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758일차 - 슬기로운 스승의 날~

by Aner병문

올해의 5월 15일은 무려 금요일! 이 이상 더 날짜가 잘 맞을 수는 없다. 아이 태어난 뒤로 사적인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나였지만, 스승의 날만큼은 미뤄둘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은근히 운을 떼니, 캬하하, 그렇다모 14일까지 내를 을매나 잘 만족씨길지 함 봐야지예~ 그때가 5월 첫날, 2주 전이었다. 아니, 아침 4시에 일어나 5시에 출근하고 집에 오면 6시인데, 손만 씻고 옷 갈아입고 아기 받아든 다음, 아내가 쉴 동안 밥 차려, 설거지 해, 청소해, 아기 같이 씻기고, 빨래하여 널고, 남은 빨래 정리하고, 소독하고, 애 재우고 나면 빨라야 밤 아홉시인데 나보고 이 이상 얼마나 더 잘 하란 말입니까...? @.@ 물론 평소에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시는 아내의 농인 줄 나도 알았으나, 좌우당간 5월 15일이 되니 퇴근 무렵 맞춰온 아내의 메시지. 여보야, 오늘 하루는 도장 가가 스트레스 푹 풀고 오이소~ 애쓰셨어요~ ....아니, 여보, 나 일단 집에 가서 다시 여보 밥 챙기고, 아기 씻고 재우고, 그러고 한 밤 8시쯤 나갈건데요.(확실한 서울말.) ...응? 퇴근하고 바로 도장 가따 회식하고 좀 늦게 들어오는 기이 아니었습니까? ...아니죠, 집안일 대충 보고 밤 8시에 나가면 밤 9시에 도장에 도착하니가 1시간 수련하고, 씻고 그러고 회식 시작이죠. (흔들림없는 서울말.) 아니, 그라모 대체 새벽 몇 시에 들어오실 낀데예....??? ...아침 일찍... 야!!!!!!!!!!!!!!!!!!!!!!! 는 아니고, 아내는 내 이랄 줄 알았시모 조건을 좀 더 씨게 걸걸 그랬데이~ 하고 안타까워했지만, 추어탕까지 사서 아내 먹이고, 설거지 싹 하고, 아이 재워 나가는 것 보시고는, 아이고, 사범님께 안부 전해주시고, 재미나게 놀다 오이소, 용돈도 두둑하게 쥐어주었다.



그리하야 도장에 도착하니, 사범님 말씀하시기를, 이야,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거 아니라지만, 머리 빠진 짐승은...(이하 생략) 그래도 스승의 날이라고, 못 봤덴 사형제 사자매들도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도복을 입으니 어후, 정말 일부러 증량한 것도 아니고, 병원에 있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살이 찐 건 드문 일인지라 바지도 끼고, 띠 바깥으로 흘러나온 뱃살이 무거웠다. 금요일이므로 잠시 몸을 풀고 40분 정도 돌아가며 맞서기를 했는데, 왼쪽 어깨가 아파서 몸을 옆몸으로 돌리고, 오른손으로만 상대하자니, 일단 다리가 올라가지 않아... 게다가 보법을 많이 잊어버려서 둔해진 몸으로 전진 후진밖에 못하다보니 그야말로 두드려맞았다. 특히 8월에 2단 승단을 보는 밥 잘하는 유진이의 오른쪽 반대 돌려차기가 부상 때문에 가드가 내려간 왼쪽 에 직격! 이 것이 과연 청출어람의 아픔이로구나~ 카투사 병호둥이, 장 사범님, 밥동뎅 동현이랑 돌아가면서 맞서기하며 줘터지기만 했지만 - 형님은 정말 최고의 샌드백인거 같아요 ㅋㅋㅋ - 그래도 오랜만에 도장에 가니 정말 즐거웠다. 어서 빨리 몸도 낫고, 시간이 생겨서 도장에서 정규 훈련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날 내가 몇 병 마셨는지는 기록에 남기지 않기로 유단자끼리 합의하였다. 오랜만에 뵙는 사범님께서 아주 그냥 술이 달지? 자유의 맛이지? 킥킥거리시던 모습만 기억난다. 제법 많이 마셔서 다음날 해장술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하였다. 아내는 옆에서, 아이고, 안봐도 눈에 뻔합니데이~ 사범님 내 오늘 자윱니데이~ 아이꼬야 술이 꼬숩다, 달다~ 이라고 막 묵지 않았겠십니까? 하며 내 흉내를 막 냈는데 그게 엄청 웃겼다. ㅋㅋㅋ 어찌 나를 그리 잘 아시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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