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밤새도록 비가 왔다.
새벽녘 또 깨었다. 아내의 빈 자리는 이미 식어 하전하였다. 요즘 아이는 새벽 두세시에 꼭 한번씩 오옴마ㅡ를 부르며 깨므로 아내는 내 옆에서 나를 품고 자다가도 아이가 엄마를 부를라 치면 내려가 재우기 일쑤였다. 아이의 명치께를 손바닥으로 덮어 따뜻하게 눌러주면 아이는 그것도 아비어미의 온기라고 금방 안심하여 잠들었다. 둥글고 잡티 없는 아이의 얼굴에는 과연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 나는 아이가 앞으로 어찌 크고 어떤 상을 지닐지 늘 궁금하였다. 궁금함이 개운하게 풀리도록 내가 더 오래 살기 바랐다. 비가 오는 새벽이면 나는 온 관절이 눌리고 흩어지고 깨어지는 듯하여 자꾸 깬다. 아내는 아파서, 외로워서, 습관적으로 혼자 마시는 술을 엄히 금하였고, 커피의 양을 줄이고, 억지로 자도록 처방하였다. 운동만큼은 줄일 수 없어 어찌 몸을 버티고 있다. 가끔 술을 마시지 않아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손마디가 뜻없이 떨릴 때 나는 작고 소심한 사내라 와락 겁이 난다. 새로 산 책의 운동법은 근육보다도 신경과 힘줄을 단련시켜 실제로 힘을 세게 하는 고대의 단련법을 개량한 것이라 들었다. 늘 하는데까지 해볼 도리밖에 없다. 공부를 하다 포기했듯, 흰 여백에 문장을 채우다 절망했듯, 나는 부족함으로 스스로를 채워나가던 인간이었다. 미처 접어 거두지 못한 빨랫대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흔들려 깨어질까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