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김훈, 화장, 2004년도 이상문학상 대상.

by Aner병문

김훈을 오랫동안 읽지 아니했다. 일부러 읽지 아니했으므로, 피했다 라고 표현하기가 더 옳다. 당시 나는 병원에 오랫동안 있었다. 군대에서 다쳤던 발목을 덜렁거리며 방치해두다가 주짓수를 하며 점점 불편과 고통이 가중되었는데, 동네 병원에서는 1년 동안 엑스레이 사진만 보여주며 아무 이상이 없다고 우겨대었다. 검은 배경으로 도드라진 하얀 뼈에서 내 불편과 고통은 과연 보이지 않았다. 한 해를 고생한 뒤에야 나는 마지못해 동네 병원 의사가 써준 검진서를 들고 큰 병원으로 옮겼고, MRI 촬영 후 담당 의사 선생님의 호들갑과 함께 바로 입원하게 되었다. 왜 이제서야 오셨어요, 라는 말을 드라마나 소설 밖에서 정말 들을 줄은 몰랐다. 발목 뼈를 잡아주는 인대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완전히 끊어져서 닳아 없어졌구요, 하나도 반나마 끊어져서 발목 뼈가 내려와서 조직이 괴사되고 있네요, 당장 수술해야 해요. 청운의 꿈을 품었던 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주짓수 도장도 더이상 나가지 못하게 된 시절, 나는 썩은 인대와 조직을 긁어내고, 발목 뼈에 못을 박아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지금도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면, 뼈 위로 희미한 못 자국이 보인다. 생각보다 길어진 병원 생활에서, 나는 이틀에 한번씩 건너오는 너와 벗하고, 책과 미국 드라마만 보며 시간을 보내었다.



병원 바깥의 광고는 가끔 김훈 선생이 출연했다. 굵은 주름에 부리부리한 눈, 고집세어보이는 코가 인상 깊었다. 예나 지금이나 책이건 음식이건, '핫'하다며 지금 봐야 한다는 강권은 오히려 더욱 그 것을 피하도록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굳이 여러 사람에게 휩싸이는 불편을 피하고 싶어서일까? 극장 개봉 시기를 놓쳐서는 안되는 영화 같은 매체를 제외한다면, 나는 언제나 무엇이든 열기가 식은 다음에 손을 대보곤 했었다. 길고 지루한 병원 생활, 어머니 친구 분이 가져오신 남한산성 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나는 김훈 선생과 몇 년은 더 늦게 읽었을 터이다. 그 때는 낡을 대로 낡은 이진경 선생의 책과, 그리고 배명훈의 첫 장편소설에 정신없이 빠져 있었다.



남한산성에 대해서 언제고 다시 이야기할 때가 있을 터이다. 제아무리 별 같고 꽃 같은 너가 아내 혹은 연인으로 오해받을만큼 자주 찾아오고, 다른 친구들도 가끔 술과 반찬을 몰래 싸와 어울려주며, 비록 느릴망정 무료 와이파이로 건너오는 책과 영화와 드라마가 풍성하다 한들, 바깥 세상이 그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갇혀 있음에 대해 단려하게 써내려간 김훈 선생의 문장은 나를 사로잡았다. 짧은 문장들이 나무 껍질처럼 박혀 매서웠으나, 그 문장이 엮어내는 서사는 장대한 강처럼 흘렀다. 남한산성을 시작으로 나는 그의 모든 글을 찾아 읽었다. 어떤 책은 사두고 생각날때마다 꺼내 읽었다. 단 하나의 책을 고르라 한다면, 오로지 미학적인 부분에서, 나는 현의 노래를 꼽고 싶다. 이성재 배우 주연으로 영화를 촬영했다고는 들었는데, 몇 개의 사진 말고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김훈은 새로운 서사를 짜들어가는 현대적 배경의 소설보다, 이미 있던 사실을 자신의 필체대로 다시 풀어헤쳐 맞추는 역사 소설에 강점을 두는 작가다. 역사 소설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 중 비교적 대중의 괄목을 받은 글은, 언니의 폐경, 과 영화화된 화장, 정도다. 언니의 폐경 은 인물이 적은만큼 보기 드물게 소설의 매 장면마다 작가가 아주 가까이 접근하여 세밀한 묘사를 뽐내었지만, 여성의 생리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남성 작가로서의 미비한 점에 대해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화장 역시 그와 같은 맥락으로서 역시 남성적 욕망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김훈은 사실, 본디가 '수컷' 으로 늙은 사내이긴 하다. 이문열에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국지'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거나 강요할 수 없듯이, 김훈의 영역은 그로서 족하고, 또한 그로서 끝난 것이다.



