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한준희, 뺑반, 2019. 한국.
아이를 어르면서 별 생각없이 봤는데, 너무 별 생각없이 봐서 그런가, 그저 나쁘지만도 않은 영화였다. 하도 시끄러운 배기음과 음악 소리 등이 많아서, 생각할 겨를조차 안 줬는지 모르겠다. '명징' 이동진 평론가를 비롯하여 부기영화, 거의없다 등, 이미 재야의 고수들이 쉼없이 혹평한 영화인지라 굳이 몇 보지도 않을 잡문에서까지 이 영화를 까는 일은 피하고 싶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못생긴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다는' 류준열과 영원한 납득이 조정석의 악역 연기만으로도 점수 절반은 주고 싶었다.
일본어 공부를 떠듬떠듬 하다보니 얼굴 안(顔)자를 '가오' 라고 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 이 영화는 오로지 가오 하나 살리려고 개연성이고 설정이고 서사고 몽땅 다 쓰레기통에 쓸어넣었다. 솔직히 조정석 배우의 악역 연기는 훌륭했다. 가난 때문에 말까지 더듬게 된 F1 레이서라니, 그야말로 한국형 흙수저 악역 아닌가. 게다가, 그래 좋다, 사실 폭주족에 마약 운반까지 하던 소년이 어찌 경찰이 되며, 또한 그 소년이 제아무리 천재라 한들 어찌 중력의 7배나 달하는 속도를 버텨내며 최신식 고속주행기계를 다루는 F1 선수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거 상관없는 거다. 그렇게 치자면 바키는 뭐 얼마나 합리적이라서 우리가 봤던가. 류준열이 열연하는 서민재-김민재는 전직 폭주족 출신 경찰이자 본능적인 운전 감각을 타고난 천재라는 설정에 이미 우리가 익숙히 접한, 천재형 만화 주인공을 생각하면 그만이다. 늘 뺑소니 사건이나 쫓아다니던 꺼벙한 경찰이, 갑자기 그 작은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목소리를 쫘악 깔고 '넌 나한테 안돼.' 하는데, 그게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해도, 솔직히 나는 그 장면 좋았다. 사내 대장부가 저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영화의 설정, 영상 배치도 그렇거니와 특히 마지막 자동차 주행씬 시작 전에, 조정석이 자신의 머신 앞에서 등을 똭 내보이고, 또 빠알간 조명으로 류준열을 비춰주는 이러한 연출로 볼 때, 이 영화는 정말 아쉬운 점이 많다. 애초에 인물, 서사, 설정이 모두 개연성없게 엉망으로 짜맞춰졌는데, 또 그 나름대로의 일관된 박자는 있는지라, 차라리 아예 박광현 감독의 '조작된 도시' 처럼, 어느 정도 만화적 연출을 관객과 합의할 수 있게 전개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우리 아내는 조작된 도시 정말 재미없었다고 하는데, 나는 무척 재미있게 봤고, 감독이 이렇게까지 무리한 연출을 하면서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말도 좀 알 것 같았다.
영화 마지막에 늘 그렇듯 쿠키 영상이 나온다. 후속작이 나올 수 있다면, 훨씬 더 짜임새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냥 사장되기에는, 아까운 설정들이 좀 많아서 아쉬웠다. 요즘에는 별 생각없이 호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참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