㅋ어제 비도 왔잖아?ㅋㅋ 나 체성분, 콜레스테롤 다 정상이었다구요ㅋㅋㅋㅋ 아내는 쯩 대신 정으로 산다는 명언을 남기셨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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