작품 화장, 에서 화장은 화장(化裝)과 동시에 화장(火葬)으로 기능한다. 주인공은 이름 있는 화장품 회사의 중역으로 늙어온 사내로서, 암으로 오랫동안 고생해온 아내를 곧 화장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얄궂게도 그는 아내의 임종을 겪으며, 그가 내심 눈여겨왔던 젊은 여성 직원 추은주에 대한 연모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무적으로 보일만큼 꼼꼼하게 아내의 임종과 화장을 처리하는 그의 모습은, 독백형의 문장으로 건조하지만, 추은주를 떠올리는 대목에서는 정중하고 아련한 존댓말로 생동감이 넘쳐 물기까지 어릿하게 느껴질 정도다. 화장품이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여성의 본능적이고 내밀한 욕망을 상징한다면, 화장품의 세계에서 일해온 그는 아내 이외의 젊은 여자를 멀리서 관조하며 조심스럽게 욕망해온 셈이다. 조금 더 거칠게 말하자면, 이미 특출난 미인보다는 그러지 아니한 이들에게 화장품이 더욱 필요하듯이, 전립선염으로 욕망의 배출은커녕 기본적인 소변조차 내놓지 못하는 주인공의 몸은 서글프고 쓸쓸하게까지 느껴진다. 어찌 보면 김훈 이상의 무작스러움을 자랑하는 임권택 감독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 영화는 보지 아니했지만, 영화에서는 주인공 부부가 고통을 무릅쓰고 억지로 동침을 시도하는 장면까지 나온다고 들었다. 결국 아내의 임종 이후 개 한 마리도 제대로 키우지 못해 안락사를 시키듯이, 주인공은 욕망의 세계에서 살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욕망하지 못한다.




연성결을 읽으면서, 어떤 욕망은 사람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여러 단계로 나누었다. 공부자께서는 공부하기 싫거든 바둑이라도 두라 했으나 그 중요함이 서로 뒤바뀌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한스 로슬링은 팩트풀니스FACTFULLNESS 에서 세계은행은 더이상 선진국/후진국 등으로 국가를 구별치 않고, 4개의 발전 단계로 나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욕망에도 체계가 있을 터이다. 우리는 부부의 세계에 깊이 분노하고, 연예인을 비롯한 타인의 사랑에 개입을 멈추지 아니한다. 우리는 어떠한 욕망을 욕망해야 하는가? 애초에 우리가 욕망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욕망 자체에 꿰어 끌려다니진 않았을까? 만약 주인공에게 임종을 앞둔 아내가 없었다면, 그의 몸이 건강했다면 훨씬 가벼운 기분으로 추은주에게 '지분거릴 수' 있었을까? 모든 인간의 삶이 개별적이라면, 그 욕망도 마땅히 개별적이어야 한다. 곽 선생은 어제 내게 만장일치가 민주주의의 요결이 맞냐고 물었다. 참 아니면 거짓의 세계에서 살아온 과학 교사다운 답이다. 재야에서 책 읽는 재주밖에 없는 나는, 사회적 구성원의 합의가 더 옳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어서, 사실 이 감평을 어찌 끝내야할지도 모르겠다. 애가 크고 어깨가 나아서 태권도나 어서 다시 하고 싶다.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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